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말투가 영 심드렁했다. 남들은 부러워하는 대기업 임원 자리를 일 년 더 보장받은 친구가, 임원은, 회장 한 마디에 목숨이 간당거리는 임시직원일 뿐이라고 한탄했다. 그 험한 경쟁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것만도 다행인 사람이 일 년 후를 걱정해? 그것도 현업을 떠난 지 오래인 내 앞에서? 아직 배가 부르구나 싶었다. 어쨌든 사과나무 아래서 두 장년 남자는 각자 다른 이유로 생각에 잠겼다.
그 푸념이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유수 기업의 중역이자 상위 1% 고액 연봉자의 배부른 타령만은 아니었다. 백세 시대 의학의 발전과 어설픈 고용행정을 그는 싸잡아 욕했다. 최소 십 년은 더 일할 사람을 대놓고 유령인간 취급하는 직원들의 태도에 화나고 머지않아 자기 없이도 조직은 굴러갈 거라는 생각에 서글퍼지며 대책 없이 수명만 늘려놓는 의학의 발전이 필요한지 묻는다. 회사가 등을 밀어낼 마지막 순간까지 꿋꿋하게 버텨볼 뻔뻔함도 비굴함도 바닥났다며 고개를 숙였다.
순전히 호기심이었다. 담치기용 쥐똥나무를 사러 가서 계획에 없던 사과나무 한 그루를 덜렁 싣고 왔다. 할아버지 생전 시골집 안팎엔 밤, 감, 대추나 호두 등 과일나무가 많았는데 사과나무만 유독 없었다. 그게 아쉬웠을까, 한 개 남은 묘목을 떨이로 싸게 주겠다는 화원 주인의 말에 솔깃했다. 평생 길러본 적 없는, 내가 심어준 나무에 과일이 진짜 열리는지도 확인하고 싶었다.
열매까지는 모르겠고 예쁜 꽃 몇 송이쯤이야 설렁설렁 피리라는 기대와 설렘은 반나절을 넘지 못했다. 텃밭 한쪽에 땅을 깊게 파고 묘목만 푹 꽂으면 끝날 줄 알았던 나무 심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어설픈 내 삽질을 보다 못하고 끼어든 윗동네 자칭 농사 박사님께서 도와주어 겨우 마무리했다. 그리고 고수만 아는 비법이라며 농사 초짜에게 넌지시 알려준다.
“야아는 약 안치고는 몬먹심니더. 꽃 필 때 쓱 뿌리소. 열매 익을 때면 깨끗할 끼라예.”
열매까지야 바라지도 않고 꽃향기만이라도 맡을 수 있다면 최고지.
따스한 바람이 꽃과 나무와 풀을 더듬고 찬란한 아침 햇살에 온 세상이 기지개를 켜던 사월, 초록 잎 뒤덮인 자줏빛 가지 위에 연분홍색 살짝 섞인 꽃봉오리가 얼굴을 내밀었다. 손톱보다 작은 꽃이 새콤달콤 향기를 내뿜었다. 가까이 귀 기울이면 떼 지어 찾아온 꿀벌의 날갯짓이 사이렌 소리처럼 시끄럽다. 꽃에서 꽃으로 꽃만 한 덩치를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얌전한 봄비 아래 펼쳐진 나무 속 세계는 평화로웠다. 저런 풍경에 농약을 뿌리라니!
장마가 다가왔다. 비바람이 거셌다. 흰 꽃은 꼬랑지만 달랑 남겨놓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좁쌀 크기의 꽃눈이 대신 들어섰다. 농약 없이도 아이들은 잘 커갈 거라는 아둔한 기대가 앞선다. 숨겨둔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새벽마다 사과나무 순례를 이어갔다. 그때껏 연초록 물때를 벗지 못한 작은 열매는 얼핏 괜찮아 보였으나 박사님의 훈수대로 때 되면 무자비한 포식자들의 먹이로 전락할 것이 확실했다.
