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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Nov 27. 2023

어플남1

소개팅 어플남 #3

#3. 어플남1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내가 읽지 못한 거절의 시그널이 있었던 걸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내 모습을 숨길 수 없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하늘아. 어차피 우리는 사귀는 거니까. 그런 거 안 나눠도 될 거 같아서. 더 재밌는 걸 보자고!”



얼굴이 발개진 나를 알아챈 그가 안절부절못하며 해명하듯 말했다.



“뭐야, 놀랐잖아! 일어나, 가자.”


“귀엽긴.”



경연은 내가 귀여워 깨물어 주고 싶다는 표정을 지으며 긴 팔을 내밀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남자들은 저런 짓을 왜 하는 걸까, 내가 반려견도 아니고. 아무튼 우리는 처음과 달리 편안해진 서로를 안고 이러쿵저러쿵 떠들며 우리 집으로 향했다.


삐삐삐- ‘공동현관문이 열립니다.’. 삐삐삐- 철컥 - 회색깔의 무거운 우리집 철문을 열었다.



“어서 들어와.”

“그럼 들어갈게.”



처음 본 남자를 집에 끌어들이는 게  조금 머쓱한 일이었지만 그가 나를 헤프게 보지는 않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음, 뭐 차라도 줄까?”



어색한 내 모습이 바로 티났다.



“아니, 그냥 티비나 보자.”



그에 비해 경연은 편하게 대답했다.



“근데 티비는 보다시피 거실에는 없고, 내 방 침대에 누워서 봐야하는 구조거든? 아니면 거실 식탁에 앉아 아이패드로 봐도 돼.”



그는 담담하게 “음, 그냥 침대에서 보자.”라고 답했다.



나란히 누운 우리는 <나는 솔로>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가 옆에 있다는 자체가 조금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곧 프로그램에 집중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건너온 상철의 씹선비 같은 모습이 구닥다리같이 느껴지고 웃기기도 했다. 나는 깔깔 거리며 연신 티비에 반응했다.



“야 저 사람 뭐냐?!”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티비에 집중한 나와는 달리 경연이는 전혀 티비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것을 시종일관 나만 보고 있다는 것을! 그 눈빛이 나를 너무 어색하게 만들었다. 또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오른발을 내 왼발에 갖다대고 부비적거렸다.


그렇게 한 시간을 꼬박 채우고, 다음 화로 넘어갈 무렵, 데이트하는 첫날에 절대 자지 않을 거라 다짐했기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태연하게 그에게 말했다.



“경연아, 티비 좀 봐. 내가 티비냐?”


“하늘아, 너는 티비가 보여? 내 정신은 티비 30% 너에게 70%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아, 오늘 우리 안 자기로 했잖아, 나 건들지 마라.”


사실 이 문제에 관해 이미 만나기도 전에 얘기를 끝낸 터…  나도 그의 고추 크기가 궁금한 건 마찬가지였다. 섹스까지 맞는다면 정말 ‘지져스크라이스트 땡스 갓파더, 부처님, 알라신님 감사합니다!’일텐데.


사실 내가 헤픈 여자로 보일까봐 안 자려고 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이렇게 대화가 잘 맞는데 고추가 작으면  정이 털리고, 정이 털리면 이 관계는 끝나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정말 이 관계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이런 흔한 한녀의 고민을 알까? 매번 꼬춘쿠키를 해야하는 그 심정을? 그는 내 마음도 모른 채 슬슬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옆에서 조신히 누워있던 그는, 어쩌면 내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누워있던 그는, 서서히 스르륵 다가와 자신의 긴 팔을 든 다음 내 머리를 그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 나는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 내 귀쯤 왔고, 내 볼에 뽀뽀를 하기 시작했다. 나도 고개를 돌렸고, 우리는 입을 맞추었고, 키스를 했다. ‘스킨십만 하고 자지는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한 나는 여유만만했다. 왜냐면 진짜 아예 안 잘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말캉한 혀가 내 입속으로 들어왔고, 외간 남자와 키스를 하니 좋았다. 너무 단순한 생각이고 표현이지만 정말 그랬다. 시발, 좋았다.


그의 숨소리는 거칠었고, 곧 그의 손이 내 상의 안으로 들어 왔다. 뜨거운 손길이 내 가슴에 와닿았고,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손길이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내 혀로 가득한 서로의 입안을 두툼히 헤집었다.


“아, 오늘은 안 돼, 안 돼. 안 해! 안 하기로 했잖아.”


그는 잠시 멈칫하다 내 위로 올라와 나를 내려깔보며 말했다.


