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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Nov 27. 2023

30대 싱글 여성의 연애 고군분투기 feat.어플

소개팅 어플남 #1

<프롤로그>

‘시발, 존나 외로워.’


34세 여성 나 김하늘은 아주 평범한 직딩으로 너무 외로웠고,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것이 이 모든 사단의 시발점이었다. 내 주변에는 만날 남자가 없었다.


어느정도였냐면 만날 구멍이라고는 개미똥꾸멍만큼 없었다. 나의 생활반경은 아침수영 -> 집 -> 회사 -> 헬스 -> 집 루틴이었다.

김종국의 동선과 흡사했다. 별명은 짐하늘이었다. 아무튼 남성들과 친목을 다질 기회는 전혀 없었고…

헬스장은 홈짐이었기 때문에 남자에게 수작을 거는 일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매우 리스크가 큰일이었고, 수영장에선 오롯이 할머니들의 예쁨만을 받을 수 있었다.


친구들은 소개팅을 시켜줄 수 없었다. 왜냐면 친구라는 것은 끼리끼리였다. 친구들 주변에도 남자라는 족속은 티끌만큼 없었다.


간혹 소개팅을 시켜줄테니 조건을 말해보라는 지인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소개팅 조건을 키 180으로 거는 순간, 그리고 자신의 밥벌이를 하고 운동하는 남성을 좋아한다고 말 하는 순간, 어느새 나는 눈높은 여자가 되어버렸다. 나는 매우 억울했다.


나는 여자축에서는 키가 큰 축에 속하는 168cm였고, 내 밥벌이를 하고, 운동을 좋아하는데, 딱 나같은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말하면 눈이 높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마! 나같은 여자들 주변에 널리고 널렸다!


나는 매우 억울했다.


*

*

*


#1. 어플 설치



어플을 깔기로 결심한 그날은 수요일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 사무실에서였다.

수요일 오후는 항상 무료했다. 어떤 어플을 깔아야 하지? 나는 파티션을 방패삼아 핸드폰을 들어 앱스토어에 ‘2km’라고 적었다.

‘2km’는 약 10여년 전에 어렴풋이 들어본 어플이었다.

[2km]라고 검색하니 바로 밑에 평점과 리뷰가 더 많은 ‘나톡'이 있었다.

나는 ‘나톡'을 깔았다.


‘맙소사, 내가 이 지경까지 오다니… 난 정말 루저인 걸까?

대체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만나 눈이 맞아 사귀기까지 하는 거지?’


나는 종종 6년 동안 사귄 전남친과의 만남은 이 세상에 존재한 적 없던 것처럼 치부하고 사람들의 인연에 대해 신기함을 토로하고는 했다.


‘그래, 어플에서 누굴 만나긴 만나겠어. 그냥 심심이로 써야지.’


[나톡]의 UI는 아주 단순했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과 비슷했다. 일단 프로필을 만들어야 했다.


—---

성별: 여자

이름: 그냥

나이: 34

—--


프로필 사진은 대충 어제 찍은 하늘 사진으로 설정했다.

동네 토박이인 내가 셀카를 올리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라 생각했다.

어플 첫 번째 화면에는 사람들 목록이 떴고,

최근에 접속하거나 자신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로 골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본인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 위주로 프로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루한, 남성, 32살, 프로필 사진이 강아지라…

아주 평범하고도 말 안 걸고 싶은 프로필이군…

그렇다면 나한테도 사람들이 말을 안 걸려나..?’

라고 걱정한 순간 메시지가 도착했다.



[멋진남자님: 안녕하세요.ㅋ]

[그냥님: 네, 안녕하세요.]

[멋진남자님: 어디 살아요?ㅋ]

[그냥님: 우평동이요.]

*그녀는 우평동 옆 좌평동에 살았다.”

[멋진남자님: 어플로 만나봤어요?ㅎ]

[그냥님: 아니요. 지금 처음 깔아서 처음 대화하는 거예요. 근데 멀리 사시는 거 같은데요? 55키로나 떨어져 있는데, 어디 사세요?]

