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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브 Dec 13. 2022

강남역 Exchange

서울 일탈

30분이나 늦게 도착한 강남역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하나도 안 변했다. 마지막 방문이 최소 10년은 됐을 것 같은데. 중학교 시절의 키 크고 남자들에게 인기 많은 일진 여자애들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절대 다다를 수 없고 부럽기는 하지만 닮아가고 싶지는 않은. 코비드의 영향인지 높은 빌딩 사이로 지나가는 행인들이 줄어든 것 같고 네온사인의 강도가 조금 약해진 것만 빼고. 이것도 순전히 기억의 오류일 수 있겠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곳이지만 덜 주늑든 마음으로 약속 장소인 어느 이자카야를 향해 빠른 걸음을 한다.




비바람을 뚫고 나가서 흠이었던 익선동의 실수를 번복하지 않고 싶어서 두 번째 만남은 완벽하게 시작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사실 30분이나 늦어버리게 된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하는 서울에서 나는 고지식한 유럽의 라이프 스타일이 몸에 밴 이방인이긴 하다. 남가좌동에서 강남역까지 노선 공부를 N사의 지도 앱을 통해 여러 번 해놨다. 버스로 서너 정거장 가서 홍대에서 내린 후 2호선 강남역에서 내리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최단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예상 시간보다 무엇보다 빨리 집에서 나오기도 했다. 해가 질락 말락 한 오후 5시. 불어로는 이 순간을 묘사하는 표현이 있다. Entre chien et loup. 한국어로도 찾아보니 그대로 직역하여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하는 것 같다. 개와 늑대의 시간, 뜬금없는 단어 세 개가 모여 아름답고 환상적인 조합을 이뤘다. 하루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 개와 늑대의 시간에 집에서 나와 시린 공기에도 가슴이 훈훈했다. 홍대는 모교이기도 하고 졸업 이후에도 오랜 아지트였기에 지리는 확실히 알고 있다. 게다가 첫 직장인 삼성역에서 일할 때에도 이용하던 2호선이라 머릿속으로 홍대는 어디쯤 강남역은 어디쯤 그려볼 수 있을 만큼 익숙하다. 내게는 오후 5시라고 생각되는 5시가 서울에서는 저녁 5시인 이 시간대에 사천교-연희동-동교동 삼거리 코스에 이미 퇴근하는 자들의 자가용으로 가득한 것은 미리 예상하지 못했다. 홍대역 2호선 승강장에 도착해 시청역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자리에 앉아 대학 시절 많이 오갔던 신촌과 이대 생각을 하며 남은 시간을 알기 위해 핸드폰으로 경로를 다시 살폈다. 그런데 당연히 홍대에서 시청 방향이라고 생각했던 내 계산과는 달리 앱은 당산 방향으로 가는 노선을 추천해 주는 것 아닌가. 뭔가 이 앱이 계산을 잘못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아현역을 지나 보내고 다시 검색해 봤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아현에서 강남을 가려면 당산 방향을 취해야 한다고? 이것은 내 머릿속에 그려진 지도로 보면 상당히 비합리적인 결과인데? 초조한 생각이 들어 마침 옆에 돌아보니 다행히 이어폰을 꽂지 않은 아저씨가 앉아 계셨다.


- 강남역으로 가려면 이쪽 방향으로 도는 게 맞나요?


아저씨도 확실히 모르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의 질문이 귀찮은 것인지 대답이 없었다. 약속 시간은 그 사람의 회의도 미루고 최대한 빨리 당긴 6시. 5시 30분이 넘어가는데 남은 시간이 40분으로 나오고 있어 내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애초의 계획과 이미 너무나도 어긋나 버렸다. 내려서 방향을 바꿔 다시 2호선을 타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머릿속으로 고민만 하던 차에 아저씨가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주며 노선 제안을 했다.


- 을지로 3가에 내려서 3호선을 탄 후 신분당선을 타면 되겠네요.


강남 자체를 잘 모르는데 신분당선이라니, 신분당선 공부를 지금 한다고 해도 분명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역에서 뺏기는 1,2분이 있을 텐데... 내가 탄 2호선은 막 시청 역을 지나가고 있었다.


