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by 문예반장

다섯 겹 은빛 칼날이 부드럽게 뺨을 훑어 내린다. 면도기를 슬슬 밀어내리기만 해도 너저분하게 자란 털이 깨끗하게 잘려나간다. 칼날이 스쳐간 자리를 어루만져본다. 번들거리는 개기름과 모공 속의 잡티까지 솎아낸 기분이다. 상쾌하다. 삼십여 년 전 이 면도날의 말끔한 절삭력과 매끄러운 감촉을 알게 되면서, 잠깐만 긴장을 늦춰도 얼굴 곳곳에 베인 자국을 남기던 구식 면도기를 미련 없이 던져버렸다. 생채기는 더 이상 없을 거였다. 사십 년 넘는 반복 학습의 효과인지 지금은 눈을 감고도, 심지어는 거울이 없어도 상처를 내지 않는다.

어릴 적 아버지의 면도 기구는 숫돌과 함께한 이발소용 접이식 면도칼이었다. 수염을 깎기 전 아버지는 변함없이 면도날부터 갈았다. 늘 그랬다. 한 손에 칼자루를, 다른 손으로 칼끝을 단단히 잡고 옆으로 비스듬히 누인 칼날을 고운 숫돌 표면에 지그시 문질렀다. 칼날의 양면을 몇 번이고 뒤집어서 허옇게 패인 엄지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길쭉한 칼이 은빛으로 번쩍거릴 즈음에야 아버지는 칼 갈기를 멈추고 수염을 깎기 시작했다. 그때 아버지의 표정은 진지하다 못해 엄숙해서 감히 말 붙일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 옆에 쪼그려 앉아 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갸우뚱했다. 수염 깎는 것보다 칼날 다듬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가.

사춘기 중학생에게는 날벼락이었다. 뽀송뽀송한 솜털이 입술 주변으로 슬슬 삐져나왔다. 털! 친구 몇 명이 농담 반 진담 반 성질을 돋우더니 급기야 학급 애 대부분이 나를 털이라고 놀려댔다. 옆 교실 애들까지 덩달아 외쳤다. 털도 나지 않은 애송이들이 나더러 털 났다고 약 올리다니.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의 면도칼과 거울을 꺼내 마당 구석 수돗가에 걸터앉았다. 깨끗하게 밀어버려야 다시는 내 얼굴의 털을 가지고 시비할 애들이 없을 것이다. 아버지가 면도하던 기억을 떠올려가며 어설프게 면도질을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숫돌을 쓰지 않았다. 칼날이 무뎌지면 언제든지 새 것으로 갈아 끼울 수 있는 면도기가 등장하면서 애꿎은 숫돌은 수돗가 한쪽으로 밀려났다. 쓸모없는 돌덩어리를 왜 버리지 않느냐고 여쭤봤더니 대뜸 싱거운 대답이 돌아왔다. “당장 필요 없다고 내버리면 쓰나...”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준비하던 어느 날 뜬금없이 숫돌의 행방이 궁금했다. 집안 곳곳을 뒤져봤다. 담벼락 후미진 구석에 흙과 잡초에 덮여 한쪽 끝만 내민 채 삐딱하게 누워 있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그 돌덩어리를 내버리지 않았다.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수염을 깎고 면도기를 툭툭 턴다. 세면대 위에 점점이 들러붙은 털 쪼가리들, 하양과 검정의 대비가 만든 착시효과를 감안해도 깎아낸 만큼의 수염이 꼬박꼬박 자란다는 사실은 놀랍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는 나의 어리숙함은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다. 그로 인해 배부르지도 않은 욕을 얼마나 먹어야 했던가.

수도꼭지를 틀었다. 요동치며 흩어지는 수염의 잔해, 아무 짝에도 쓸 곳 없는 털 찌꺼기가 좁은 세면대에서 수돗물과 뒤섞여 회오리를 만들며 하수구로 사라진다. 나열하기조차 부끄러운, 털 만큼도 가치 없던 말과 기억들이 덩달아 들썩댄다. 섣부른 자존심을 앞세워 일을 그르치기 다반사였고 나와 다른 타인의 관점을 틀렸다 비난하기 일쑤였다. 웃자란 털을 깎아 모양새를 다듬듯 그간 지껄였던 헛소리를 지금이라도 면도기로 깡그리 밀어내버릴 수 있다면...

여태까지 살면서 저지른 말실수가 그동안 깎아낸 털의 양보다는 많을 거라고 자신하면서도 조심스럽다. 또 틀리면 어쩌나 싶고 예상치 못한 않은 낭패가 툭 나올까봐 걱정이다. 면도 전에 면도칼부터 다듬던 아버지의 속내가 행여 그런 것이었나. 당장 필요 없다 해서 버릴 수 있느냐 되묻던 아버지의 말씀이 옳았다. 수염 깎기 전 칼날 먼저 공들여 다듬는다는 일, 말(言)도 그런 것 같다. 당연한 이야기를 피부로 체득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으니.

언어는 세상을 아름답게 이어주기도 추잡하게 휘저어놓기도 한다. 말이라는 것이 입으로 흘러나오자마자 바로 사라진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다. 허공에 남은 소리는 뒤섞이기 시작해서 소음이 되어 천지를 맴돌다가, 선함보다는 갈등이 되어 가뜩이나 어지러운 이 세상을 더욱 시끄럽게 만들지 않겠나.

쓸려 내려가지 않은 흰 세면대 위 검은 단백질의 잔해를 흘낏 째려본다. 거슬린다. 손톱으로 벅벅 비벼 수채 구멍으로 밀어 넣는다. 오랜 세월 쏟아냈던, 말 같지도 않던 말들이 행여 음험한 부활을 꿈꾸며 누군가의 입을 빌려 세상으로 튀어나올까봐. 다정다감하게, 살갑게 전달하지 못해 평생 나를 따라다녀 지긋지긋한 꼬리표, 남한테 배려 부족하고 무심해서 타인과의 공감능력이 절대 빈곤하다고 핀잔을 받던 또 다른 ‘나’와도 이참에 영영 멀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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