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남자 둘과 젊은 여자 하나는 건물의 출입문을 통과하고 정중앙에 있는 안내데스크로 갔다.
“어서 오십시오. 여기는 바이오닉 리메이크(Bionic Remake)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남자 중 말끔한 옷차림에 머리가 벗겨진 남자가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고 말했다.
“저희는 로봇 제작을 의뢰한 고객인데, 의뢰한 로봇이 완성되었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왔습니다.”
“네~. 고객님의 성함이 무엇입니까?”
“이정주입니다.”
“이정주 고객님...... 아! 오늘 출고 예정된 로봇 휴머노이드 H-200을 주문하신 고객님이시군요. 5층 고객상담실로 가시면 됩니다. 엘리베이터는 서 계신 곳 왼쪽으로 가시면 있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안내원은 상냥한 목소리와 친절한 태도로 말했다. 안내를 받은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광고판을 보았다.
"이제는 로봇의 시대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로봇을 여기 바이오닉 리메이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최고의 로봇 기술진이 고객님이 만족하실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국내 유일의 로봇 제작 회사 바이오닉 리메이크"
광고판은 영상을 이용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 고객상담실로 들어갔다. 고객상담실에 들어서자 여직원은 반갑게 응대하며 방문한 이유를 물었다. 의뢰한 로봇을 찾으러 왔다고 하니 주문자의 이름을 조회했다. 여직원은 주문자 정보를 확인 후 잠시 자리에 앉아 계시라고 말하더니, 안쪽 사무실로 들어갔다. 3분이 지나자, 처음 로봇을 의뢰할 때 만났던 연구원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고객님이 기다리시던 로봇이 완성되었습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로봇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보시고 너무 놀라지 마세요. 어떤 고객님께서는 무척 당황해하시더라고요. 아참! 여기 오셔서 보신 것 중에도 로봇이 있습니다.”
"글쎄~. 어떤 로봇이요?"
머리를 파마하고 운동복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1층 안내데스크에 본 여자 안내원을 보셨죠? 그 여자 안내원이 우리 회사에서 만든 최신의 로봇입니다."
"아하! 그렇군요. 우리는 로봇이라고 못 느꼈습니다."
"하하하. 그게 우리 회사의 기술력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로봇을 의뢰한 그들은 연구원을 따라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에 들어가니 긴 복도가 나오고 방 번호 A105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뒷모습을 보이고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 보였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들은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 보이시죠? 그런데 이것은 사람이 아니라 고객님이 의뢰하신 로봇입니다.”
연구원은 뒷목의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나 뒤돌아섰다. 할머니와 자식들은 흠칫 놀라며 입을 막았다. 그들이 본 것은 1년 전에 사망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로봇은 70대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캐주얼한 바지에 카라티를 입고 검정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로봇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게 정말 로봇이라고요? 우와! 그냥 우리 아버지신데.....”
“정말 똑같네요. 1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모습 그대로예요.”
“어머니! 아버지랑 정말 똑같아요.”
“징그럽다. 얘야.”
할머니와 자녀들은 그들의 눈앞에 있는 로봇을 보며 저마다 한마디를 했다.
“고객님, 이 로봇은 5세대 빅데이터 기술과 인공지능 딥러닝 기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돌아가신 분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활용하여 이동진 씨를 구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처음 6개월 정도는 이동진 씨의 생전의 말투와 행동과 생각이 구현됩니다. 사용 후 6개월이 지나면 새로운 데이터가 수집되면서 조금씩 달라집니다."
“오작동이 나거나 정지하면 어떻게 하나요?”
머리가 벗겨진 남자가 말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저희가 원격으로 계속 모니터하고 있습니다. 오작동하거나 정지하면 저희가 바로 출장 서비스를 나갑니다. 거리에 따라 다르지만, 지역서비스센터에서 출발하니 1시간 이내입니다. 고객님, 로봇 3원칙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첫째,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가하거나, 혹은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둘째, 로봇은 첫 번째 원칙에 위배가 되지 않는 한 인간이 내리는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셋째, 로봇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로봇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 그러므로 로봇은 인간에게는 절대로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는 꼭 보호해야 할 대상을 입력하시면 로봇은 입력된 대상은 절대로 해를 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이 로봇을 사용하는데 주의할 점은 무엇이 있나요?"
