사진 한 장

by 백권필





이번에 옮길 원룸은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근방이다. 지난번에 광진구에서 얻었던 원룸은 노량진 학원과도 멀고 월세도 비싸서 이곳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지방의 국립대학 졸업 후 대기업 취업을 목표로 2년을 매달렸다. 취업 원서 200군데 중 면접 기회를 얻은 것은 10% 정도. 그나마 합격은 6개월짜리 인턴 자리 두 번.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에는 생활비를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로 서울 생활을 이어갔다. 계속되는 불합격과 취업에 대한 불안감으로 그도 별수 없이 공시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이제는 더 이상 부모님께 손 벌릴 나이도 아니다.



3월 22일 토요일.

이사하는 날인데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짐은 단출했다. 봄 옷가지와 수험서 그리고 생활용품 한 박스 정도였다. 서울의 작은 중소기업에 취직한 대학 동기의 SUV 차량을 이용해 짐을 싣고 출발하자 그는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를 핸드폰 음악 리스트에서 선택했다.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면서?”

“그렇지 뭐. 이 나이와 이 학벌에 대기업은 물 건너갔고, 중소기업은 경력직을 선호하고, 남은 것은 나이도 경력도 학력도 따지지 않는 공시밖에 더 있냐.”

“너 정도의 스펙이면 갖출 것은 다 갖췄는데 뭐가 부족한 것일까? 영어가 딸리냐, 인턴 경력이 딸리냐, 키가 딸리냐, 외모가 딸리냐, 이런 나도 취업했는데 말이야.”

“글쎄. 내가 눈이 너무 높았나. 창업을 하려고 해도 아이디어도 없고 자금도 없고 용기도 없고. 그저 월급쟁이로 들어가야 입에 풀칠할 텐데.......”

차의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거의 도착했는데.”

이삿짐을 원룸의 방에 모두 옮겨 놓고 그는 친구와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원룸의 방에 들어서자 어떻게 이 짐들을 정리하나 하는 심란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원룸을 나와 우산을 쓰고 걷다가 한적한 카페에 들어가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핸드폰의 취업 관련 기사를 보았다.



구직자, ‘올 상반기 취업할 자신 없다’ 밝혀

고주몽 기자 입력 2025. 3. 21. 23:27

구직자 1,000명을 대상으로 ‘올해 상반기 취업에 자신이 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69.8%가 ‘자신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65.5%) 대비 4.3% 증가한 추치다. 성별로는 여성(71.4%)이 남성(59.9%)보다 더 높았다. 취업에 자신이 없는 이유 1위로는 절반인 53.9%(복수응답)가 ‘스펙을 잘 갖추지 못해서’를 꼽았다. 나머지 순위는 ‘대내외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불안해서’(39.7%), ‘직무 관련 경험이 별로 없어서’(32.3%), ‘학벌이 좋지 않아서’(31.6%), ‘취업이 어려운 전공이어서’(24.1%) 등의 이유가 있었다.

구직자들이 취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취업이 안될 것이라는 불안감’(47.8%)을 첫 번째로 꼽았다. 이밖에 ‘생활비 및 준비 비용의 부족’(34.1%), ‘자존감 하락’(22.6%),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스펙의 상향 평준화’(11.4%) 등을 꼽았다.



주문 호출기가 울렸다. 그는 커피를 받아 들고 나와 야외 테라스 흡연석에 앉았다. 약하지만 빗줄기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이때 전화가 울렸다. 어머니였다.

“여보세요. 선호예요...... 방금 이사했어요. 대학 동기 용수가 도와줬어요...... 너무 걱정마요. 집에는 다다음 주에 갈게요..... 어머니도 건강하시고.... 이만 끊어요. 아참 집에 가면 간장게장 먹고 싶은데.... 엄마 땡큐. 들어가세요.”

그는 전화기를 테이블에 놓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는 빨갛게 타들어가고 회색빛 재만 남았다. 그는 그것을 보며 자신의 모습처럼 느꼈다. 들이마신 숨을 힘껏 불어내자 하얀 연기가 그의 입에서 품어져 나왔다.



원룸으로 돌아온 그는 짐을 정리하기 전에 청소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침대 매트리스부터 들어 올렸다. 그러자 한쪽 모서리에 사진 한 장이 끼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그 사진을 집어 들었다. 사진 속에는 젊은 여자 두 명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진의 뒷면에는 ‘은서와 함께 2023. 5. 5.’이라고 쓰여 있었다.

‘전에 살던 사람인가? 둘 중에 은서는 누구지? 남의 사진이라 그냥 버리기 그러네. 집주인에게 연락처를 알아보고 전해줘야겠다.’

