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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있는 무대 Aug 09. 2020

착한 아들이 나쁜 남편이 되는 놀라운 신비

남자로 성장할 시간을 확보하세요.

-대화가 되지 않는 남편으로 고통스럽다는 사례를 만난다. 시어머니에겐 착한 아들이었는데 본인에게만 나쁜 남편이라는 이야기.

-도통 속을 모르겠는 남편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들



10대 시절,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도전과 남자다움을 이야기하며 더 강해지길 바라는 아버지는 내게 큰 벽이었고 산이었다. 자발성과 꿈꾸는 것들을 공유하면 현실과 생계에 대한 이야기만 돌아오니 답답했고 저항만 커졌다. 대개 꿈과 자발성은 신앙에 기반했고 그 기반은 어머니의 신앙에서 이어졌다. 의료 선교를 꿈꾸었고 많은 이들을 돕는 삶을 준비하는 10대였다.


신앙의 근본은 자연스레 어머니와 맞닿는다. 참 착한 어머니. 불같던 아버지를 늘 헤아리는 착한 어머니. 아버지가 소리 지르면 어머니는 무서워했고 그날 밤, 눈물을 흘리며 애써 기도하며 신경질적인 아버지와 가족의 평화를 위해 늘 기도했다. "네가 아버지를 이해하라." 10대 때부터 아버지를 이해하며 살았다. 10대인 아들이 40대인 아버지를 이해하라니. 보통의 이해심으로 되진 않는 일이다. 어머니의 눈물과 신앙이 가능하게 했다. 아버지를 이해한 아들이 이해 못할 게 무엇이 있었겠는가.


정확히 따진다면 그것은 이해라기 보단 감정 억압에 가까웠을 것이다. 분노도 삭이고 표현도 누르는 게 익숙해진 10대였다. 북받친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누르는 힘은 더 커졌고 화가 날 때마다 기도의 소리는 더 커졌다. 주변에서 볼 때 신앙심이 두터운 남자로 성장해갔다. 착한 아들, 착한 남자로 커가면서 속은 무더 졌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무시한다고 그 불길이 없어지겠는가. 불은 일하는 에너지로 사용되었다.


아버지 가게 일을 도우며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갈등 상황에서도 습관적으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해하지 못해도 그리해야 했다. 뒤에서 울고 있는 어머니를 보면 말이다. 아버지의 소리 지름보다 어머니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더 아팠으니 말이다.


점점 일 중독이 되었다. 아픔을 느끼면 치료를 받든 회복의 시간을 가져야 하지만 느낄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다. 아픔을 잊는 방법은 성과와 목표를 세우고 미친 듯에 달리면 되었다. 재수, 군생활, 학과 대표, 개인 프로젝트, 연구소 인턴 등 일 중심으로 달렸다. 거기서 생긴 관계의 마찰들은 사람 간 일이었지만 일 때문이리라 생각하고 갈등대로 놔두고 살았다.


적의를 품는 동료들이 많아지기 시작할 시점, 모두를 위해 열심히 달린 게 모두에게 미움을 받는 계기가 됨을 알게 되었다. 나를 보는 차가운 시선과 날 선 말들이 한순간에 무력하게 만들었다. 도저히 견딜 힘이 없어 심리치료를 받았다.


심리치료를 받았다. 안전한 심리치료의 장에서 일 중독으로 만들게 된 아버지를 원흉 삼아 분노의 소리를 질렀다. 이게 다 아버지 때문이라고.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라고, 그러다 옆에서 어머니가 울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치료의 장에서 어머니의 말이 울려 퍼진다."네가 이해해야지." 이 말을 듣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한참을 울었다. 나에게 소리를 지르던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의 이해하란 말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감정을 깊이 있게 마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상태를 모르는 사람이 타인의 상태를 알리 없다.


착한 아들이었으나 사실은 자기 마음 하나 표현 못하는 무기력한 아들이었다. 26살, 처음으로 내 마음에 대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무엇에 화나는지, 슬퍼하는지, 두려워하는지, 기뻐하는지 말이다. 4년의 성장과정을 통해 비로소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한다.


착한 아들은 결혼할 때 여자가 아니라 엄마를 찾는다.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을 엄마. 여자를 찾지 않고 엄마의 상을 따른다. 어떤 정신과 의사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남자는 섹스할 수 있는 엄마를 찾는 거다. 착한 남자가 아니라 마음 표현 못하는 남자, 자기를 돌볼 줄 모르는 남자라고 표현해야 한다.


남자가 되는 성 과정을 통해 아내와 1시간이든 3시간이든 대화할 수 있는 정서를 갖췄다. 다툼도 다정함도 서로를 존중함에 기반해서 하는 기쁨을 누린다. 여전히 어리석고 미숙한 게 많다. 그럼 어떠랴. 최소한 기대함에 따른 실망은 느끼지 않고 불필요한 감정소비는 피한다. 결코 아내는 엄마 같지 않고 남편은 슈퍼맨이지 않음을 서로 알기 때문이다.


 40이 넘고 결혼을 했어도 소년에서 멈춰 있는 착한 아들들이 많다. 엄마를 아버지에게서 지키느라 남자가 될 기회를 잃어버린 남자들. 자신을 표현하는 건 서투르지만 일로써 정체성을 찾는 남자들. 어른의 문제를 아이에게 전가시키면 안 되는 이유다. 이들이 겪는 고통의 소리를 듣고 헤아린다. 여기저기 착한 아들로 자라는 10대들도 여전히 많다. 어른이 되어버린 소년들에게 깊은 이해와 애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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