할머니의 딸이 말했다.
"이 로봇은 서있거나 의자에 앉을 수만 있습니다. 그리고 로봇의 주인과 주인이 입력한 대상이 명령을 내리면 작동하기도 하지만 주인의 얼굴 표정으로도 명령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명령을 내리려면 먼저 목소리를 저장해야 합니다. 어렵지 않아요. 로봇이 입력된 대상이 말하면 자동으로 인식하여 저장합니다. 특별히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로봇은 새롭게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수행합니다. 아침에 커피를 내린다거나 쓰레기를 처리한다거나 설거지를 한다거나 하는 이런 일은 알아서 합니다. 정말 기특하죠. 하하. 로봇은 음식물을 먹지 않습니다. 로봇은 전기로 움직입니다. 가정용 전기 220V로 하루 꼬박해서 완충하면 1개월 정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태양전지로도 충전되기 때문에 밖에서 사용하는 시간이 많으면 2달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원 스위치는 뒷목에 있습니다. 혹시 다른 궁금한 점은 없나요?”
“혹시 로봇이 녹화도 하나요?”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것이 조금 애매합니다만, 로봇에는 비행기처럼 ‘블랙박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로봇이 파괴되거나 오작동 또는 정지할 경우, 그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최종 30분간 녹화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블랙박스 분석은 오직 바이오닉 리메이크만이 할 수 있습니다.”
1년 전.
이동진 할아버지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부인 김윤희 할머니는 남편 사망 후 받은 보험금으로 5억을 받았다. 평소 한적한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희망했던 터라 고향 서산으로 이사했고 집을 정리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처음 서산으로 이사했을 때는 자녀들이 자주 찾아왔지만 점점 찾아오는 횟수가 줄어드면서 할머니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졌다. 이사한 지 3월이 지나자 할머니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면서 외로움을 겪었다. 병원에서 초기 치매증상과 우울증 증세 판정을 받았다. 이제는 자식 중에 누군가가 어머니를 모셔야 할 상황이었지만 서로 눈치만 보고 선뜻 나서지 못했다. 큰아들 정주는 행정안전부 기획조정실 정책기획관 기획관으로 일하고 있었고, 며느리는 초등학교 교감으로 일하고 있었다. 작은아들 정수는 미혼이며 직장을 퇴사한 후로 지방을 떠돌며 일용직으로 지내고 있었다. 막내딸 정은이는 연극배우와 결혼했지만, 실질적인 가장으로 마트에서 계산원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마침 정부에서는 치매노인과 요양이 필요한 노인을 위해 로봇 돌봄 서비스를 새롭게 도입했다. 가족은 이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결정하여 6개월 전에 신청하였고 오늘 그 로봇을 인도받는 날이었다.