그는 사진을 책 사이에 끼워 넣고 청소기를 돌려 먼지를 털어내고 걸레질을 했다. 어느 정도 청소가 끝나자 이제는 자신의 짐을 풀어서 정리를 시작했다. 짐 정리가 끝나자 피곤한지 그는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여보세요. 집주인 핸드폰이지요...... 저는 어제 취업 빌라 301호에 입주한 사람입니다. 혹시 전에 살던 사람 연락처 있나요? 두고 간 물건이 있어서 전해주려고요. 아.... 그러세요. 그럼 제 번호에 문자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다음 날 집주인은 그보다 앞에 거주한 사람의 전화번호를 보내왔다. 바로 전화를 걸으려고 했으나, 문자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취업 빌라 301호에 새로 입주한 사람입니다. 방청소를 하던 중에 사진 한 장이 나와서 혹시 전에 살던 분의 것이 아닐까 하고 연락드렸습니다.(11:12)

- 그렇군요. 제가 받으러 갈게요. 수요일 퇴근 후 저녁 7시쯤에 빌라 주변 ‘늘 언제나’ 카페에서 만나요.(14:37)

- 미안합니다. 제가 그날 일이 있어서 토요일은 어떤가요?(16:49)

- 좋아요. 그러세요. 시간은 오전 11시에 어때요?(17:06)

- 좋습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17:08)




3월 29일 토요일 아침.

그는 들뜬 마음으로 한껏 치장을 하고 카페 ‘늘 언제나’로 향했다.

‘사진 속의 여자 중에 누가 올까?’

10시 51분.

창가 쪽에 자리를 잡은 그는 들어오는 사람을 하나하나 주시하고 있었다. 10시 55분에 들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핸드폰을 꺼냈다. 이내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남자는 그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문자 받은 사람이에요. 전에 취업 빌라 301호에 살던 사람입니다. 사진 한 장이 있다고 해서......”

“네. 네. 저는… 새로 입주한 사람입니다. 바, 반갑습니다. 문자로 말씀드린 것처럼 청소하는데 매트리스 밑에 사진이 나왔는데 혹시 그쪽 사진이 아닐까 해서요.”

“이건가요? 아하.... 제 사진은 아니고, 이것은 제가 살기 전에 거주했던 분인 것 같습니다. 사진에 나온 여자분 중에 왼쪽에 계신 분이 그분이네요. 기억이 납니다. 작년 초에 여기 살던 분이네요.”

“그렇습니까? 이거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본인 사진도 아닌데 이렇게 시간을 뺏어서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마침 이곳에 약속도 있고, 혹시 제 사진인가 해서 나왔어요. 그럼 이만 가볼게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그럼, 안녕히 가세요.”

남자가 카페를 나서자 그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자리에 남아 남은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는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전혀 모르는 얼굴이다. 그런데 사진의 배경을 보니 어디서 본 듯한 장소였다. 그곳은 자신의 고향에 있는 장소였다.




4월 5일 토요일.

고향집으로 가는 날이 되었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센트럴시티에 도착한 그는 서산 방면 출구 앞에 도착했다. 핸드폰 고속버스표 예매 앱을 실행시켜서 승차권 예매 상황을 확인했다.


11시 20분/ 충남 고속/ 우등/ 6번 좌석.


출발까지 10분여 남았다. 그는 늘 들리는 호두과자 가게에 가서 선물용 호두과자 한 상자를 샀다.

11시 18분.

그는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버스는 출발한다.

‘사진 속의 여자들은 누구일까? 사진 속의 장소는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마을 주민들이 찾는 호젓한 장소다. 그런 장소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것은 관광객이 아니라 그곳 주민일 가능성이 높다. 두 명의 여자 중 누가 은서일까? 전에 살던 여자는 누구일까?’

그는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집에 도착한 그는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점심을 먹고 친구 주성이를 만나러 나갔다. 그와 주성이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닌 죽마고우였다. 그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자주 연락하며 서로의 안부와 생활을 주고받았다. 주성이는 거듭되는 취업에 실패하자 고향으로 내려와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가지고 창업을 하겠다며 부모님을 겨우 설득해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주성이는 대학 때부터 커피에 빠져 커피에 관한 책을 보며 공부하여 바리스타 자격증도 취득하고 시간이 나면 전국으로 커피 여행도 하는 커피 마니아가 되었다.





“주성아, 여기 사진 속의 장소 알지?”

그는 원룸에서 가져온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다. 주성이는 사진을 물끄러미 보더니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 사진 어디서 났냐? 이 여자들과는 어떤 사이냐?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2주전에 원룸을 이사했는데 그때 그 원룸에서 찾아낸 사진이라며 그동안에 있던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랬구나. 참 인연이네. 그렇게 인연은 이어지는가.”