“바지 벗어.”


헉.


나는 언젠가부터 섹스를 할 때 남성이 단호하게 명령하는 것에 꼼짝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 사실을 안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한데 그 와중에 나는 너무 피곤했고, 어차피 내일 또 만나 할 심상에 대충 박히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정상위였던 체위를 조금 바꾸어 나는 그의 양 어깨에 두 다리를 올리게 되었다. 내 발목이 그의 어깨에 닿을 때 안락한 편안함을 느꼈다. 아니 그러니까 푹신푹신했다.


‘이게 뭐지?’라고 생각하다가, 그가 상의를 벗지 않은 걸 깨달았다.


보통 남자들은 섹스를 하게 되면 너무 더워 상의부터 훌쩍 벗고 시작하는데, 티셔츠를 계속 입고 있었다. 나는 헥헥대며 경연에게 물었다.



“너 안 더워?”



그 역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덥지 않다고 대답했다. 존나게 희한한 일이었다.


아무튼 섹스하는 동안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애절하고 절실하고 나를 좋아하는 게 눈에 떡하니 보였다. 순간 나는 얘가 나를 좋아하는 만큼 내가 더 좋아하지 않는다는 깊은 안도감과 ‘호구를 잡았다!’라는 못된 생각이 동시에 들었고, 흠칫 놀랐다.


사람이 이렇게 못돼 처먹은 생각을 하다니. 아무튼 조금만 틈을 주면 이렇다니까? 나는 바로 못된 년이라 자신을 책망하며 정신을 차렸지만 내 이런 모습이 너무 싫었다.


아무튼 이렇게 첫 번째 섹스가 끝나고 우리는 꼭 끌어안은 채 누워 텔레비전을 응시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 신경은 온통 서로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우리 완전 웃기다.”



장난기 가득한 나의 음성에 그가 그러게 진짜 웃기다, 라고 대답했다.


나는 더 말을 꺼냈다. 물어보면 안 될 거 같지만 이때는 남의 난처함보다 내 궁금함이 먼저였다. 나는 푹신푹신한 그의 어깨를 만지며 물었다.



“근데 이거 뭐야?”


경연은 그의 품에 착 붙어있던 나를 잡고 밀어내더니 당황한 듯 아무것도 아니라고, 운동복이라고 대답했다.

당황스러움이 묻어나오는 그의 행동 때문에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아니 사실은 진짜로 몰라서 물어봤다.



“축구할 때 안에 입는 이너인 거야? 막 축구할 때 어깨빵해서?”


“아, 좀. 우리 이제 자자.”


갑자기 그는 등을 돌려 누워 잠을 청했고, 나도 더 이상은 피곤해서 따라 누웠다. 우리는 등을 맞대고 누웠다. ‘시발 쪼잔하긴.’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는 등을 돌려 나에게 팔베개를 해주었고,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경연은 내 눈에 입 맞추었다.



“왜 안 자고?”


“우리 또 할까?”


“아, 됐거든요. 나 피곤해 어서 자자.”



그는 피식 웃고는 거칠지는 않지만 부드럽지는 않은 손으로 내 얼굴을 만지다 눈을 감았다. 아침이 되었고 그는 집에서 준비를 하고 오기로 했다. 나도 그게 편했다. 누추한 모습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건 피할 수는 없었지만.



“하늘아, 이따 오후에 카페 갔다가 저녁 먹으러 가자.”


“응. 이따 봐.”



현관문이 닫혔고, 나는 아직 못 잔 잠을 더 자고 싶었지만 빨리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잠이 잘 들지 않았다. 그냥 후딱 씻고 나갈 채비를 하며 그를 기다려야겠다고 마음먹고 머리에 물을 묻히기 시작했다. 


준비를 하는 동안에 친구에게 야구 중계하듯 미주알고주알 말해주었다. 섹스하는 중간에 호구 잡았다는 생각이 든 나 자신이 너무 못됐다고, 차라리 그 애가 나를 안 좋아해서 내가 오만했구나,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니, 됐어! 호구 잡히면 뭐 어때! 남자애는 손해 보는 것도 없는데,라는 친구의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더 이상 어플이 필요하지 않을 거 같아 어플을 지웠다.


고마웠다, 나톡!


그렇게 친구와 몇 시간 대화를 나누고, 오후 3시가 되고, 4시가 넘어도 경연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다음 날도, 그다음 날의 다음 날에도 그는 내 아이메세지를 읽지 않았다.


내 오만했던 생각이 빛을 발하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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