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아있는 무대 Aug 11. 2020

엄마가 된 아내의 눈물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슬픔에 대하여

*아래 사례는 내담자 동의를 얻어 기록됩니다.

드라마 치료기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상담 윤리상 상세한 기록보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


40대 중반 여자분의 상담이 끝났다.


한참을 오열하고 나서야 평온을 찾았다. 마지막엔 까르르 웃으며 삶의 자리로 돌아갔다.


울지 못하고 버티는 게 익숙했던 그녀는 삶의 자리에서 많은 일을 감당해왔다. 형제 중에 막내로 나이 차가 15살 나는 큰오빠 아이까지 보살폈다. 중학생 때부터 생의 전선에 나가 생활에 보탬을 하여 오빠 언니들의 먹을 것과 공부할 거리를 제공했다.


어릴 적 둘째 오빠의 성추행 기억은 20대를 갉아먹었다. 남자를 무서워하다 못해 혐오했다. 대쉬하는 남자를 피했고 남자를 몰랐다. 그래도 어쩌다 남자를 만나볼까 한 사람이 바로 남편이 됐다. 30년이 지나 오빠에게 찾아가 따졌지만 쭈뼛쭈뼛 넘어가는 대응에 마음이 다쳐 의절했다.

큰언니에게 말을 해도 이해하란 말만 돌아와 또 마음이 다친다.


결혼 생활에서도 엄마의 역할을 했다. 남편을 챙겨야 하는 엄마 같은 아내. 챙겨주지 않으면 불안한 남편. 남편은 본인을 바보 취급하지 말라고 해도 남편을 불안해했다. 불안해하지 않으면 더 불안했기에. 남편은 본인이 챙겨주고 세워줘야지만 제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그런 그녀가 토로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부모님은 그녀가 국민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돌아가셨다. 막내로 태어났지만 부모의 역할을 했던 딸은 결혼해서도 엄마가 됐다.


그런 그녀가 남편과의 작은 해프닝에서 유발된 분노를 주체 못 하고 이혼 서류 작성까지 마쳤다.


"제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년이 지나도, 30년이 지나도, 15년이 지났어

모든 게 지금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것들로 인해 현재 일상은 문제와 불만 그리고 분노와 억울함으로 가득 찼다.


"제 삶은 왜 이리 힘들까요? 억울한 게 많아요."


눈 앞의 문제는 이혼이었지만 을 관통하는 것은 '억울함'과 홀로 해결해야 하는 '외로움'이라 느껴 잠시 침묵했다.

.

.

.

"마음 속 하고 싶은 말을 한다면 누구에게 가장 먼저 시겠어요?"


"남편이요."


1인칭 화법으로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게 했다. 불만과 서러움이 터진다. 호우주의보로 마을이 잠듯 그녀의 분노에 온 공간이 잠긴 듯 했다.


자리를 바꿔서, 남편의 자리에 가서 본인을 보세요.

"아내가 어떻게 보이세요?"


그녀는 남편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본다.

비로소 자기를 본다.


오열하기 시작했다. 불쌍한 내 인생. 비명을 지르고 소리를 지르고 떼굴떼굴 구른다. 그녀에게 필요한 시간 이리라 느끼며 옆에서 기다려준다.

울다가 스스로 누르는 그녀에게 '누르지 마세요.' 한 마디에 더 운다. 오열하기를 십 여분..


8살의 자신이. 16살 때 자신이. 27살 때 자신이. 그리고 지금의 자신이 운다. 울기 시작할 때, 힘을 찾으리라 믿기에 더 울도록 놔둔다.


한참을 울던 그녀는 엄마를 찾는다. 7살 아이가 엄마를 찾듯 엄마를 찾는다.


하늘에 있는 엄마를 불러 자신의 오른쪽에 앉혀 기댄다. 엄마에게 이르는 딸. 얼마나 이르고 싶었을까. 마음껏 이르도록 한다. 지금껏 겪었던 억울함이 풀리겠냐마는 다 고발하도록 한다.


한참 후, 그녀가 안정이 될 때 몸과 마음을 통합하도록 돕는다. 머리, 목, 어깨, 팔, 가슴, 배, 엉덩이, 허벅지, 무릎, 발, 손 등 신체의 어떤 부분이 엄마의 손길이 느껴지는지 묻는다. '가슴'이라고 한다.

가슴 위에 자신의 손을 살포시 얹도록 했다. 그리고 그 손과 가슴에 통하는 온기에 어머니의 온기를 느끼도록 했다.


아기처럼 웃는 그녀. 구름에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좋다고, 자신은 따듯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녀. 비로소 이제야 본인을 바라보았고 위로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느낌을 묻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보낸다.


이혼을 할지 안 할지는 내 영역이 아니다. 상담 중 이혼하고 싶진 않지만 정체모를 분노로 이혼 서류까지 작성했다고 말했었다.


이 사례는 이혼하냐 안 하냐가 중요하지 않다.

정체모를 분노에 휩싸여 문제를 처리하는 자신의 중심을 잡도록 돕는 게 먼저였다. 문제만 해결한다고 관계가 해결이 되겠는가. 아니하면 탈이 생기기 마련이다. 분노를 잠잠히 만들고 갇혔던 과거로부터 벗어나 현재로 돌아오도록 초청할 때에서야 자신의 현실을 직시한다.


과거의 눈물을 지금도 흘리는 사람들. 예전의 기억으로 오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오늘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 위로와 애도가 필요한 사람들.

전부를 도울 수 없으나, 찾아오는 이를 도울 수 있도록 부단히 오늘을 산다.

작가의 이전글 착한 아들이 나쁜 남편이 되는 놀라운 신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