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수미상관

by 십일월

이별의 수미상관

‘천마산 밝은 정기 해맑게 서린, 배움의 보금자리 호평중학교~’ 내가 나온 중학교 교가의 한 구절로 나는 평생을 호평동에서 살았지만 천마산 정상을 한 번도 올라가본 적이 없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어느날 등산을 제안했고, 우리는 같이 천마산에 올랐다. 35년 만에 올라간 천마산의 절경은 끝내줬고, 우리는 사랑에 빠지기로 했다. 그렇게 육 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이별했다. (‘6’이라는 시간에 마가 낀 건지, 참나원… 참고: 글쓴이의 최근 입봉작 <육 년과 여섯 번>)

이별 직후 일주일은 일이 바빴고, 일주일은 타지에서 조카를 보느라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물리적인 시간이 손 끝 사이로 무자비하게 흘러가면서 그대로 잊혀지는 줄 알았으나, 서울로 돌아오니 그에 대한 생각이 폭풍같이 밀려왔다. 몇날 며칠을 속앓이 했는지, 몇날 며칠을 그에 대해 꿈 꿨는지… 그리고 꿈 속에서 몇 만 가지 상황들을 마주하며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더이상 순진하게 굴지 않겠다고 마음에 새겼다. 그리고 사귀는 내내 싸움의 주 요인이었던, 그를 만나기 전에 만든 내 작품에 대해서도 더이상 미안해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러다 돌이켜보니 쓱싹쓱싹 빗자루 질을 하면서 그를 거꾸로 지워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헤어진 마지막 순간에 대한 분노, 감정 없는 모습을 찬찬히 복기하며 드는 후회 그리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사진을 보며 미련까지…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다가 우리의 두 번째 만남의 장소였던 어느 기차역, 그리고 얼마전 다녀온 울산의 연두빛 간월산이 그리워 다시 오른 천마산에서, 이제는 둘이 아닌 혼자 정상에 선 나를 마주하며, 마침내 이것이 마지막 빗자루 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등산을 마치고 부모님 집으로 향하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내가 민망하지 않게 아주 태연한 척 말을 꺼냈다. “엄마가 돈 줄테니까, 어버이날 기념으로 아빠한테 용돈 드리는 척 해.”. 아, 맞다! 내 생각만 하느라 까먹은 어버이날에 대한 대비를 엄마가 하고 있었다. 나는 머쓱해 “엄마, 나 돈 있어! 내가 줄 수 있어!”라고 말했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소고기 미역국을 한 소쿠리 끓여 놓았고, 엄마는 기어코 아빠 몰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내 손에 쥐어주었다. “어린이날이기도 하잖아.”.내가 어버이날 용돈을 주고, 어린이날이라고 용돈을 받으면 내 수중에 돈은 0으로 수렴하기에, 0이 된 딸의 주머니를 보고 싶지 않은 엄마는 기어코 내게 돈을 두 배로 주었다. 그렇게 모종의 돈이 오간 후, 아빠에게 어버이날 용돈을 드리니 “나는 네게 어린이날이라고 줄 용돈을 준비하지 않았는데…”라며 쓸쓸한 마음을 내비치셨다. 이미 수천년 치의 사랑을 줘놓고, 더 주지 못해 아쉬워 하던 아버지와 ‘모든 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외치던 그의 모습이 하나도 겹쳐보이지 않아, 나는 순간 아찔했다. ‘나는 부모님께 큰 불효를 저지를 뻔 했구나.’. 나도 금명이처럼 엄마 아빠가 금이야 옥이야 키워놓은 자식이었거늘! 대체 무엇이 그리 슬프고 억울했던 걸까.

엄마가 준 어린이날 용돈으로 산 커피 한 잔을 쫍쫍 빨면서 집으로 돌아와 뜨거운 물로 샤워 하며 생각했다. ‘그와 내가 연을 맺고 연을 끝맺은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구나.’. 그리고 나는 낮잠을 잤다. 아주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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