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어른이 될 수 있는 날이 올까?
나는 진짜 책임지는 걸 잘 못한다. 그래서 당장은 애를 가지고 싶은 마음도 없고, 반려동물도 안 키우고, 식물도 안 키운다. 심지어 직장도 없다.
마지막으로 일했던 직장은 디자이너라곤 나 한 명 밖에 없던 작은 회사였는데, 딱히 어려운 업무도 아니었고, 연봉도 만족스러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불편했다. 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기분이었다. 아마 무의식 중에 내 본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로, 남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자체가 불편했던 것 같다.
그렇다. '책임지는 걸 잘 하는 것'은 '책임감'이 없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사실 제목에서도 고민이 많았다. '책임지는 걸 잘 하는 사람'... 어딘가 어색한 문장이었다. 그렇다면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써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엄연히 뜻이 달랐다. 책임감을 갖기 싫어서 책임을 지는 게 싫은 것이었지, 나도 막상 무언갈 책임지면 잘하긴 한다.
이에 대해 단적인 예시로 내 남자친구의 '비혼주의'를 말하고 싶다. 그는 나를 만나는 첫날부터 결혼할 마음이 없다고 일러주었다. 사실 처음에는 그 말을 믿기 힘들었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 남자는 더군다나 결혼해서 손해 보는 것도 없는데, 혹시 유부남 아니야?' 이렇게 의심도 했었지만 막상 만나보니, 이 남자는 유부남도 아니고, 뭐 어디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딱 위에서 말한 내 꼴이었다. 책임지는 걸 하지 못해서였다.
그는 참 건실했다. 회사도 성실히 다니고, 사귀는 5년 가까이 딱 두 번 빼고 항상 주말에 나를 보러 왔다. 또 나의 주머니 사정도 이해해주고, 내가 힘들 땐 어디 도망가지 않고 곁에서 응원해주며 함께 해결책을 찾았다. 책임감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하나 글에는 담을 수 없는 개인적인 이유로 결혼이라는 책임은 지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반면에 책임을 잘 지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내 전 직장 동료인데, 정확히 말하면 내 사수였다. 그는 나보다 세 살이 어리고, 체구도 작고, 말라서 만나면 밥 한 숟갈 더 먹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이처럼 약해 보이는 외형과는 달리 강아지를 두 마리나 키우고-그것도 잘-, 말도 안 되는 업무량에 대해 불평을 토하지 않고, 집에 일거리를 가져와 해낸다. (그는 <그것이 알고 싶다> 막내 작가로 2년 가까이 일했다. 이게 최고로 극단적인 예시인 것 같다.) 최근엔 반려 식물까지 들여왔다. 그의 삶은 내겐 경이로움 그 자체다. 그는 가끔 힘들다, 힘들다 말하지만 괜찮아 보인다. 왜냐하면 정말로 힘들면 안 했겠지, 그만 두었겠지... 물론 정말 힘들 때는 그냥 버티는 것도 있겠지만, 난 애초에 버틸 일을 만들지도 않을 거 같단 말이다!
나는 대체 언제부터 이런 개념에 사로잡힌 것인가? 그건 바로 내가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견딜 수 없는지 각성했을 때부터였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대체 어떻게 살려고 이러는 걸까? 사람이 무슨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이 글 마무리는 어쩌려고 이렇게 구구절절 쓴 것일까?
물론 해결방도는 있다. 조금 덜 스트레스 받는 것을 하면 된다. 나도 분명 내가 견딜 수 있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직장에 가서 안정적이게 돈을 벌어 행복한 소비생활을 영위하는 것보다, 수입도 없고 미래도 없는 암담한 생활이 훨씬 덜 스트레스 받는다. 매주 만화를 그리고, 글 쓰는 것이 고되도 그 정도는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는 책임감이 든다. 나는 이런 종류의 책임감은 잘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선택적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게 얼마나 운이 좋은 상황인지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또 언젠가는 책임지고 싶지 않아도, 책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
다만 내가 바라는 건 무언가를 정말 책임져야 할 상황이 왔을 때, 두려움 없이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는 것, 딱 그거다. 너무 추상적이고 암담한 바람인 듯 보이지만 별 수 없다. 원래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매일매일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원하던 바를 이룰 용기가 생길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