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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Nov 27. 2023

나는 솔로 vs 디피

소개팅 어플남 #2

#2. 나는 솔로 vs 디피


내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멀쩡한 와꾸의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가 설정해 놓은 이름까지 확인해버렸다.


‘경연. 이름도 예쁘네.’


나는 그에게 아이메세지를 보냈다.



[하늘: 나 사실 고백할 게 있어.]

[경연: 뭐? 너 못생긴 거?]

[하늘: 아니 그게 아니라 나 사실 너 카톡 봤어. 너 이름도.]

[경연: 뭐? 뭐 사진 공유 금지, 뭐 금지 어쩌고저쩌고 유난이란 유난은 다 떨어놓고 이러기야?]

[하늘: 미안하니까, 미안함의 의미로 내 사진 너도 봐… 그래야 공평하지…]

[경연: 으, 싫어. 너 보디빌더처럼 무서울 거 같아.]

[하늘: (사진)]



나는 지난 주 여행에서 찍은 연보라색의 딱 붙는 나시티에

갈색의 긴 머리가 허리까지 흐드러진 긴 청바지를 입은 뒷모습이 담긴 사진을 주었다.

나름 예쁘고 날씬하고 스타일 좋게 나온 사진이었다.

··· 그가 메시지를 쓰고 있는 게 보였다.

어떤 답이 올지 너무 떨렸다.



[경연: 헐…]

[하늘: ;; 왜.]

[경연: 내가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달라. 여리여리해. 보디빌더라며.]

[하늘: 운동해도 근육 잘 붙는 스타일이 아니라…]

[경연: 나 이제 드립 못칠 거 같아… 이쁜데…]

[하늘: 너도 스타일 좋아…]

잉? 이게 뭔 시츄에이션? 나는 순간 결심이 섰다.

[하늘: 우리 그냥 만나버리자.]

[경연: 뭐?]

[하늘: 아 어차피 평생 문자만 할 거 아니잖아. 걍 만나버리고 해치워버리고. 끝내버리자.]

라고 말했지만 두려웠다.


[경연: 무슨 소리야. 언제는 안 만난다매. 유난이라는 유난은 다 떨어놓고…]

[하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우리 그냥 매를 맞아버리자.]

[경연: 만났다가 마음에 안 들면 다시는 이렇게 재밌는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거 알고 있는 거 

맞지? 이걸 버리자고?]

[하늘: 어차피 대화가 길어지면 더 보고싶어질걸.  너 나 안 보고 싶어?]

[경연: 아니, 사실 보고싶어졌어… 그럼 토요일에 볼까?]



둘다 두려웠고, 떨렸고, 긴장됐지만 설렜다. 토요일 아침이되었다.

그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일어나자마자 내게 아이메세지를 보냈다.



[경연: 꿈을 꿨어… 내가 어떤 한 호텔에서 친구랑 축구하려고 비상계단을 내려가는데,

그때도 너랑 문자 중이었거든?

근데 여자 둘이 올라오면서 나를 지나치는데 갑자기 ‘꺅'소리를 지르는 거야.

그 순간 너한테 문자가 온 거야, 나를 봤다고. 그래서 난 서둘러서 네가 올라간 곳을 올려다봤는데 넌 없었어. 휴- 식은 땀 흘리면서 깼네.]

[하늘: ㅋㅋㅋㅋㅋㅋㅋ경연아, 진짜 우리 둘다 왜그럴까..

나는 네가 일어나기 전에 훨씬 일찍 일어났어.

잠이 안오더라. 거의 선잠잤어, 긴장돼서.

나 우리집 화장실 세면대, 치약으로 닦았어…]

[경연: ㅋㅋㅋ그걸 왜 닦냐고 아 진짜 웃겨ㅋㅋㅋㅋ]

[하늘: 잘되면 이따가 우리집에 올 수도 있잖아. 자자는 건 아니야.

오해하지마. 만약에 우리가 서로를 맘에 들어해서 잘되면 헤어지기 싫을 수도 있고,..

차 한잔 하고 갈 수도 있고하니…]

[경연: 알았어. 오해 안 할게.

너랑 연락하고 나서부터 사실 잠을 거의 못잤어. 

너무 긴장 돼. 어떡하지 우리?]