정부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돌봄이 필요한 노인을 위해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운영하고 있다. 노인장기요양급여에는 재가급여, 시설급여, 특별현금급여가 있다. 재가급여는 요양보호사 또는 장기요양요원이 가정에 방문하여 도움을 주는 것이고, 시설급여는 장기요양기관에 입소한 분께 도움을 주는 것이고, 특별현금급여는 장기요양기관이 제공하는 장기요양급여를 이용하기 어렵다고 인정하는 자에게 지급하는 현금급여다. 여기에 새롭게 추가된 것이 로봇 돌봄 서비스인데, 이 서비스는 사람이 하던 일을 휴머노이드 로봇이 대신해주는 서비스다. 로봇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로봇 사용료 1억 원을 납부해야 한다. 시범 사업이어서 정부의 보조를 받지만 그래도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시범 사업이 끝나면 금액은 더 오를 예정이다. 로봇 돌봄 서비스는 주로 부유층 또는 외부인을 꺼리거나 특별히 보안이 필요한 대상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 로봇 돌봄 서비스의 가장 큰 장점은 로봇의 모습을 상대의 동의를 받으면 자기가 원하는 대상으로 제작이 가능하다는 점인데 대부분은 가족 중에 사망한 분을 로봇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할머니 집으로 로봇을 데리고 갔다. 바이오닉 리메이크 회사의 직원은 할머니의 목소리를 입력하여 여러 가지 기능들을 설정했다. 물을 가져와라, 쓰레기 버려라, 어깨 주물러라 등을 명령하자 로봇은 속도는 느리지만 지시한 명령을 완수했다. 직원은 로봇에 관한 서류를 전달하고 주의사항을 당부한 후 돌아갔다. 가족들은 남편과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닮은 로봇을 신기하게 여겼다. 할머니는 어색했지만 차츰 적응하고 익숙해지면서 로봇을 편하게 여겼다. 가끔 남편을 닮은 로봇을 보면 남편 생각에 한없이 외로움을 느꼈지만, 남편이 곁에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3개월이 지나자, 할머니는 로봇의 호칭을 실수로 ‘남편’ 또는 ‘정은이 아빠’로 불렀다. 그러자 로봇은 할머니의 말에 호응하여 ‘정은이 엄마’ 또는 ‘여보’라고 대답했다. 할머니도 처음에는 쑥스러웠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로봇을 '정은이 아빠'로 불렀다.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에게도 로봇을 남편이라고 소개하며 항상 함께 산책하며 부부처럼 행동했다. 또 3개월이 지났다. 로봇은 더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할머니를 돌봤다. 가끔 찾아오는 자녀들은 로봇의 모습과 행동에 놀라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할머니의 생신이 다가왔다. 할머니는 로봇에게 음식을 장만하게 하고 그밖에 이것저것을 시켰다. 생신날, 아침 일찍 온 막내딸이 로봇이 장만한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오후가 되자, 큰아들 내외와 대학생 손자 둘이,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작은아들이, 사위와 중학생 외손녀까지 할머니 집에 도착했다. 저녁 식사 후, 손자와 손녀들은 작은 방에 모여 이야기를 하고, 할머니의 자녀들은 거실에 모여 이야기를 했다.
“형님은 언제 승진해요? 공무원 시작한 지 벌써 20년 넘었죠?”
“승진? 아직도 멀었어. 3년 후에 내 차례가 오긴 하는데 부서를 옮기려고.. 요새 너는 어떻게 지내냐?”
“요새 재미 좀 봤습니다. 큰 건이 있었거든요.”
“도련님은 아직도 주식하세요.”
“오빠!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작년에도 주식 투자 실패해서 엄마한테서 돈 빌렸잖아.”
“그때는 운이 나빠서 그래. 이번에는 진짜야! 두고 봐. 이번에 성공하면 매제에게 가게라도 하나 해줄게. 히히.”
“작은 형님!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꼭 대박 나시길 기원합니다.”
“참. 매제는 아직도 영화에서 단역으로만 나오나?”
“큰 형님도,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에서는 그래도 조연급입니다. 하하. 배우 이정재 아시죠? 그 사람의 오른팔 역할로 나옵니다.”
“고모부께서 늘 단역으로만 나오니 벌이가 시원찮아서 우리 착한 시누이가 매일 마트에서 고생하잖아요. 어서 빨리 직장에 들어갈 생각을 하셔야죠. 제가 소개해 드릴까요?”
“지금껏 제가 해온 것이 있는데.... 기다려 봐야지요. 대기만성이라고 조만간 제가 유명해질 겁니다.”
할머니는 자녀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조용히 일어나 집을 나와 마당으로 갔다. 로봇도 일어나 할머니를 따라갔다. 그 모습을 본 작은아들도 마당으로 나갔다. 그러고 나서 5분 뒤, 마당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막내딸이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할머니는 화가 났고, 작은아들도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엄마! 무슨 일이에요? 작은 오빠 무슨 일이에요?”