[멋진남자님: 차로가면 금방 가요. 저 이따 그 동네에 있는 장례식장 가는데ㅎ]

[그냥님: 백년병원 장례식장이요?]

[멋진남자님: 아니요. 금소장례식장이요.ㅎ]

[그냥님: 거긴 저희 동네는 아닌데..? 뭐 멀지는 않지만…]



나는 뭔가 서서히 빡치기 시작했다.

ㅋ,ㅎ 하나만 보내서일까, 아니면 개 할 말 없게 보내서일까? 짜증이 솟구쳐서 바로 차단을 박았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나서야 그가 장례식장에 온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만나자는 구실을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그리고 거리순으로 가까운 사람들의 프로필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는 헬스장에서 찍은 셀카를 올려 놓은 남자, 스타일이 너무 구린 남자,

팔에 이레즈미 문신을 한 짧뚱한 남자, 너무 못생긴 남자 천치였다.


누가 누구를 평가하냐,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원래부터 연애시장은 잔인한 곳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나는 최근에 두 번의 소개팅에서 까였다.


띠링- 띠링 - 띠링.


프로필 사진이 정적인 풍경 사진이었지만 메시지가 오는 속도 만큼은 정적이지 않았다.

수십개의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안녕하세요’로 시작하거나

‘노예녀 구합니다. 하지만 아주 젠틀하게요.’라는 족같은 메시지도 보였다.


‘재산 80억을 갖고 있지만 마음이 허한 강남에 거주하는 남자입니다.

회사, 집이 전부이고 성실한 사람입니다. 사람 배려할 줄 모르는 골빈년들 빼고 말 걸어주세요.’


구구절절한 설명을 쓴 남자에게 나는 말을 걸었다.


아니, 괜히 시비를 걸었다.



[그냥님: 저기요.]

[젠틀성실맨님: 네?]

[그냥님: 님 설명은 그렇다치고, 골이 빈 것과 골이 비지 않은 것은 어떻게 구별하시죠?

어플에서?]

[젠틀성실맨님: 그건 제가 알아서 구별합니다. 남자 만나 인생 바꾸려고 하는 분인가요?]

[그냥님: 남자를 만나서 어떻게 인생을 바꿉니까? 재산 80억 갖고 있기는 하세요?]

[젠틀성실맨님이 채팅방을 나갔습니다]



쉬벌, 찐따새끼. 그리고 나도 할 일 드럽게 없네, 라고 생각이 들 때였다.


‘띠링-’



[가나다님: 쩝, 적적하네요.]



첫 번째 인사로 ‘안녕하세요'를 듣는 게 지겨워질 때 쯤이었다.



[그냥님: 그러게요. 적적하네요�.]

[가나다님: 담배 피세요?]

[그냥님: 폰담배 핍니다. 키 몇이에요?]

[가나다님: 184요.]

[그냥님: 진짜요? 진짜 184예요?]

[가나다님: 네, 그래서 어디가면 키빨로 주목 받아요.]

[그냥님: 그러시군요.]

[가나다님: 이상형이 뭐예요?]

[그냥님: 쩝, 우리 그런 얘기 하지말고]

[가나다님: ..?]

[그냥님: 요즘 무슨 노래 들어요? 난 빈지노 노비츠키 앨범 듣는데.]

[가나다님: 헐, 저도요.]

[그냥님: 무슨 노래 제일 좋아해요? 저는 인 베드/막걸리랑 샌드맨 제일 좋아해요.]

[가나다님: 저는 999랑 코카콜라레드요.]

[그냥님: 구비구비구비~~ 굽이구비구비~]

[가나다님: 헐 ㄷㄷ 소름. 이전엔 무슨 노래 들었어요? 전 완전 힙찔인데.]

[그냥님: 저는 잡식이에요.]



우리는 음악 취향을 토대로 책, 요즘 보는 유튜브 ,티비 프로그램, 30대의 애환 등을 주제로 약 3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었다. 손가락이 너덜너덜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얼마만에 나누는 남자와의 대화인가. 도파민이 마구 분출되는 이 기분! 나는 평소에 수다 떨 수 있는 친구들이 많은 편이었고 남자와 대화를 하면 어느정도의 벽을 느끼는 게 일상이어서 흔히 말하는 남자사람친구도 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동성 친구들로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즐거움이 남자한테 있었다.