[하늘: 나도 몰라. 더 빨리 만나면 안 돼?

하루종일 손을 달달 떨고 있어야하잖아. ㅠㅠ

아니다. 하긴 어두울 때 봐야 좀 무드가 있지.]

[경연: 맞아, 밤이 주는 무드가 있으니까. 내가 약속 최대한 빨리 끝내고 올게… 거진 1년만에 만나는 친구들이지만 애들도 이해해줄 거야…]



우리는 지난 3일 간 연락을 끊임없이 했지만 만나는 오늘, 토요일만큼은 대화의 텀이 길어졌다.

누가 먼저 그러자고 한 적 없었지만 서로 문자를 거의 하지 않았다.

걱정이 앞섰다. 


‘만났는데 정말 내 스타일 아니면 어쩌지.

대화 했던 게 다 물거품이 되겠네.

안 될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그래도 사람으로서 나눈 것도 많은데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팍 식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도리가 아닐텐데.’


그렇게 영겁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우리가 만나기로한 밤이 되었다.

경연이는 서둘러 약속을 마치고 나를 데리러 집 앞으로 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경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하늘: 전화 뭐야, 왜 걸었어?]

[경연: 이게 더 낫지 않을까 싶어서… 어때?]

[하늘: ㅋㅋㅋㅋ이게 더 나은 거 같기도.. 내 목소리 어때?]

[경연: 응, 짱구 같고 좋다. 음성이 낮은 편이네?]

[하늘: 응 말도 느릿느릿하고, 나 좀 그래.]

[경연: 내 목소리는 어때?]

[하늘: 으응, 좋아. 평범한 남성의 목소리야.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너 어디야?]

[경연: 나 지금 너네 집 앞에 도착했어…]

[하늘: 뭐? 이씨. 어떡해. 내려가?]

[경연: 5분만 있다가 내려와… 떨려죽겠다. 곧 죽을 거 같아.]

[하늘: 하, 나도 죽겠다.]

[경연: 아니야, 그냥 내려와도 돼…]



나는 거울을 보고 마지막으로 만지나 마나 하는 똑같은 머리를 괜히 한 번 만져보고는 현관문을 열었다.

계단 하나하나를 내려가는 걸음이 로봇처럼 어색하고, 심장은 쿵쾅쿵쾅 어디 지진이 난 것 같았다.

공동현관문이 열리고 겨우겨우 발을 떼 빌라 골목 앞으로 나아가니 비상등이 켜져있는 제네시스 G70이 있었다.


탁- 운전석 차문이 열렸다.


큰 격자무늬의 어두운 초록색 오버핏 셔츠와 검정색 면바지를 입은, 키가 아주 큰 청년이 차에서 내렸다.



“와, 진짜 키 크네. 거짓말이 아니었어!”



큰 키와 프로필 사진처럼 스타일이 좋아보이는 그의 실루엣을 보고 나는 한숨을 푹 쉬며 안심했다.

가로등 불빛이 경연의 얼굴은 어슴푸레 보여줬다. 깨끗한 피부에 쌍카풀 없는 눈과 고운 턱선이 아름다운…

참 예쁘고 착하게 생긴, 취향타지 않는 어쩌면 우리 부모님이 좋아할 선한 얼굴을 가진 그는 차 조수석 문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 주었다.



“안녕, 하늘아. 타.”



나는 그가 나의 얼굴을 본 건지, 보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너무 떨려 그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한 채 바닥만 쳐다보며 차에 탔다. 이윽고 그도 차에탔고, 차안에는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다.

한살이라도 더 많은 내가 용기를 내 그를 바라보았다. 말을 걸었다.



“어때?”

“보지마. 부끄러워.”

“아, 그럼 뭐하러 만나!”

“아, 조금만 이따가.”


존나 귀엽네. 나는 그가 원하는데로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밝고 청량한 달이 보였다. 심장이 고장난 것처럼 뛰었다.


“일단 네비는 여기루 찍고 가자. 이자카야야. 걸어가도 되는데, 차대놓고 걸어갈까?”

“아니야, 어차피 나는 술 안 마시니까 차 타고 가자. 너 마시는 거 볼게.”



