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했을 때 먹고 싶었던 음식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했다.
결혼에 이르는 시간 동안, 아니 결혼 후에도 혼자 오래 앙심을 품었었다.
11월 말에 결혼하고 3월 말에 임신을 했다.
임신은 그 전까지는 별로 관심없었던 사건, 정보도 없이 몸으로 처음 겪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임신 초기 시도때도 없이 마구 쏟아지던 잠이 낯설었다. 평생 자본 적 없던 낮잠을 달게 자고 깨어나 어둑어둑한 방에서 어리둥절해하던 날들이 생각난다. 임신 기간 내내 오래 평안했다. 임산부를 괴롭힌다던 입덧은 짧고 약했다.
여름이 다가올수록 배가 점점 둥글어지고 식욕이 왕성해졌다. 그리고 먹고싶다 생각난 음식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갱시기와 오미자차.
자라는 동안 채 열 번도 안 먹어봤을, 명칭도 잊고 있었던 그 음식들이 먹고 싶었다.
갱시기는, 참 때깔도 안나는 음식이다. 멸치로 우린 김치콩나물국에 찬밥을 넣어 끓인 음식이다. 경상도 출신 엄마가 어릴때 먹고 자라 생각이 난다며 가끔 끓여먹던 김치죽같은 거였다. 본인이 먹고 싶어 끓였지만 아무리 잘 봐 줘도 죽탕같은 그 음식을 아빠와 우리들에게는 굳이 먹이지 않았다. 호기심에 몇 숟갈 얻어먹고 ‘생각보다 맛있네’ 했던 기억이 있다.
하필 그 음식이 먹고 싶어지다니. 애매했다. 바깥에서 파는 음식도 아니고 엄마가 아니었으면 알지도 못했을 그 음식을 나는 임신했다는 유세로 먹고 싶다며 해달라 했다. 엄마가 별게 다 먹고 싶다, 하면서도 은근히 좋아하며 끓여주셨다.
오미자차도 마찬가지다. 내가 대학생때였던가, 아빠가 어디선가 딴 오미자를 채반에 직접 널어 말려 몇 알을 생수병에 넣고 오래 냉침한 후 설탕을 타서 만들어 주었다. 오미자차라는 건 그때 처음 먹어보았다. 어여쁜 색과 달리 맵싸하고 시굼털털한 첫 맛에 깜짝 놀랐었다. 하지만 여운처럼 남는 새콤함과 달콤함이 상쾌했다. 여름이면 가끔 아빠 덕에 마셔보아 그 후론 오미자차를 조금 좋아하게 되었다.
임신한 후 갱시기보다 오미자차가 더 먼저 먹고 싶었었다. 시중에 파는 오미자청을 사서 물에 타 마셨는데 내가 기억하는 그 맛이 아니었다. 너무 달았다. 해 먹어야 그맛이 나는구나. 아빠에게 오미자차 좀 만들어달라고 했다. 친정에 갈 때마다 큰 생수병으로 몇 병이나 만들어줘서 여름 내내 먹었다.
내 부모는 뭘 해주면서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고 사랑을 확인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자라면서 뭘 해달라는 말을 잘 하지 않던 큰딸이었다. 부모는 나를 대견해하면서 키웠겠지만 별로 살가움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와의 관계에서 오래 외로웠을 것이다.
내 부모가 나를 갖고 직접 겪었을 임신의 전 과정을 내 몸으로 되풀이하며 엄마아빠 아니면 해줄 수 없는 음식을 다소 뻔뻔하게 요구했다. 내 요구에 기뻐하는 부모의 모습에서 그동안 내가 그들을 오래 외롭게했겠구나 깨달았다.
바라고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자식에게
그것을 베풀 수 있는 부모가 느끼는 기쁨의 크기는 내가 부모가 되어서야 알 수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