“정수가 나한테 돈을 빌려 달라고 하길래, 얼마냐 했더니 1억을 달라고 하더라.”
“1억? 그 큰돈을 어디에 쓰게? 오빠 이번에는 잘 된다며?”
“저놈의 놈팽이 말을 믿니? 어디서 노름하다가 노름빚이나 졌겠지.”
“에이 썅! 자식한테 놈팽이라니요. 저도 형처럼 밀어줬으면 이러지 않아요!”
“뭐라고? 형처럼 밀어주면 이러지 않는다고?”
어느새 큰아들도 나왔다.
“내가 형만큼 못 한다고 맨날 무시하고 구박하고. 형 재수할 때 지원한 것처럼 나한테도 지원했으면 나도 형처럼 서울대 갔다고요. 어중간한 대학 나와서 지방에 있는 회사 취직해봤자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언제 성공합니까. 쪽팔려서 진짜.”
“우리가 언제 너를 무시하고 구박했니? 되지도 않는 일에 매달리고 떼를 쓰는 네가 문제지!”
“그래요. 오빠! 엄마나 아빠 그리고 큰오빠 어느 누구도 작은 오빠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마!”
“뭐라고! 이 년아! 어디서 오빠한테 지적질이야!”
이때였다. 로봇이 갑자기 큰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네 엄마 생신이야. 이런 날도 싸워야겠니? 이런 못난 놈들. 어서들 가거라. 썩~ 어서!”
그리고 말다툼을 하고 있는 할머니의 자녀들에게 삿대질을 했다. 마당에 있던 할머니와 그의 자녀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로봇이 말하는데 그 목소리와 말투와 행동은 생전의 남편과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한동안 모두는 말이 없었다.
“정은이 아빠!”
할머니가 로봇을 불렀다.
“정은이 엄마! 내가 해야 할 일이 뭐지? 밤이라 추워지네. 어서 들어가자고.”
로봇의 반응을 본 가족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지켜보았다.
"당신은 어서 집 안으로 들어가!"
로봇은 몸을 돌려 집으로 향해 걸어갔다.
그제야, 가족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것은 로봇의 오작동이지? 깜짝 놀랐잖아. 진짜 아버진 줄 알았네.”
“어째 으스스하다. 집에 가야겠다. 민준이 엄마! 집에 갈 준비 해!”
“나도 갈 거야.”
“오빠들은 먼저 가. 난 내일 아침에 일찍 갈게. 오늘은 엄마하고 지낼게. 수진이 아빠! 수진이 데리고 먼저 가. 난 여기서 자고 갈게. 그래도 오늘 엄마 생신인데 다 가면 썰렁하잖아.”
한바탕 마당에서 소동이 벌어진 이후, 가족들은 짐을 챙기고 각자의 집으로 차를 타고 갔다. 막내딸 정은이와 할머니와 로봇만 남았다. 로봇은 설거지하고 집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할머니와 딸은 마당을 거닐며 산책을 했다.
“힘들지 않니? 김서방은 여전하지?”
“엉. 아직도 영화판에 미련을 못 버리고 있어. 같이 시작한 동기들은 이름도 알려져서 TV도 나오고 하는데 수진이 아빠는 아직도 그저 그래. 아마 재능이 없나 봐.”
“사람이 착하면 되지.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이제 겨우 나이 40인데.... 엄마 아빠가 니 몫으로 준비한 게 있어.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그렇지, 네 큰오빠만 지원한 게 아니야. 작은 오빠 몫도, 네 몫도 있어. 그런데 정수는 이미 다 받아 갔어. 그런데 오늘도 달라고 하니까 화가 난 거야. 이제 남은 것은 정은이 네 것만 남았다.”
“그럼, 엄마 것은 뭐가 남아? 나 주고 나면 아무것도 없잖아.”
“난 남아 있지. 저기 보이잖아.”
