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사람이면 좋겠네

by 문예반장

그게 사람이면 좋겠네


단톡방이 오랜만에 왁자지껄하다. 책을 잘 받았다는 감사 겸 출간 축하 인사다. 글쓴이의 정성과 인고 끝 결과물을 문우들에게 선보이는 시간, 책 내용이야 읽어본 다음에 논할 일이고 일단 받는 사람은 즐겁다. 보낸 쪽은 향후 반응에 대한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설렌다. 일요일 아침부터 대화창을 도배한 어른들의 수다가 유쾌하다. 공휴일이면 대개는 우편물 배달이 되지 않는 줄 알면서도 다른 분들이 받았다니까 심드렁한 척 문밖의 우편함을 뒤진다. 없다.

그러고 보니 하루 전 토요일 조간신문도 눈에 띄지 않는다. 마당을 가득 채운 풀숲, 텃밭 가장자리와 매화나무 밑, 데크 위 구석구석까지 샅샅이 뒤진다. 역시 없다. 본의 아니게 가끔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려니 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웬만한 정보 확인이 가능한 시대, 그러나 종이신문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아날로그 방식을 접지 않는다면 평생을 따라다닐 고질병이다. 그거야 어쨌든 좋다. 나한테 보냈을 책 한 권이 오지 않았고 전날 신문은 행방이 묘연하다.

나와 아내 간에 왔느냐 묻고 아니라는 대답이 반복됐다. 온라인 대화방에서는 어제 얘기의 연속이다. 축하, 감사, 열심히, 귀한 책, 멋진 제목, 예쁜 글, 좀 전에 도착... 늦은 오후, 이젠 도착했을까 싶어 다시 아내에게 물었다. 같은 대답, 없다는 말을 들으면서 이젠 답답해진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나 예측 안 되는 미래, 그런 것들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인쇄 작업이 끝난 신문은 대기 트럭에 실려 전국의 각 보급소로 운송된다. 지역별 차이는 있으나 조간신문은 보통 대여섯 시쯤 구독자의 집 앞에 도착하고 늦어도 7시 전후엔 배달을 완료한다. 신문사에서 일괄적으로 인쇄하던 시절의 얘기다. 도시에서는 아파트가 거주 수단의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이른 아침 배달부의 ‘신문이요~~~’ 외침이 어느 날부터인가 사라졌다.

현재는 다르다. 급속한 IT산업의 발달과 광대한 인터넷 보급망 덕에 지역 보급소별로 신문 인쇄 작업을 진행한다. 기사 마감과 편집을 거친 원고를 지국과 공유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곳 작은 도시의 보급소 대표자에 따르면 늦어도 밤 10시 전에 원고 파일을 확보하여 자정 전에는 인쇄를 마무리한다고 했다. 자정부터는 배달 시작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배달 인력이 확보되어 있다는 전제가 바탕에 깔려있다.

하루가 지났다. 시간 단위로 물어오는 것이 귀찮았던지 아내가 먼저 알려준다. 아직, no, 안 왔네, 없어, 오겠지. 단톡방은 여전히 분주하다. 고맙습니다, 멋있어요, 저도 받았습니다, 소중한 책, 읽어주셔서 감사, 출간 축하. 도대체 여긴 왜 늦는지 처음의 답답함은 초조함으로 끝내 걱정스러움으로 정도가 심해진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나한텐 안 보냈는지, 내 이름이 혹시나 발송자 명단에서 빠진 건 아닌지 불안하다.

아내한테서 문자가 왔다. 배달할 사람이 없대. 지난번 보낸 안내문을 우리가 못 봤나 봐. 신문을 우체국 집배원을 통해 받겠느냐고 물어보네. 내일부터 정상적으로 올 거래요. 몇 시쯤 올지는 모르지. 그래요? 오후에 도착하면 조간신문을 오후 신문으로 바꿔야겠네. 우린 함께 낄낄거렸다. 어쩌면 지금이 나을 수도 있다. 몇 년이 지나면 신문을 찾으러 직접 가든가, 종이 신문이라는 것이 아예 자취를 감출 수도 있을 테니.

수요일 새벽이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현관 앞 어딘가 떨어져 있어야 할 신문지가 보이지 않는다. 아, 잠깐 잊었다. 오늘부터 우체부 아저씨가 배달하리라던 얘기를. 혼자인데 객쩍다. 반복이라는 언어, 습관의 무서운 힘을 실감한다. 오늘쯤 택배가 도착해서 나도 책을 잘 받았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단톡방에 남기고 싶은데. 함께 누리는 일에서 나만 빠져있다는 사실은 피곤함을 넘은 우울함이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나 홀로 느끼는 일종의 소외감.

주유소에 차를 멈춘다. 70 넘은 안주인이 직접 주유관을 집어 든다. 돈 벌려고 나오셨느냐 웃으면서 물었더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일할 사람이 없어요. 사나흘 하다가 그만두네. 급여가 적은가요? 아니, 법적으로 줄 것 다 주고 웃돈까지 얹어줘도 싫대요, 힘들어서. 듣기 딱하다. 신문보급소 사장 얘기와 똑같다. 문득 스치는 생각 한 점, 사람이 없다? 그거였나, 배달 인력 부족으로 내 소포도?

늦은 밤 집 앞 도로에 차가 멈춘다. 마당으로 사람 들어오는 소리가 반갑다. 커튼 틈으로 훔쳐본 택배 차량에 우체국 마크가 선명하다. 허, 올 것이 왔구나. 반가워 뛰쳐나가 소리친다. 아저씨, 고마워요~~~ 택배 아저씨가 뒤돌아보며 거수경례를 보낸다. 발신 날짜를 확인해보니 일주일 전이다. 자동차로 50분이면 닿을 곳을 오랜 시간 어딘가를 헤매다 왔다. 왔으니 됐고, 받았다는 감사 인사를 할 수 있어 신난다. 발송자 명단에서 빠지지 않았다고 안도한다.

봉투를 뜯는다. 표지도 제본도 보기 좋다. 마흔여섯 편이나 되는 글을 쥐어짜 쓰고 고치고 정리하느라 여러 날 고생깨나 했겠다. 책이 도착할 때까지 나를 힘들게 했던 초조와 불안보다 몇 배 더 어려웠을 귀한 글모음 “은방울꽃, 너에게 주는”, 수록된 글들도 제목처럼 곱겠다. 일주일 길었던, 내 앞에 다가온 기다림을 마무리할 시간이다. 좋든 싫든 기다릴 뭔가가 생기면 가슴 설렐 일도 많아진다.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더 바랄 것 없겠네.

작가의 이전글공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