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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있는 무대 Jul 07. 2020

스트레스. 아오

마음의 여유는 밖에서도 오고 안 오기도 하고..

분노가 쉽게 일고 예민하고 짜증이 많아진 날은

틀림없이 근무시간이 긴 날이었다. 새벽 일찍 시작한 업무는 낮 2시면 끝이 났다. 새벽이라 출근길도 전혀 막히지 않고 퇴근도 낮 시간엔 차가 많지 않아 가뿐하게 집에 도착한다. 낮잠 1시간 자고 일어나면 오후 4시쯤 된다. 개운한 몸으로 하루의 두 번째를 사는 셈이다. 집안일을 하고 먼지를 닦아낸다. 쓰레기도 재활용한다. 어느새 일이 끝나고 돌아온 아내가 집에 오면 내가 준비한 저녁 식사로 기분 좋게 식사를 한다.


오늘은 분노가 쉽게 일어나는 날이었다. 새벽 일찍 출근해 저녁 9시가 되어서야 집에 왔다.  낮잠을 자지 못한 신체 컨디션은 최악이 된다. 이 상태로 손님을 맞이하고 응대하는 것도 힘들다. 제정신으로도 맞이하기 힘든데 몸에 힘이 부치니 마음에 여유가 없다.


본인이 급하다고 재촉하며 짜증을 내는 손님이 찾아오셨다. 왜 적게 준비해놨냐며 짜증을 내시는 데 최대한 맞춰드린다. 오랜 경험으로 금세 원하는 걸 준비하고 30명 먹을 양을 보내드리는 데 10분도 안 걸렸지만 손님은 처음 올 때부터 갈 때까지 재촉과 짜증이었다. 응대는 친절하게 하지만 손님이 가고 나선 진이 빠지고 힘이 든다.


평소 같으면 여유롭게 농담도 하고 안심시키며 준비했을 텐데 오늘은 전혀 그럴 힘이 없었다. 집에 오니 아내는 이미 식사를 하고 과일을 깎아 기다린다. 강릉에서 사 왔던 마른오징어에 마요네즈와 간장 그리고 청양고추를 쎃어놓은 소스까지.


기분 같아선 씻는 게 먼저였지만 아내는 기다리느라 힘들었다고 같이 먹자고 한다. '반대였다면 기다렸을 텐데...'하고 속으로 읊조린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오징어를 씹는 데 자꾸 흘리고 놓친다. 옆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는 아내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다. 너무 지친 상태다. 반쯤 감긴 눈에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티브이를 보는 내게 경청하지 않는다며 짜증을 내는 아내. 물을 마시려고 하는 데 뚜껑은 놓친다. 말을 이어가던 아내는 경청하지 않는 내게 화를 낸다


남편으로서, 아내를 평소에 더 많이 이해해주고받아주었던 것들을 자랑이라고 여기지도 않고

당연하다고 느꼈는 데 아내는 그러지 못하는가 보다. 하지만 그런 아내를 달랠 힘도 없다.


어쩌면 그동안 내게서 나왔던 여유와 친절은 몸이 충분한 쉼을 가졌기에 가능했다고 느낀다. 마음의 깊이는 내 안에서 올라오지만 마음의 여유는 꼭 내면의 것만은 아니다. 마음을 토닥이는 상담자로서 임상 같은 일상 경험을 한다. 삶과 일에 지친 내담자가 나를 찾아 본인이 관계로 힘들어한다면 그에게 어느 정도의 여유의 공간이 있는지를 꼭 살펴보겠노라 다짐하며 자격증 공부 책을 펴놓고 졸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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