할머니는 손가락으로 쓰레기를 들고 나오는 로봇을 가리켰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소리가 났다. 부엌 쪽 출입문인지, 작은 방 창문 쪽인지 작은 소리가 났다. 잠을 이루지 못한 막내딸은 뒤척이고 있었다. 그러다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누가 왔어요?”
작은 소리가 안 났다. 부엌 쪽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어 물을 꺼내고 컵에 따랐다. 다시 작은 소리가 났다. 그러더니 부엌 쪽 문이 열렸다. 검은 모자와 두건을 쓰고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막내딸은 깜짝 놀라서 들고 있던 컵을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남자는 막내딸의 입을 막고 손에 든 칼로 위협하면서 나직이 속삭였다.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알았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준비한 줄로 여자의 두 손을 뒤로 묶고 두 다리를 묶으려고 하는데 할머니가 방에서 거실로 나오면서 거실의 불을 켰다.
“정은아! 일어났니?”
거실이 환해지면서 남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남자는 작은아들 정수였다. 할머니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섰다.
“오빠! 이게 무슨 짓이야?”
정체가 드러난 남자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이거 조용히 끝내려고 했는데 귀찮게 됐군.”
“정수야. 왜 그래? 왜 그러는 거니?”
할머니는 자리에 주저앉으며 떨리는 목소리를 말했다.
“아이~씨. 아까 못 받은 돈 받으려고 다시 왔지. 그런데 말로 하면 안 줄 것 같아서 훔쳐 가려고.”
“오빠! 이러지 마! 그리고 나 좀 풀어줘!”
“넌 좀 빠져줘야겠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여자의 입을 막고 다리도 묶어버렸다.
“내 돈 1억 내놓으셔.”
“정수야! 줄....줄....줄테니까, 칼... 칼은 내려놔라.”
남자는 할머니에게 다가가려고 하는데 로봇이 다가와 남자의 팔을 잡았다.
“이건 또 뭐야. 어디서 기계가....”
남자는 로봇의 팔을 잡아떼어 놓으려 했지만, 로봇은 꿈쩍도 안 했다. 남자는 칼로 로봇의 팔을 찔렀다. 그러자 로봇의 손이 조금 벌어졌다. 할머니는 얼른 막내딸에게로 가서 묶인 입과 손발을 풀었다. 막내딸은 휴대폰을 찾으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로봇의 팔을 칼로 계속 쑤셨다. 로봇의 손이 완전히 벌어졌다.
“경찰이죠? 여기 도둑이 들었어요? 빨리 좀 와주세요.”
남자는 로봇에게 풀려나자 안방으로 들어가 칼로 여자의 등을 찔렀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할머니가 안방으로 달려가 여자를 안았다. 이번에는 남자가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카드 내놓고 비번 말해요. 안 그러면 정은처럼 되니까. 어서!”
“정... 정.... 정수야. 아.. 알... 알았다.”
할머니는 덜덜 떨면서 지갑을 찾으려고 서랍으로 다가갔다. 로봇은 다시 남자에게 다가와 팔을 잡았다. 남자는 칼로 로봇의 팔을 찔렀다. 이내 로봇의 팔은 풀렸다. 그 사이 할머니는 지갑을 들고 섰다.
“카드 꺼내고 비번?”
“1225.”
남자는 할머니에게서 카드를 건내받자 이내 칼로 할머니의 복부를 찔렀다. 그때였다. 로봇이 다가와 남자를 밀쳐냈다. 남자는 카드를 떨어뜨리고 2m 정도 날아갔다. 로봇은 할머니의 상태를 보았다. 할머니의 배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일어난 남자는 로봇을 발로 찼다. 로봇은 할머니를 감싸며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는 바닥에 떨어진 카드를 주우려고 했다. 로봇은 카드를 들고 발로 밟았다.
“여기는 서산시 전동길 XX. 환자 2명 발생. 응급상황. 구급차 요망.”
로봇은 자체 송신기로 메시지를 보냈다.
“이놈의 기계가 미쳤나.”