[그냥님: 아이폰 쓰죠? 우리 그냥 번호 교환하고 아이메세지로 대화하면 안 돼요?]



아이메세지는 아이폰끼리 하는 카카오톡 같은 문자메세지였다. 내게 더 친밀한 소통의 방식이고, 더 농밀한 사생활이 담긴 수단이라고 해야하나?

(오해는 마시라. 아이폰을 쓰던 갤럭시를 쓰던 상관 없다.)


카톡은 사무용 느낌이 강해 회사에서만 사용하거나, 그닥 친밀하지 않은 사람들과 나누는 메신저였고 평소에는 알림도 켜놓지 않았다.


나의 친한 친구들은 기꺼이 아이메세지를 보내주었기 때문에 카톡은 내게 다소 어색한 메신저였다.



[가나다님: 아이메세지? 그게 뭐예요? 아이폰이긴 한데…]

[그냥님: 아, 그냥 카톡같은 거예요. 아이폰끼리 하는 카톡.]

[가나다님: 010-xxxx-3115]



나는 곧장 ‘가나다’의 번호를 핸드폰에 등록하고 아이메세지를 보냈다.

흰바탕에 파란 메세지가 안정감을 주었다.



[그냥님: 그리고 앞으로도 저는 만날 생각이 없고, 우리 서로 절대 얼굴 사진 같은 거 교환하지말고, 이름도 말하지 말기로해요! 익명 준수! 오케이? 익명이기 때문에 이렇게 재밌는 거니까.]

[가나다님: 알겠어요, 알겠어. 이것만으로도 재밌으니까 동의! (읽음)]



‘읽음 표시가 뜨네. 진짜 아이메세지 안 쓰나 보다. 근데 그런 사람이 태반이긴하지.’


우리는 그렇게 밤을 새며 아이메세지를 주고 받았고, 거의 초단위로 연락하며 서로 무얼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마치 등교부터 하교 후 학원까지 함께하는 단짝 친구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끊임없이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가 말하길 그의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린 33살이었고, 헬스 소도구를 판매하는, 직원 4명을 고용한 쇼핑몰 사장이라했다. 취미는 축구요, 부모님은 자신이 아주 어렸을 때 이혼하여 아버지 손에 컸다고 했다. 우리는 익명의 힘을 빌려 아주 아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또 언제부터 반말을 하게 됐는 지 가늠하지 못하고, 그냥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꿈에서조차 그와 대화를 주고받는 나를 발견했고 정말로 그의 실물과 실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와 아이메세지를 나눈 지, 대화를 나눈 지 다음날인 목요일 밤에 익명을 고수하자는 약속을 어기고

그의 번호를 카카오톡에 등록해 프로필 사진을 확인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의 정체가 무척이나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어느때보다 빠른 손놀림으로 카카오톡에

들어가 연락처 등록 버튼을 눌러 그의 번호를 적기 시작했다.


010…


하, 못생겼으면 어쩌지.


키도 크고 잘생긴 남자가 어플을 할 일은 없겠지? (없는 건 아니다.)

아니면 고추가 졸라 작은 게 아닐까? 평소에 고추가 작으면 남자를 사람취급 하지 않는 나였기에

걱정이 한바가지 들기 시작했다.


대화자체로 너무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이 연락을 놓고싶지 않았다.

그냥 확인하지마? 나는 그의 번호를 지웠다.


'아니야! 너무 궁금해, 시발! 나답게 가자!'



나는 그의 연락처를 등록했다. 동그란 프레임이 떴다.

내 심장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동그란 프레임이 아무리 조그만해도 알 수 있었다.


서둘러 나는 동그라미를 눌렀고, 할렐루야. 내 동공은 커졌다.


사진은 머리부터 허벅지까지 나온 상반신의 사진이었고 핸드폰으로 얼굴이 가려져 있는 거울 셀카였다.


‘할렐루야! 완전 내 스타일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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