- 그런데 이렇게 쭉 가도 신분당선 경로랑 7분밖에 차이 나지 않아요. 그냥 쭉 가셔도 될 것 같은데. 


자책과 쪽팔림으로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았다. 또 늦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에게 늦겠다는 메시지를 보낼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러자 바로 친절한 답변이 왔다. 을지로 3가에 내려서 3호선을 탄 후 교대에서 다시 2호선을 타보라는 제안이었다. 옆에 앉은 아저씨의 말에도 매우 일리가 있었는데 7분 차이면 갈아타는 중에 생길 수도 있는 변수는 완전히 제거하는 거니까. 그때 막 을지로 3가에 도착한 시점이었다. 순간적으로 그의 말대로 따라보고 싶은 생각에 끌려 일단 내렸다.


- 여기서 내릴게요, 감사합니다 아저씨.


대학교 때 커피-담배-글쓰기 단짝이었던 이대에 다니던 친구가 판교에 살았다. 우리는 각자의 강의가 끝나면 홍대 아니면 이대 커피숍에서 만나 시간을 보냈는데 헤어질 때 을지로 3가 역에서 그 친구가 3호선으로 갈아타는 데까지 동행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과연 을지로 3가 역 2-3호 갈아타는 통로 역시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놀라울 만큼 몸과 마음이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이 부분에는 서너 개의 계단이 있고 저 부분에서는 도는 지점이며 그다음엔 다시 계단으로 내려가고 하는 것 등등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들이 실체가 되어 눈앞에 나타났다.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통로를 지나 지옥같이 좁은 을지로 3호선의 승강장에 도착하여 당연히 (남쪽으로 내려가는) 종로 3가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로 들어왔다. 한 번 틀렸으니 두 번 틀리면 안 되지 하는 생각에 들어가자마자 다시 노선을 보니 재밌게도 또 반대 방향으로 들어왔다. 을지로 3가에서 종로 3가는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미리 알아봐 둔 경로가 아니라 순전히 내 위-아래(남-북) 개념의 이미지적인 기억에 의지하여 따라온 결과라 헛웃음이 나왔다. 세계 어느 도시에 떨궈놔도 지하철 잘 타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모국에서 실수를 연달아하다니. 또다시 그에게 늦었는데 "더" 늦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했다. 이 정도면 오늘 만남의 시작은 대단(히 망)한 거다. 한 시간짜리 회의 미뤄서 달려온 사람에게 그 반 시간을 혼술 하게 하다니. 




허무한 고생 끝에 강남역에 드디어 도착했다. 패션용품 상가들로 지하가 이렇게 즐비했었지. 서울에 도착했을 때 얇고 높은 굽이나 몸에 꽉 맞는 치마 혹은 바지를 입으면 한물 간 유행이라고, 아무도 발 아픈 굽 신지 않고 편리와 유니섹스를 강조한다고 주변 가족들이 말해줬다. 아니나 다를까 집 동네에서 여자들을 유심히 살펴봤는데 다들 운동화에 배기 바지 등을 입은 사람들이 대부분. 이건 2022년 11월 서울시에 부유하는 극단적인 페미니즘의 부작용 아닌가. 유럽인의 동떨어진 시선일지 몰라서 누구에게도 내색은 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유행이 어떻건 얇은 굽이 더 섹시하고 펑퍼짐한 옷들이 싫고 맞지 않을 뿐인데 이 주장은 어쩐지 먹히지 않았다. 그런데 강남역에 오니 전혀 다르다. 젊은 여자애들의 짧은 치마에 속이 비치는 스타킹에 굽 높은 부츠에 유니섹스의 구석이라곤 찾을 수가 없다. 과연 기억 속의 강남역 유흥가의 분위기가 찐하게 나는데? 


지하철에서 알게 되었는데 강남역의 강남대로를 중심으로 왼쪽은 서초구 서초동 오른쪽은 강남구 역삼동이었다. 약속 장소로 정한 이자카야는 강남대로 왼쪽에 있었기에 서초구에 속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자 이상해졌다. 서초구는 내게 프렌치들이 사는 서래마을 등을 예로 들어 조용하고 고상한 느낌으로 여겨왔었는데 오늘 저녁 이 강남구가 아닌 이 서초구 땅에서 뼛속까지 오색찬란한 사심으로 가득한 내 목적을 다 이룰 수 있을까.


