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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예반장 Oct 21. 2023

요즘 세상 별 따기

     한 여자가 배시시 웃는다. 둥근 아크릴 간판 속에 별 달린 왕관을 머리에 쓰고 있다. 허리 아래는 안 보여도 머리칼 속에 가렸을 엉덩이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요사하게 갈라진 꼬리를 양옆으로 뻗어 머리끝까지 올려 두 팔로 붙잡은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관능적이다. 세이렌(Siren),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바다의 요정이다. 뭇시선을 끌기 충분하나 매력적인 여성이 쌔고 쌘 이 세상, 일개 마녀의 24시간 헤픈 미소 한방에 휘둘리긴 싫다. 하늘이 흐리다. 

   그녀는 외로움에 지친 뱃사람을 노래로 홀려 얼빠지게 만든다. 종착지는 죽음, 기록상으로 이 요정의 유혹을 견뎌낸 인물은 고대 그리스의 두 영웅뿐이다. 오디세우스는 강한 의지로, 오르페우스는 마녀 뺨치는 노래 실력으로 위기를 넘겼다. 역사는 반복된다더니 수천 년 전의 이 님프가 파도 넘실거리는 대양이 아닌 내륙의 별다방에 나타나 고성능 음향기기로 노래를 들려준다. 곡 분위기가 대부분 끈적거리거나 나른하다. 우연치고는 이상하다.     


   거기서는 별의 교환이 이뤄지고 있었다. 회원 등록을 하고 미리 충전해둔 돈으로 상품을 구매하면 회원 카드에 별이 적립된다. 별을 모으면 몇 가지 선물과 무료 음료 쿠폰을 준다니 공짜 좋아하지 말라면서도 아둔하게 구미가 당긴다. 슬쩍 불편하다. 별을 받기 위해 내 돈을 남 주머니에 미리 넣으라니. 그뿐만이 아니다. 그들 계좌로 자동 이체를 설정한다면 추가로 별을 준다고 꼬드긴다. 

   1200만 명 이상의 한국인이 별을 사고 있었다. 별 다방 계좌에 천사백억 넘는 돈이 선납이나 자동 이체 형태로 쌓여있다는데 세이렌의 마법이 살아났을까, 광고 기법이 대단했을까 아니면 별을 주워 담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 욕망이었든, 고객에게 별을 드리겠다는 이 커피 전문점의 마케팅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별을 줍는 소비자는 당장 즐겁고 이자 지급 없이 꼬박 쌓여가는 현금 앞에서 별다방의 경영진은 어퍼컷 세리머니라도 날리고 있지 않을까.

   1990년대 후반 극에 달했던 은행 계좌 해킹 사건으로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내 돈을 털린 적 있다. 그 경험이 아직도 억울한 내게 ‘자동 이체’라는 용어는 ‘그건 안 돼’와 같은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회사이며, 사고 전력도 없다고 이십 대 후반 점장은 힘주어 강조한다. 금융사고를 염려하는 내가 오히려 이상한 족으로 몰린다. 가능성이 조금만 보이면 앞뒤 재볼 것 없이 밀어붙이던 젊은 날의 나는 어디 가고, 걱정 없다는 데도 선뜻 손을 내밀지 않는다.

   쿠폰 몇 장에 혹해 별을 줍겠다면 나이 꽤 먹은 성인으로서 자존심 상할 일이다. 조카에게 물었다. “어차피 마실 커피값을 미리 낸다고 문제가 되나요. 자주 이용하는 사람한테는 그게 오히려 편할 거고.” 몇 푼 안 되는 은행 이자보다 실질적인 이익을 선호하는 현세대의 취향인 듯하다. 그에 더해서 쉽게 갖기 힘든 별을 차곡차곡 쌓아간다는 행복감도 별 줍기에 합류하는 이유의 하나일 수 있고. 

     

   별을 따고픈 인간의 욕망은 그게 불가능한 일임을 알아서 더욱 간절하다. 맑은 날 밤하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는 만만함 뒤에 유사 이래 별을 따온 인간이 지금껏 없다는 깐깐함이 숨어있다. ‘그대’를 위해 별을 따오리라는 오기(傲氣) 섞인 무모함을 남자들이 포기할 리 없다. 상대 여성은 그 약속이 공인된 거짓말인 줄 알고도 낭만적인 수작(酬酌)으로 받는다. 그리하여 지구 최후의 날까지 상대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끼는 인간의 연애질은 멈추지 않을 것이고.

   음료수 광고에서 그녀의 고음은 싱그러웠다. 노랫말도 예쁘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아름다운...” 달콤하다. 물리학적 관점에서의 별은 물질 구성 요소 중 가장 가벼운 수소의 집합체이며 에너지 고갈과 환경 변화 대비 대체 방안을 찾는 과학자들의 탐구 대상이다. 일반적으로 별은 밤하늘에 빛나는 행성의 무리이며 신화나 전설을 통해 인간에게 꿈을 심어주는 신비한 존재로 군림해왔다. 그런 별을 따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그 누구랴. 

   난 커피광이 아니다. 다른 이유로 이곳이 편안한 소위 카공족이다. 조카 말대로 어차피 쓸 커피값이면 떨어지는 별을 선금 내고 주워 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동 이체는 접었다. 정식 회원이 되자 보란 듯이 무료 쿠폰이 날아왔다. 기분이 썩 좋다. 별 따는 노래나 목 터지도록 부르던 시절은 이제 끝, ‘따기’가 실속 없는 낭만임을 깨닫고서 현실적인 ‘줍기’로 갈아탔다. 예나 지금이나 세이렌의 유혹은 강렬하다.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오후부터 나비 팔랑거리듯 춤추던 눈발이 해 저물기 전 날갯짓을 멈췄다. 늦은 밤 마당에 나와 전봇대 위 조각달을 바라본다. 뭔 심술로 밤하늘은 저리 맑을까. 별만큼 무한대로 널린 시간이 인간한테는 왜 제한적인지도 억울하고. 모든 인간에게 차별 없이 그럴 거라고 믿으니 한편으론 안심이다만. 이래저래 오늘은 편히 잠들기 글렀다. 멀리 까만 하늘 바라보며 동주 형의 시 한 구절을 흥얼거린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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