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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있는 무대 May 01. 2020

요리 재미없어?

아내와 나의 차이

요리는 내게 재미와 창조의 영역 중 하나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주방에서 요리할 때면 일부러 기웃거리며 거들었다. 이모들이 식사 준비할 때면 재료 넣는 이유나 순서를 묻기도 했고 각 재료 넣기 전과 넣은 후의 맛의 변화에 신비로움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요리는 내게 창조의 영역이고 재미의 영역이다. 그냥 먹으면 거부감 드는 야채부터 생으로 먹으면 탈 나는 육류와 어패류 등이 불과 물과 기름의 조화로 수천 가지의 요리로 창출되는 과정은 생존을 넘어 미학이다.

요리 즐기는 나와 다르게 아내에게 요리는 부담이라 한다. 맛있게 해야 하고 잘해야 하는. 장모님으로부터 시집가면 매일 할 일이 요리일 테니 결혼 전에는 굳이 힘들게 주방에 들어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아내의 요리는 유튜브 백종원 선생과 장모님의 전화 찬스 도움을 받아 완성되곤 하는데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 노심초사하고 신경을 많이 쓴다. 맛이 없을까 봐! 마치 면접 보는 취준생의 자세랄까.

매일 저녁, 어떤 맛이 펼쳐질지 열린 결말을 향해 신나게 요리를 하는 나와 다르게 책임감과 부담감을 안고 요리하는 아내와의 차이는 개인의 성격 탓인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각자에게 요리란 어떤 의미인지 대화를 나누었는 데 어릴 적부터 들었던 메시지에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나에게 요리란 선택적이라 책임과 부담이 덜하다. 재미와 창조의 영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면 아내에게 요리란 아내, 어머니의 전적인 일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의무라 책임도 크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재미는 있지만 평가(?) 압박도 있고 여자로서 정체성이 이어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가끔 씩 밤마다 이런 대화를 나눈다.

요리 하나에서도 발견하는 즐거움과 의무감은 식탁에서만 있지 않다.

우리 각자는 의무와 책임의 영역이 강했던 부분이 무엇인지 이야기 나눈다. 그래서 즐겁지 않고 하고 싶지 않은 것. 아니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꾸역꾸역 하고 있던 게 무엇인지도 나눈다.

덕분에 나의 의무를 아내가 알게 됐고 지지와 응원을 받으며 한결 숨을 쉬게 됐다.

의무와 책임이 강하게 느끼는 영역에서 즐거움과 재미의 영역으로 하나 씩 옮기자고 약속을 한다. 아내의 요리 맛은 그대로지만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모습을 본다.

해야만 하는 것들이 집 밖에도 많은데 집 안에서도 그렇다면 짜증 많이 데쓰다. 학교와 군대가 아니라 집이다. 집에 오면 긴장과 의무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내가 만든 수제비 청양고추 4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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