서울에서 정해진 시간이 있기 때문에 이번이 두 번째가 될지 마지막이 될지 몰라 약속이 잡히길 기다리면서 이 만남에 올인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해왔다.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데 아무 준비 없이 나갔다가 분위기에 이끌려 술 마시면서 쿨한 대화만 하고 돌아오면 15년 전처럼 돌아오는 길에 후회를 가슴에 품어 안고 잠을 청하겠지. 익선동에서의 2시간처럼 그 간의 안부를 주고받고 간단한 추억을 회상하는 선을 넘어야 하는데. 안타깝고 한심한 과거의 순간들은 이뤄지지 않아서 또 그대로 아름답지만 이제는 다른 아름다움을 원했다. 세월이 흘렀고 경험이 쌓였으니 기존의 관계를 초월하는 새로운 관계로의 진입이 가능한지 궁금했다. 겉도는 이야기는 싫지만 형이상학적인 주제, 정치 사회에 관련된 진지하고 심각한 문제들은 피하고 싶었다. 매우 개인적이고 은밀해서 한국 사회에서 웬만하게 썸 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질문들만 생각났다. 난 곧 떠날 사람이니까, 68년도에 억압과 금지에 저항하여 성해방을 이뤄낸 프랑스에 사는 사람이니까. 한 밤 중에 불면증을 이용하여 대담하게 세 가지 To do 리스트를 생각해 놨다고 전했다. 거기에 리스트가 뭔지 묻지도 않고 그저 다 해보자는 짧고 완벽한 답변을 들었다. 편의상 정한 강남역이지만 너도나도 어쩌면 다들 이런 생각하는 거대한 유흥 사막 한가운데에 떨어진 것은 우연치 곤 교묘했다.


준비해 온 리스트들이 시시하면 어쩌나 하는 고민도 이 사람을 잘 모르기 때문에 했던 것 같다. 적정 수위가 어느 정도일지 몰라서 이것은 시시하거나 지나치거나 모 아니면 도인 격이었다. 리스트에 적인 목록이 나를 그럴싸하게 포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들이란 점에서 그 가치가 어떻든 뒤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리스트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는 오랫동안 생각해본 것이기도 하고 둘째 셋째가 자연스럽도록 하기 위한 호칭 정리였다. 나이, 직함, 가족 관계 구분 없이 이름을 부르는 프랑스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사람을 지나치거나 만나면 이름을 기억해서 부르고 인사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안녕하세요 보다는 누구님, 안녕하세요.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보다는 누구님,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이 사람과는 업데이트되지 않은 2005년 때의 회사 직함으로 부르거나 호칭 부르는 상황을 애매하게 피하가며 대화를 해왔기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호칭 정리를 하고 싶었다. 두 번째 목록은 세 번째가 가능한지 보려는 도덕성 테스트였다. 파리에서야 어떤 식으로든 술 한 잔 하면 가볍게 대화로 풀어갈 수 있는데 여기는 사회적 압박이 강한 한국 아닌가. 세 번째는 두 번째 도덕 테스트의 결과에 따라서 추가적으로 할 수 있는 수위 높은 진실 게임으로 생각해 놨다. 세 번째까지 오면 오픈 바라는 것이다.  




총 3층으로 된 이자카야는 테이블이 모두 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3층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셨다. 3층에 도착해 두리번거린 후 손을 흔들어 왔어요라고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룸 하나하나를 엿봐야 했다. 원형으로 된 복도를 중심으로 왼쪽 오른쪽이 각기 다 룸이었는데 작은 유리창 너머로 쳐다보니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아니다. 반 바퀴를 돌았는데도 찾지 못해서 내가 설마 못 알아본 것인가 걱정이 들었다. 계속 돌다가 거의 한 바퀴를 다 돌아 원점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오른쪽 룸 창문을 넘겨보니 조금 전의 걱정은 너무나도 헛된 것이었다. 이 얼굴을 못 알아볼 수가 없었어, 이렇게 확실한데. 어두컴컴한 술집 안에 아늑한 등잔이 밝혀주는 작은 룸 안에서 맥주 한 잔과 함께하고 있는 이 사람. 미소가 지어진다. 저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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