남자는 카드를 꺼내기 위해 로봇의 다리를 발로 찼다. 로봇의 다리가 휘청하더니 움직였다. 카드가 보였다. 남자는 카드를 집으려고 숙였다. 그러자 로봇은 카드를 집어 찌그러뜨렸다.
“아~악. 이런 미친 기계를 봤나?”
남자는 칼을 들고 로봇에게 달려들었다. 로봇은 남자를 안고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남자를 바닥에 깔고 누웠다. 남자는 칼로 로봇의 등과 옆구리를 마구 찔렀다. 로봇은 칼을 든 팔을 잡았다.
“아악. 내 팔! 내 팔! 이거 안 놔!”
로봇은 남자에게 말했다.
"너는 인간도 아니야.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
멀리서 경찰의 사이렌과 구급차의 사이렌이 들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로봇에게서 벗어나려 몸부림을 쳤다. 로봇은 남자가 움직이지 못하게 힘을 가했다. 그러자 남자는 로봇의 뒷목에 있는 스위치를 찾아서 눌렀다. 로봇의 눈빛이 꺼지기 시작했다.
경찰과 구급요원이 집안에 들어갔을 때, 거실에는 남자와 로봇이 누워있었고 안방에는 할머니와 막내딸은 피를 흘리며 누워있었다. 남자는 목이 꺾인 채 사망했으며, 로봇은 온몸에 상처가 났으며 한쪽 팔과 다리는 휘어졌다. 할머니와 막내딸은 피를 많이 흘렸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한 달 후 할머니와 막내딸은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한 최종 수사보고서를 제출했다.
사건 번호 : 2052-207
사건 이름 : 특수강도 피의자 사망 사건
사건 발행일 : 2052년 10월 20일 일요일 03시 24분
사건 개요 :
2052년 10월 20일 일요일 03시 24분에 충청남도 서산시 전동길 XX에서 피의자 이정수는 피해자 김윤희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여 피해자와 피해자의 딸 이정은을 칼로 찔러 상해를 입힘. 피의자는 피해자의 돌봄 로봇과 몸싸움을 벌인 것처럼 보이며 목이 꺾인 상태로 사망함. 피의자는 전날 10월 19일 토요일 20시 10분에 피해자와 말다툼하면서 돈을 요구함. 집에 가는 것처럼 위장하고 집 주변에 머물다가 부엌 쪽 출입문을 따고 무단 침입함. 마침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이정은과 마주치자, 준비한 칼로 이정은을 위협하고 줄과 손수건으로 결박함. 이어서 피의자는 잠이 깬 피해자를 칼로 위협하며 1억 원을 요구함. 로봇의 도움으로 풀려난 이정은이 핸드폰으로 경찰에 신고함. 피의자는 칼로 이정은의 등을 찌르고, 피해자에게 카드와 비번을 요구한 뒤, 칼로 피해자의 복부를 찌름. 이후 로봇이 피의자와 몸싸움을 벌임. 피의자는 목이 꺾여 사망함. 피의자 사망으로 사건을 내사 종결함.
경찰이 이 사건에서 가장 이상하게 여기는 점은 사망한 피의자 이정수의 목이 어떻게 꺾였을까이다. 피해자들은 칼에 찔려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고, 로봇과 피의자가 몸싸움을 한 흔적은 로봇의 블랙박스에서 확인되었다. 그럼, 로봇이 피의자를 죽였을까. 로봇 3원칙에 따르면 절대로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힐 수는 없다. 그럼 로봇이 오작동한 것일까. 로봇을 제작한 바이오닉 리메이크에서는 로봇이 오작동을 일으킨 적은 없었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로봇의 블랙박스에 나오는 녹화장면에서도 로봇이 남자를 죽이는 내용이 녹화되지 않았으며, 김윤희 할머니를 보호하고 로봇 자신을 보호하는 행동만 했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당시의 피해자들은 칼에 찔린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이 사건은 특수강도 피의자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밝혀지지 않은 채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끝>
‘로봇 3원칙’은 1942년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의 공상과학소설 ‘런어라운드(Runaround)’에서 처음 언급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