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이라고 부르는 아들과 다르게 짜장면이라고 부르는 아버지다. "아들~짱깨 하나 때려?" 최근 가족끼리 소소히 환갑잔치도 했건만 짜장면 앞에서는 20대 갓 전역한 병장처럼 껄렁거리는 모습이 늙은 얼굴과 맞지 않아 실소가 나온다.
아버지는 짜장면을 정말 좋아하신다. 그냥 좋아하시는 게 아니라 집착적으로 좋아하신다. 인천에 거주하니 차이나타운 갈법한데 거긴 '찐'이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신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물으면 신포동 외진 곳 70년이 넘은 중국집 00루로 간다. 백짬뽕과 짜장면. 이 두 가지를 좋아하시는 아버지다.
아들 딸 졸업 날에도. 힘든 날에도. 먹을 게 없는 날에도. 많은 날에도 짜장면을 찾는 아버지다. 이게 왜 좋을까. 예전에야 우리 집이 빚도 많고 외식 한번 하기가 어려운 지갑 사정이라 자장면 먹는 것도 큰 마음먹어야 했던 터라 반가웠지만 서른이 넘고도 나름 집안 사정이 나아졌다고 얘기할 수준이 되어도 외식의 주 결정자인 아버지 의견은 짜장면을 벗어나질 않는다.
그러다 알게 된 비밀이 있었다. 서른이 넘고 나서 아버지랑 친구처럼 더 많은 대화를 하는데 어릴 적에 아버지(내겐 친할아버지)가 큰형만 몰래 데리고 가서 짜장면 사줬다는 것이다.
드라마나 가슴 아픈 사연에만 등장하는 부모님의 장자 사랑과 짜장면 편취에 대한 이야기가 아버지 이야기였다니. 11살이던 막내아들은 21살 큰형과 아버지가 짜장면 먹고 들어와서 풍겨낸 냄새에 눈물이 났고 서러웠다고 했다. 그렇게 5년을 참아도 사주지 않아서 아버지(친할아버지)에게 가서 한 그릇만 사달라고 애원했다고 했다. 혼나기를 몇 번을 하고서 결국 어머니(친할머니)가 모시고 가 사줬다는 이야기다.
맛이 너무 좋아 먹을 때는 정신없이 먹다가 다 먹고 집에 오는 길엔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사준 게 차별받는 것 같아서 서럽다고 했다. 아버지가 찾던 짜장면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절 들었던 음악은 그저 멜로디로만 남는 게 아니라 그 시절의 기억과 정서가 묻어 나오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감성이 현재와 과거가 어우러진다고 했던가. 아버지에게 짜장면은 친할아버지에게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갈망과 어린 시절 5년을 참고 참아 겨우 얻어낸 트로피와 같은 음식일 것이리라고 보인다.
음식이 흔해져 너무 많이 먹어 사람이 병드는 시대와 다양해진 세계 음식이 어플 하나로 집 앞까지 오는 살기 좋은 시대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70년 넘은 짱개 한 그릇 때리러 동인천 신포동 낡은 건물을 찾으신다.
아버지가 추억을 드시는지, 정서를 느끼시는지 말하시진 않았지만 아들 눈에는 15살 소년이 5년을 참고 참아서 차별과 서러움을 무릅쓰고 배곯은 목소리로 마음 굶주림을 채우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아버지가 삼킨 슬픔은 짱깨 한 그릇 때려도 허기진 배일 것이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에 그릇에 단무지 하나 더 얹어드리고 빈곤한 지갑에서 꺼낸 카드로 계산하는 것으로 사랑을 표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