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이 차갑다. 펜션 뒤 산등성이 모퉁이 길에서 위를 바라본다. 감색(紺色) 하늘 아래 금세라도 쏟아질 듯 촘촘히 늘어선 별들, 국자 모양 북두칠성이 나를 내려다본다. 손잡이 끝 방향으로 다섯 뼘만 옮겨 가보라던 자연 시간 선생님 말씀대로 어림잡아 더듬는다. 찾았다, 북극성! 그로부터 오십 년 넘도록 같은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는 이 별을 볼 때마다 듬직하다 못해 감탄까지 한다.
지구 탄생 시절부터 따지면 까마득한 시간을 지켜온 불멸성 때문에 존경스럽다는 표현이 차라리 어울리는, 그 주변 어디쯤 있을 W자 카시오페이아 여왕이 안 보인다. 흐려진 내 눈이 따라잡지 못할 곳에 앉아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 Nothing lasts forever”라던 소설의 제목은 “어떤 것은 영원하다. Something lasts forever”로 바꿔야 인간적이고 편안하다.
여름과 가을 별자리의 꽃은 단연 거인 사냥꾼 오리온이다. 제우스의 쌍둥이 남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그리고 그녀가 사랑했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 오리온이 얼기설기 엮여있다. 성스러운 처녀로 살겠다던 누이가 유부남 오리온에게 홀딱 빠졌다는 사실이 싫었던 아폴론은 오리온을 죽음으로 내몬다. 여기서 달의 신인 딸의 떼거지를 이기지 못한 제우스가 달 근처에 별자리를 내주어 가까이 있게 했다. 막강 제우스가 딸 바라기! 킥킥거리며 숙소로 돌아왔다.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농담이겠지, 140명이 어쨌다고? 전화기 속 시계는 새벽 4시, 밖으로 나선다. 환하게 불 켜진 방들, 마당 곳곳에 서성거리는 친구들... 뭔 말인지 정리가 되지 않아 멍하니 듣기만 했다. 그것이 잠 못 이루고 뒤척인 이유는 결코 아니었으나 긴 밤을 꼬박 지새운 누군가가 친구들을 깨워가며 이태원의 비극적인 소식을 전하는 중이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모든 재앙은 후폭풍이 더 거세듯 이번 사건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당 한구석에서 친구 서넛이 티격태격 입씨름을 한다. 함께 떠나온 소풍 길, 술 마시며 웃고 떠들고 들떴을 40여 년 우정이 한쪽에서 갈라지는 소리. 삼청동과 여의도가 시끄럽겠어. 올 게 온 거지. 또 대통령 탓인감. 누가 그런 데 가랬나? 아서라, 우리가 싸울 필요는 없잖니! 꽃처럼 젊은 아이들이 불쌍해 우리는 함께속상하다. 평창의 새벽녘이, 잠을 설치는 통에 어제와 단절되지 않은 오늘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60년 긴 세월에 두 해가 보태졌다. 내 말은 줄이고 남의 얘기를 귀담아들어야 할 나이에 하고 싶은 말들이 자꾸 솟구친다. 내가 그러면 남들도 그럴 거라고 짐작해서 웬만하면 입을 다문다. 때가 되면 말로 인한 갈등이 부서지고 떨궈지고 마모되고 연마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 잡을 거라 기대하며 살았다. 역사가 내준 교훈을 반만 실천하면 세상은 정의로워진다는 말도 믿었다. 인간이 이전의 실수를 답습하는 배반의 연속만 아니라면. 해가 뜨고 있다.
피치 못할 사정을 앞세워 황태해장국 한 그릇을 후딱 넘긴 후 기차역으로 출발한다. 일행 놔두고 먼저 가는 녀석이 잔소리 참 많다. 이 나라 청정지역으로 손꼽히는 평창에까지 케이블카가 설치된 사실을 탐탁하지 않게 여기며 내가 타고 갈 고속철 역시 바람직하지 않은 문명의 이기(利器)라 여긴다. 자동차를 끌고 오지 않아 대체 수단으로 기차를 이용하는 주제에 비판적 시각부터 입에 올린다. 문명 무용론을 내놓고 주장하는 혁신주의자도 못 되면서.
편지함에 배달되는 우편물의 상당 부분이 공문서나 청구서인 시대에, 버스나 전철 안에서 인쇄물을 읽는 게 촌스럽다 여기는 시대에 그리고 우체국에서 누군가에게 편지 보내는 일을 더러 한심한 짓이라 치부하는 시대에, 깨작거리며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동기회 총무에게 달랑 내밀기 쑥스럽다. 동창 밴드에나 올려야지. 온라인시대라는 세상의 조류를 따라가지 못하는 지진아인지 미숙아인지 적이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익숙하다. 일상이 되어버린 고질 풍토병에라도 걸린 듯이.
예민함도 병이다. 남이야 뭐라 한들 내 식대로 살면 될 것을. 나를 다스릴 괜찮을 방법이 있을까 싶어, 읽다가 거듭 손을 놨던 가방 속의 ‘이탈리아 기행’을 펼쳤다. 여행기로 보기에는 철학서 이상으로 심오하고, 수필이라 하기에는 엄청 무거우며 소설이라기엔 대단히 사실적인 글이라 이래저래 고전으로 손꼽히는 명문(名文), 대가 괴테와의 힘겨루기는 지더라도 손해 볼 것 없다는 얄팍함으로 인해 늘 편안했다. 이번엔 끝장을 봐야겠다고 다짐한다.
역 앞이 고요하다. 마지막 기차 여행이 언제였던가, 10년은 넘은 듯. 이른 시간이니 예약 없이 탈 수 있을 거라던 예상대로 빈자리가 널렸으나 다음 역부터 인터넷 예약 승객이 자리를 메울 것이다. 이것도 여행이라고 느슨해진다. 내 옆에 누가 앉을지 슬며시 궁금해진다. 여행복 차림의 젊은이, 중후한 6~70대 장년? 그게 여성이면 좋겠다는 내 속내를 떠올리다 멈칫한다. 뭔 망발이람. 자식뻘 아이들이 서울 한복판 길바닥에서 참혹한 변을 당한 게 엊저녁인데.
머쓱해서였다. 성탄절은 한참 먼데도 산타에게 메시지를 떼쓰듯이, 요즘 쓰는 말로 날렸다.
“철없는 애들이 지금 케이블카 타러 가고 있어요. 몰려다니지 말랬는데. 사고 없도록 살펴주시고. 육십갑자 한 바퀴 돌아 새내기 된 늙은 청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보내주십사 부탁드립니다. 추신; 엊저녁 같은 불행한 사고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내 나라 대한민국을 굽어살피소서.” IT 천국답게 답장이 빠르다.
“Yes, I’m coming to your friends’ home for Christmas Holiday.”
봤지? 쓰린 속 달랠 우루사 두 알과 숙취해소제까지 보낼 거야. 한참 더 살아갈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의 건강은 덤으로 주시겠다 하셨고. 크리스마스이브 날 자정까지 두 눈 부릅뜨고 기다려 받으세요. 엊저녁 하늘이 맑더라. 시간 내서 별이나 실컷 구경하렴. 공짜야.
청량리행 열차가 플랫폼으로 뿌연 안개를 헤치며 느릿느릿 다가온다. 내 귀에만 처량하게 들렸을까. 기적소리가 축 늘어졌다. 가야지. 꽃처럼 예쁜 아이들아, 사랑하는 친구들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