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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있는 무대 Apr 17. 2020

안될 거라고 누가 그래?

고장 난 녹음기 부수기

무언가 추진하려고 해도 내 안에 안 될 이유를 녹음기처럼 틀어놓고 내재화했음을 발견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교회에서 음악교실이 열렸다. 월 2만 원 내면 일주일에 1번씩 3개월을 배울 수 있었다. 혜자스런 교육이었다. 또래 친구들과 형 누나들 동생들은 기타, 피아노, 드럼, 바이올린 등을 배웠다.

드럼을 배우고 싶어 어머니께 말씀드렸는데 "곧 중학생이 될 텐데 공부 안 하고 드럼 배워도 되겠니?"라고 하셨던 게 기억이 난다. 이 말에 반박할 논리도 없어서 포기했다. '그래 6학년 때는 공부하느라 바쁠 테니 이걸 배울 시간은 없어. 배우기엔 너무 늦었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30살이 된 지금도 드럼 칠 줄 모른다. 앞으로도 못 칠 거다. 배우지 않으면.

대학 입학해서 행사가 많아졌고 주최 측으로 포스터로 광고할 일이 많았다.
그림판 작업도 버벅거리던 때라 디자인 작업은 애플 장비를 갖춘 누군가의 일이었다. 포토샵을 구동하면 복잡해 보이고 '난 못해'라는 생각을 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할 줄 모른다. 그냥 마음 편하게 디자인 전공한 친구에게 손글씨로 그려서 보여주고 5만 원 을 건넨다. 포스터는 완성된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포토샵도 드럼도 내겐 너무 어려운 작업이고 머리가 아픈 일이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열심히 해도 퀄리티도 떨어진다.

포토샵과 드럼뿐일까. 내 안에 녹음기를 부수고 나서 살핀 건 처음엔 못했지만 현재는 숙련도 있게 하는 게 있다. 나름 전문성도 갖췄고 누군가에게 설명해줄 수 있다. 어려운 걸 계속 어렵도록 두고 싶지 않았다.

삶에 태도를 모르는 건 평생 모르도록 두고 싶지 않았다. 유튜브와 구글링을 통해 간접 학습을 하고 가치가 높은 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다 관여할 수 없고 잘하기란 쉽지 않지만 못한다고 손도 안대 보는 게 억울하다.

내 안에 고장 난 녹음기처럼 계속해서 틀어지는 소리에 저항하기란 쉽진 않다. 신념이 되어버린 무기력을 떨쳐내는 데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말이다.

성장을 하는데 방해되는 요소는 환경적인 면과 더불어 자신 안에 내재된 가치들을 점검하는 일이다. 안 해봤기 때문에 못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계속해서 안 하고 못하는 상태로 둘 것인지는 결국 내 의지다.
더 큰 문제는 타인에게도 자신의 녹음기를 틀어주는 거다.

지금까지 여럿 녹음기를 같이 부수는 작업을 했다. 혼자 하면 어렵다. 같이 성장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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