그랬다. 도토리보다 작은 아기 사과에 벌레가 덮치기 시작했다. 돌돌 말린 잎사귀 위에 허연 섬유질이 엉겨 붙었다. 젓가락과 핀셋까지 동원하여 벌레를 끄집어내는 나를 우습게 봤는지 내가 잡은 벌레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벌레들이 나타나 아직 여물지도 않은 그들을 공격했다. 사과나무가 멍들어갔다. 벌레도 생명이니 먹고 살아야 한다던 어설픈 자비심이 그 열 배가 넘을 초조함과 복수심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7월 말, 사과는 전멸했다. 한 개도 없이.
봄이 세 번이나 지나고도 사과는 여전히 벌레들의 차지였다. 꽃이 피고 열매가 달려본들 그들이 자라날 잠깐의 틈을 허락하지 않고 사정없이 먹어치웠다. 박사님의 살가운 꾸지람이 반복되었고 그럴수록 농약을 쓰지 않겠다는 나의 오기는 더욱더 굳어갔다. 농약도 비료도 없었을 시절, 인간은 어떻게 사과를 키웠을까. 내 것이라기보다 원래 벌레들의 것, 그분들이 드시고 남은 몇 개만 먹겠다고 생각하면 덜 속상할 것 같은데...
오랜만에 유령인간이 찾아왔다. 벌레투성이 상한 사과부터 들여다본다. 약 좀 치라는 또 그 소리, 그럴 생각이 없고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른다고 대충 얼버무렸다.
“그래도 얘들이 나보다 훨씬 나아. 항상 바라봐주는 ‘너’라도 있으니.”
“회사에서는 여전히 유령인간이냐?”
유령인간 말고 투명인간으로 바꿔 달라고 정색하며 부탁한다. 그게 존재감이 있어 보인다고 덧붙이면서. 호칭을 바꿔 불렀더니 점심값이 굳었다. 혼자 가서 2인분을 시키면 식당 직원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라며 오십 후반 두 애가 사과나무 아래서 낄낄거린다.
서너 해 지나 다시 봄, 사과꽃이 유난히 많이 피었다. ‘갉아 먹힐 거야’라는 체념과 함께 몇 개쯤은 살아남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이른 더위가 시작된 5월 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오랜 가뭄을 핑계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사과나무에 열매가 달린 것이다. 무엇보다 벌레가 없었고 크기도 앵두만 했다. 가지치기를 안 해서 잔가지 끝까지 다닥다닥 매달린 모양새가 애처롭기는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웬만한 자두만큼 굵어졌다.
잠잠하던 벌레가 느지막이 쳐들어오면 나무는 그들의 천국일 것, 단맛은 덜 하지만 벌레 먹기 전에 서둘러 따서 주위 분들에게 자랑 겸 인심이나 듬뿍 써야겠다. 농약 한 방울, 비료 한 줌 받지 않고 열매를 내준 나무가 대견하고 아직은 설익은 열매를 눈앞에서 바라보는 호사가 즐겁다기 전에 눈물겹다. 무언가를 돌본다는 일은 안타까움과 미안함, 걱정과 기대의 연속이다. 우리 부모님 선생님 주변의 어른들도 우리에게 그랬을 것이다.
지나는 길에 잠깐 들르시라 동네 박사님한테 연락했다. 탐스러운 아기 사과를 보고서도 그냥 지나칠 참새는 아닌 분, 격한 사투리를 방앗간 아닌 사과나무 아래서 신나게 쏟아낸다.
“야, 고넘덜 참말로 잘 컸데이. 약 칬구만. 거 보소, 진즉 뿌리삐라니깐.”
뭔 소리? 박사라고 다 아는 건 아니네. 문득 회장님 눈치 살피기 바쁠 임시직원이 떠올랐다. 핸드폰을 펼쳐 몇 자 두드린다. 사과나무가 투명인간한테 해줄 말이 있대요. 미리 축하할게. 밥값 아깝지 않을 얘기거든. 언제 올래? 연락 주라. 바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