우린 별말 없이 이자카야로 향했고, 집 근처에 위치한 이자카야에 도착하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차에서 내린 우리 사이에는 여전히 어색한 기류가 흘렀고, 나는 쭈뼛쭈뼛하게 서 경연을 바라보았다. 경연이 입을 뗐다.



“이자카야 들어가기 전에 잠깐 걸을까?”

“그래.”

“잠깐.”



경연은 다짐한 듯 굳건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넌 나 어때?”

“괜찮아! 넌 나 어때?”

“나도!”



사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내 마음에 꼭 들었지만 너무 마음에 든 티를 내기 뭐했다. 밤은 어두웠지만 경연의 귀가 빨개진 것이 보였다. 내 볼도 덩달아 빨개지는 느낌이었다. 조금 더 솔직해도 됐을까? 고민할 때 그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 손 잡고 걸을까?”



나는 말 없이 그의 손을 잡고 씨익 웃었다. 내 눈동자에 반짝이는 별이 비치고 있다는 것을 그의 눈동자를 보며 알 수있었다. 오랜만에 올려다보는 밤하늘이었다.



“히히. 좋다. 하늘아. 너는?”

“나도!”

“우리는 더이상 대화만 나누던 때로 돌아갈 수 없어. 난 이제 드립도 못치겠어. 네가 너무 예뻐서. 우리는 이제 이제 더이상 친구같은 사이는 확실히 아니야. 명백한 남녀사이야.”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막 뜨거운 여름밤이 시작될 때였다.

빈지노의 <침대에서/막걸리>가 어울리는 밤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걸으니까 어색한 게 풀리는 거 같아. 그치, 경연아?”

“그러게, 이렇게 만나서 너무 좋아.”

“좋다는 말을 몇번을 하는 거야.”



한결 편안해 보이는 그를 보니 나도 마음이 놓였따. 우리는 걸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의 실체를 마주하고, 손잡고 대화를 나눈다는 자체가 내게 너무 큰 만족감과  안도감을 주었다. 



‘와씨, 어플 뭐야, 짱이잖아? 정말 요즘 시대에 적합한 만남의 방법인 걸까?’



“하늘아, 우리 그럼 이제 이자카야 갈까?”

“그래!”



주황색 조명이 무드있게 밝혀진 이자카야에 들어온 우리는 조용한 구석자리에 앉았다.물컵에 물을 따르는 경연의 손이 덜덜 떨리는 게 보였다. 그런 그가 귀엽다고 생각했고, 나는 주저없이 말했다.



“그럼 우리 사귈까?”



콜라를 마시던 경연이 풉-하고 뿜으며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무슨 그런 소리를 지금해?”

“그럼 언제해?”



나는 본래 이성이든 동성이든간에 거침없이 솔직하고 적극적인 면모가 있었다.

사랑할 때는 꼭 불도저 같다고, 꼭 온몸에 기름 뿌리고 화재현장에 들어가는 사람같다고 주변에서 매우 걱정하는 타입이었다.        


“뭐 남녀가 말이 통하고, 얼굴 합격했으면 사귀는 거지. 사귀는 게 부담스러우면 그럼 그냥 만나. 만나면서 알아가자. 말장난이긴 하지만.”

“아니, 아니. 사귀자. 사귀는 거야, 우리.”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라 말하는 단호한 나의 페이스에 말린 경연이 서둘러 대답했다.

주황빛이 선명한 연어회가 나왔다. 내가 한 점 집어 먹었지만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너무 긴장한 탓이었다


나는 소주 반병을 꾸역꾸역마시고, 술을 먹지 않는 그는 나를 물끄러미 지켜봤다. 시간이 지날 수록 편안한 무드에 우리의 사이가 한꺼풀 벗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또한 좋았다.



“이제 우리집에 갈까?”



우리는 만나기 전에 남녀사이로서 진전되는 분위기면 넷플릭스에서 <디피>를 보기로 했고, 이성으로 끌리지 않으면 요즘 장안의 화제작인 <나는 솔로> 보기로 얘기를 나누었었다. 

사실 거의 답정너 수준의 질문이긴 했다. 사실 정말 보고싶은 프로그램은 <나는솔로>였다. 돌싱특집으로 한참 핫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디피>를 보게 되겠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솔로>보자.”라고 경연이 답했다.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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