“무슨 소리야? 사진을 보더니 뜬금없이 왜 인연 타령이야?”

“사진 속의 여자들이 누군지 모르겠어? 은서 몰라? 민영이 몰라?”

“너는 이 여자들을 안단 말이야. 네가 어떻게 알아?”

“은서. 정은서. 민영. 손민영. 우리 초등학교 우리반 동창이야. 물론 나도 잊고 있었는데 작년에 알게 되었어. 이 중에 은서가 내가 아는 여자 동창하고 우리 카페에 놀러 왔더라고. 허허.”



정은서. 석림초 동창으로 중학교 입학 후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전학을 갔고 이후 서울에서 줄곧 살았다. 그런데 부모님 모두 교통사고로 돌아가시자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재작년 초에 서산으로 내려왔다. 서산으로 내려와 고향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부모님이 남겨주신 땅에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초보 농부로 이제 2년을 지낸 것이다. 사진 속의 장소는 은서의 집 근처 저수지였다. 그도 어릴 적 자주 놀았고 낚시에 취미를 붙인 후에는 주말마다 방학마다 시간이 되면 낚시를 하던 곳이다. 그래서 사진 속의 장소가 익숙했다.



“전화번호 알려줄까? 그래도 인연인데 만나는 봐야지.”

주성이는 내게 전화번호를 건네주었다. 그는 말없이 받고 주머니에 넣었다.




4월 6일 일요일.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날. 그는 전화번호를 만지작거리며 망설이고 있었다.

‘괜히 연락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아는 사람이니 사진은 전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에라 모르겠다. 내가 그 사진을 가질 것도 아닌데...... 주인에게 줘야지.’

“여보세요. 아..... 뭐라고 해야 하나. 석림초 동창 차주성 친구 김선호라고 해. 응.... 그렇지. 내가 네게 줄 것이 있어서. 서울 올라가기 전에 전해주려고. 그렇지. 주성이 카페로 나와..... 11시 30분에 볼까? 알았어. 그때 보자.”

그는 몸에 남아 있는 긴장이 풀어지자 책상에 엎드렸다.

10분 24분.

은서를 만나고 바로 서울에 가야 하니 바빠졌다.



차주성이 운영하는 카페 ‘온새미’에 그와 은서가 만났다.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차주성과 은서의 여자 동창과 함께 만나 덜 어색했다. 뜻하지 않게 조촐한 초등학교 동창회가 되었다.

"여기 사진!"

"아~, 이 사진. 어디 갔나 했는데 거기에 있었구나. 고마워."

은서는 사진을 받더니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지낸다고 들었는데 무슨 농사를 하고 있니?"

그는 그녀에게 물었다

은서는 현재 청년 창업농 지원 사업에 신청해서 영농정착지원금을 받아 마늘과 생강을 농사짓는 농장을 운영하려고 한다. 영농정착지원금은 2% 금리로 최대 3억까지 융자를 받을 수 있는 5년 거치 10년 납부로 총 15년 동안 갚아야 한다. 은서는 서울의 대학을 나와 2년 만에 운 좋게 대기업 인턴으로 입사했다. 그러나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1년 만에 퇴사를 해야만 했다. 은서는 그 인턴 경력으로 건실한 중견 기업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근무 시간은 매일 초과근무로 이어지고 주말까지 일을 떠안고 있는 날들이 많았다. 임금은 업무강도를 고려할 때 턱없이 낮았고 그나마도 학자금 대출로 빠져나가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리고 업무와 관계없는 커피 타기, 쓰레기통 비우기, 복사용지 나르기, 원치 않는 회식으로 은서는 직장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다. 입사 1년 후 안타깝게도 은서의 부모님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두 분 모두 사망하였다. 은서는 망연자실하고 한 달간의 고민 끝에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는 고향 서산으로 돌아왔다.

“농사일은 할만해?”

“일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편안해. 예전 서울에서 살 때는 일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었어.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하는 마음으로 늘 불안했어. 농사일은 이제 시작이야. 그 길의 끝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서 그는 잠이 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자신은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나 하는 근본적인 물음에 답을 구하고 있었다. 취업보다 좋아하는 커피를 가지고 카페를 운영하는 주성이. 서울에서 힘들게 취업한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농사일을 하는 은서. 지금의 선택이 그들에게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지만 그들은 자신만의 의지로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도 그들처럼 내 의지로 내 삶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며 공무원 임용시험이 그 첫 번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고되고 힘들다는 마음도 있지만 이제는 견뎌낼 수 있는 마음도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되었다. 그를 태운 고속버스는 헤드라이트를 켜고 어둠 속을 씩씩하게 통과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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