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남서쪽 국경을 마주한 동유럽 우크라이나를 향해 진격했다. 고르바초프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동서 간 냉전의 부활이 아니기를 바란다. 지구촌 전역에서는, 보이지 않고 형태도 모르는 감염성 미물에게 인류 전체가 삼년 째 쩔쩔매고 있다. 대한민국은 향후 5년 간 나라를 이끌 대통령 선거가 눈앞이다. 군사력의 동원 여부와 상관없이 전쟁에 다름 아닌 일련의 사건들 앞에서 ‘부조리’라는 낱말과 카프카의 <변신, Verwandlung>을 떠올린다.
주지하다시피 실존문학은 쟝 폴 사르트르(1905-1980)와 알베르 까뮈(1913-1960)에 의해 정립된 현대 문학사조로써 그 둘을 논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인물이 카프카(1883-1924)이다. 20세기 세계문학계의 두 거장이 인정한대로 카프카가 실존문학의 지평을 열었으며 후대의 작가들에게 사람들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변신>은 존재의 허무와 소외, 무력감 등 부조리한 사회의 아픔을 그린다. 통제되지 않는 상황과 그에 따른 절망을 카프카적인(Kafkaesk, 섬뜩하고 위협적인 인간의 실존 문제를 보편적으로 정의하는, from ‘Der Große Duden 두덴 대사전’) 작법으로 집필했다고 평가한다.
세 식구를 부양하는 실질적 가장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깨어나 자신이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있음을 깨닫는다. 마지못해 그를 지켜만 보던 가족은 시간이 지나 그레고르를 괴물 취급하며 점점 멀어진다. 1919년 카프카는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평생 그를 괴롭힌 권위적 부친과의 갈등을 토로한다. 카프카의 성장과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아버지는 소설에서도 잠자씨가 그레고르를 죽음으로 몰아 부치는 무지비한 말과 행동으로 부활한다. 끝까지 자신을 지켜 주리라고 믿었던 동생도 오빠의 효용가치가 더는 없다 판단하고 냉정히 외면한다. 아들의 변신을 어머니도 남편과 딸의 행동과 결정에 따라 서서히 물들어간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편함은 인내하기보다 외면하는 쪽이 편하다.
무기력해진 그레고르는 자신이 가족의 애정과 배려 대신 외면과 배척의 대상이 되었음을 알고 절망한다. 가족이 먹는 것을 챙겨주지 않아 굶주린 그는 날로 쇠약해진다. 탈출구 없는 난감한 상황에서 아버지의 발길질에 차이고 그가 내던진 사과에 치명상을 입은 그레고르는 가족들이 은연중 바라던 죽음에 이른다. 그의 죽음으로 남은 식구는 홀가분해졌고 가정은 오랜만에 평안하다. 가족을 위해 그가 감수해왔던 정신적 고통, 육체적 피로와 금전적 기여 따위는 까맣게 잊는다. 한적한 교외로 소풍을 나온 잠자씨네 일가족이 해방감을 만끽하며 그들만의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장면으로 소설은 막을 내린다.
황당한 사건에 휘말린 인간은 대체로 상황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 “조금만 더 자고 난 다음에 말도 안 되는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리면 좋겠는데.”라는 주인공의 독백이 그렇다. “가족은 고마운 마음으로 돈을 받았고 그레고르도 기꺼이 돈을 내놨지만 그 이상의 특별한 동정은 없었다.”라며 가까운 사이에서 되레 잊기 쉬운 ‘습관적 무관심’, 고맙다 사랑한다는 등 당연하다 여겨 감정 표현에 인색한 인간을 꼬집는다. “우리는 저것을 돌봐주고 참아내기 위해서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노력은 모두 했어요. 그러니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비난 따위를 퍼부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라는 구절에서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하려는 얄팍한 인간의 모습이 드러난다.
주인공의 절망을 부채질한 동생의 분노는 “저게 진짜 그레고르 오빠라면, 우리가 자기 같은 동물과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쯤은 벌써 알아차리고 제 발로 집을 나갔을 거예요.”라는 구절에서 극에 달한다. 가족에게 전달되지 못한 혹은 가족이 애써 외면한 그레고리의 속을 작가는 한 마디로 정리한다. “그가 사라져 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아마 여동생보다 그레고르 자신이 더 단호했을 것이다.” 이 글이 발표된 백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사는 세상엔 그레고르와 그의 여동생 그레테를 닮은 삶의 방식이 여전히 변함없이 동시에 존재한다.
<변신>은 인간소외와 무력감, 그로 인한 삶의 부조리를 비현실적이며 몽환적 기법으로 전개한다. 내적 절망 상황에 부딪힌 인간성의 황폐와 실존의 문제를 정면으로 쟁점화 한다. 변화하는 가족의 개념, 역할, 현대사회의 인간 소외와 그 책임소재 등 다양한 화두를 버무려 모호하고 부조리한 인간 본성을 촘촘히 해부한다. 주인공의 비극이 가족에게 즐거움이 되는 역설은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고약한 심보와도 일맥상통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분쟁의 역사적 갈등 및 배경, 목전에 닥친 대한민국의 대선을 둘러싼 뒷얘기 그리고 근거가 없어도 잦아들지 않는 코로나 관련 음모론은 외양만 다를 뿐 익명의 권력이 약자를 향해 휘두르는 폭력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탐욕과 위선이 난무하고 물질적인 풍요와 정신적 빈곤이 공존하는 험악한 세태를 정조준해서 그가 속삭인다.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강렬하게. 어떻게 살 것인지, 왜 살고 있는지 돌아보라고. 카프카의 외침이 오늘따라 왠지 공허하다. (2022.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