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영, <친애하는나의집에게>, 라이프앤페이지
-발췌
p.130.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자리를 점유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인가’하는 물음만큼이나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하는 물음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집에서의 내 자리’를 인식하는 일이었다. 사회도 물리적으로는 하나의 거대한 장소이므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나의 위치도 자리의 문제였다. 이것은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넓게는 이 세상에서, 좁게는 이 집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p.192. 누군가가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싶다면, 그러나 그것이 어려운 환경이라면 집의 한구석에 자기만의 책상을 놓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책상이 차지하는 면적만큼 내밀한 공간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
-단상
숭례문학당에서 만난 자매님들과 함께 자신의 주거공간에 대해 글을 써서 모아보자는 생각을 나혼자 했던 적이 있다. 이십대부터 사십대까지 본인의 집 혹은 방에 대해 쓴다면 그것만으로도 현대 사회 여성이 처한 상황이 그대로 보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그런데 생각은 생각이었을뿐, 실행되지 못했다.
그리고 하재영 작가의 <나의 친애하는 집에게> 가 출간되었을때, 내가 생각했던 그 글이 실제로 나왔구나 하는 반가움이 들었다. 이 책은 하재영 작가 본인이 그동안 거쳐왔던 집들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에세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집에 대해 쓴 글인데 그녀의 인생이 다 들어가 있다. 집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사는, 살아왔던 이야기이니까.
대가족으로지낸 어린시절, 아버지의 사업의 몰락, 서울로 상경한 후의 원룸생활, 동생에게 기대 살았던 동거, 더이상 가족을 착취하지않고 자기 힘으로 먹고살며 자기의 집을 갖는 이야기. 이 모든 내용이 아름다운 문체로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다. 문장이 단정하고 단단하다. 단어 사용이 적확하다. 오래 연단된 훌륭한 글이다.(소설가로 등단했으나 글로 먹고 살기 위해 자기 이름을 버리고 오랫동안 대필작가와 외주 교정자로 살았다는 것을 이 책으로 알았다.) 그간 거쳐온 집들이 그녀를 형성했듯 오랜 글쓰기가 또한 그녀의 문장에 남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내가 거쳐온 집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집들에 대해 쓰고 싶어질 것 같다. 내가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