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면 고생이라 했다. 하물며 요즘 같은 시절에야. 그래도 때가 되었으니 배는 채워야지, 후딱 한 끼 때우겠다고 찾은 국밥집 주차장이 텅 비었다. 요것도 코로나 덕분이라니 쓴웃음이 절로 난다. 평소 손님들이 대기표 받고 순서를 기다리던 식당인데... 편한 자리 아무 데나 앉으란다. 파 빼기 둘!
새콤함이나 달콤함과는 거리가 멀다. 고소하지도 구수하지도 않으며 짠 맛 쓴 맛도 아니다. 하교 길 밭 언저리에 지천으로 널렸으나 점심을 건너뛴 꼬맹이들조차 쳐다보지 않던 홀쭉한 생김새의 시퍼런 줄기가 맛은 고사하고 냄새까지 못마땅했다. 웬만한 음식 속에 양념으로 끼어들고 심지어는 얘를 재료 삼아 김치도 담근다. 밥상 어디든 약방의 감초처럼 끼어드는 이 채소가 지금이나 그 때나 영 마뜩찮다. 국밥이 나왔다. 곱게 다져진 파를 뚝배기 위에 수북히 올렸다.
까마귀 잡아먹었나, 파 빼달라는 말을 귓전으로 흘리다니. 뭐든(파 빼고) 잘 먹는 나더러 애들 입맛이라고 수군거릴까봐 옆 자리 눈치를 살피며 숟가락으로 덜어낸다. 식습관의 허물을 감추고 싶은 내 소심함과 사전 부탁을 잊어버린 아줌마의 악의 없는 무심함이 파가 달갑잖은 나의 유치한 미각을 산산이 까발렸다. 괜시리 짜증스럽다. 소머리고기의 담백함과 고소함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고기는 왜 그리 많은지 국물 아래 잠겨있을 쌀 알갱이를 건드리지도 않았건만 배가 불러오기 시적했다.
두 달 전 이 식당은 국밥 위 수육 양을 확 줄였다. 코로나 여파로 장사가 신통찮아 원가 절감 차원에서 그랬느냐 주인에게 물으니 멋쩍게 웃기만 한다. 단골들 불평이 거세어서 원래대로 돌렸는지, 팔지 못해 남을 고기 인심이나 푹 쓰겠다는 건지, 아니면 큰 폭으로 떨어진 식자재 가격 탓이든 감칠맛 나는 고기로 배를 불리면서 마음이 느긋해진다.
인간은 합리적이며 희생적인 동시에 감성적이며 이기적이다. 하찮은 것도 모자라면 싫고 귀한 것도 많으면 질린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수육의 양이 적이 부담이었다. 고기 씹기가 지루해질 즈음 뚝배기 밑바닥을 헤집었다. 이건 또 뭐람, 한 뼘도 채 안 되는 자그만 그릇 속 어느 구석으로 숨었나, 국물 아래 밥풀때기가 한 톨도 보이지 않는다. 고기를 실컷 먹은 죄로 따지기도 멋쩍다.
밥이 없다는 내 말을 물끄러미 듣고 난 식당 아주머니가 갸우뚱하며 주방으로 걸어간다.
“파 빼기였대!”
“밥빼기 아니고?”
마스크를 거쳐 어눌하게 새나오는 킥킥거림을 들으며 처음에는 나도 재미있었다.
파 빼기가 밥빼기로 바뀐 것이 우스갯거리만은 아니었다. 사용한 낱말이나 발음 그리고 논리의 결여 등 말의 일차 목적인 의사전달에서 오류가 생겼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듣고 자기 의지대로 판단한다. 들린 말과 들은 말도 화자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개연성이 존재한다. 국밥을 먹겠다면서 밥을 빼달라는 경우가 흔할 리 없다. 어쩌면 우리는 잘못 이해하고 그릇 전달된 언어의 남발에 속은 채 진위 여부는 둘째 치고 가상과 실제라는 개념, 그 경계선조차 잊고 사는 지도 모른다.
무심히 말할 때마다 매순간 사실임을 의심하지 않았던 담론; 정의와 독선, 자유와 방종, 사랑과 무관심, 믿음과 오해 등 사회 저변을 떠받치는 가치들이 실체와는 별개로 곡해되고 와전되었을 경우를 떠올려본다. 그 확률이 높을수록 내가 살아가는 실제현실은 컴퓨터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가상현실과 닮아간다. 뒤틀려진 현실을 여과 없이 사실로 믿었던 맹신으로 인해 사회 전체가 괴멸되었던 현상을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유행병 코로나와 달리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휘젓는 이런 착각은 전염병 이상으로 우리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파가 밥으로 바뀐 것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듯 내가 사는 이곳도 혹시나 가짜 세상은 아닌지 때때로 갸우뚱한다. 걱정도 팔자라고 한 소리 듣겠다.
파를 빼라 했더니 뱃속이 고기로 채워지고 밥 한 공기는 서비스로 제공되었다. 나쁜 놈으로만 알고 있었던 코로나가 사람을 즐겁게 한다. 다시 상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인류가 원시시대로 돌아갈 의도는 티끌만큼도 없는 줄 빤히 꿰뚫어본 자연의 여신께서 흘리는 경고 메시지는 아닐까. 뒤돌아가지 않을 거라면 잠시 멈춰서 현재의 모습을 되돌아보기라도 하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