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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구의식 Dec 28. 2018

발리의 비오는 크리스마스 :하얏트리젠시 발리 호텔투숙기

발리 두달 살기의 일탈

발리의 크리스마스는 심심하다. 조용한 사누르 지역이라 더 그런가보다. 식당이나 상점마다 하나씩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해두었지만, 관광객을 위한 것이지 현지인 누구도 크리스마스에 들떠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제법 트렌디한 바bar나 레스토랑에서는 소소한 이벤트가 열리기도 한다. 공연을 한다거나 야외 영화 상영을 한다거나. 


얼굴과 목덜미가 습하고 찐득한 크리스마스라니, 삽십년 넘게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만 꿈꿨던 나는 영 기분이 이상하다. 자동 반사적으로 크리스마스를 위한 자체 이벤트를 마련하기로 했다. 실은 하루이나마 호텔에 묵어도 죄책감없어 보려는 마음이기도 했다. 


나는 호텔이 좋다. 좋은 호텔은 더 좋다. 좋은 호텔이란 깨끗하고 친절한, 그리고 세심하게 투숙객을 배려하는 그런 호텔을 의미한다(물론 언제나 그에 걸맞는 지불을 요구한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잡지사에서 일해온 나는 운이 좋게도 별이 5개쯤 되는 고급 호텔에 묵어볼 기회가 적지 않았다. 여행 잡지에 있으면서 그 관심이 더 높아지기도 했다. 그렇게 쌓은 경험상 결과는 아쉽게도 가격이 높은 고급 호텔일수록 좋은 호텔이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를 위한 호텔을 위해 나는 숙소가 위치한 사누르 지역 내의 해변가 호텔에서 몇 곳의 후보를 골랐다. 10만원 이내부터 10만원을 훌쩍 넘는 부담스러운 호텔까지 훑어보고, 20만원이 넘어가는 호텔은 목록에서 제외했다. 사누르 비치에서 직접 지나면서 본 프라마Prama 사누르 비치 호텔 - 메르큐르Mercure 리조트 사누르 정도가 차례로 가격이 적당했고, 역시 지나다 눈여겨 본 하얏트 리젠시Hyatt Regency에도 마음이 쏠렸지만 20만원 가까운 가격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사실 발리 호텔는 가격 대비 퀄리티가 꽤 훌륭한 편이지만, 현재 묵는 숙소를 30일에 50만원대에 구한 터였다. 엄청 싸게 구했다 신이 났던 남편과 달리 숙소를 가보고 가격을 알게 된 나는 까무라치게 마음이 아팠다. 정확히 그 가격의 숙소를 얻은 거였다. 골목으로 꼬불꼬불 많이 찾아들어가야 하는데 그 길이 다른 동네에 비해 청결하지 못하다던가, 그리 좁진 않지만 원룸형이라는 것, 친절한 직원이 상주해 있긴 하지만 나만큼 영어를 못한다던가, 청소나 수건 교체나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던가, 나는 한동안 낑낑대며 그곳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그래도 열흘 넘게 살다보니 정이 들어, 가까이에 야시장과 저렴하고 맛있는 현지 식당이 많고, 예쁜 정원과 조용하다는 것, 현지인의 리얼을 좀더 느낄 수 있는 동네라는 장점을 찾아냈다. 


하우스 렌트비가 그리 정해지자 호텔 숙박비는 터무니없이 느껴지는게 사실이었다. 발리의 큰 장점이기도 한 한국보다 낮은 물가는 같은 가격으로 하룻밤 묵을 수 있는 한국의 호텔에 비할 수 없는 퀄리티를 자랑한다지만. 두 퇴사생의 두달살기 형편이란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우린 하루를 위해, 우리가 열흘 정도는 (행복하게는 아닐지라도) 짐을 풀 수 있었을 가격으로 하얏트 리젠시 발리를 택했다. 발리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이왕 기분 한번 내보자,하는 마음으로. 


12월 24일 아침, 오늘은 더 이상 크리스마스 이브여서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그곳에 가기 때문에 특별한 날이 됐다. 2시 체크인 시간보다 넉넉하게 1시간 정도 먼저 도착해 조금 일찍 룸에 입성한 남편과 나는 이후 3분, 5분, 길게는 10분 정도의 간격으로, "좋다" "멋지다" "우와"라는 말만을 사용한 대화를 나눴다. 


그랜드 하얏트 발리였던 이 호텔은 리노베이션을 거쳐 2019년 1월 1일 정식 오픈을 앞둔 모양이었다. 호텔 내 위치한 레스토랑도 오픈한지 한달정도 밖에 안되었다고 했다. 환경친화적이면서도 고급스럽고 다정다감하게 정돈된 룸, 정원을 맘껏 즐길 수 있게 만든 발코니, 쾌적한 욕실까지 모두 많은 사람을 거치지 않은 상태였고, 그럼에도 새것이 주는 위화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가구와 벽 장식은 보드랍게 표면이 다듬어진 나무 소재로 꾸며졌고, 어메니티는 플라스틱 대신 나무를 사용한 칫솔이 비닐 대신 재생종이봉투 안에 넣어져 있었다. 그게 그리도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 발리에 머무르며 식당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받아본 적이 없다. 종이, 대나무, 유리 다양한 소재의 친환경 빨대를 사용했다. 발리의 이런 친환경 마인드가 존경스럽다. 호텔 룸 역시 언밸런스하지만 친환경 컨셉을 최신 트렌드로 해석한 느낌을 안겨줬다. 

거기에 바삭거리는 커버가 씌워진 폭신한 침구와 수납장 가득 여분이 채워져 있는 보송보송한 수건, 유리 보틀에 담겨 있는 무료 제공되는 생수, 커피 프레셔가 챙겨져 있는 섬세함에 마음이 구석구석 채워지는 기분을 만끽했다. 정원과 수영장, 체육관 시설, 어느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없어 잠들기 전까지 좋다아,라고 생각했다.  


흔히 '명품'이라 불리는 하이엔드 브랜드를 다루는 잡지에서 주로 일해온 나는 이런 고가품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릴까봐 스스로 늘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치만 진정한 럭셔리함이란 이런 충만함을 안겨준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오버스럽게도 1초 1초 이곳이 소중하고 아늑하게 느껴졌던 데에 우리는 몇 가지 이유를 찾아냈다. 단 하루라는 점, 그리고 우리가 한달에 50만원짜리 숙소에 묵다 왔다는 점!

우리의 숙소 우마 신두 사누르로 인해 이곳에서의 행복이 극대화됐음을 알았다. 일주일 정도 호탕하게 기분을 내서 휴가를 온 참이었다면, 그래서 그 기간 내내 여기 호텔에 묵었다면, 우린 물론 아주 만족스러웠을테지만 이렇게 한 순간 한 순간 특별하지는 않았을 거다. 소박함에 적응했듯이 풍족함도 금방 익숙해진다. 호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여기 수영장과 호텔 앞 바다를 즐기는 정도로 만족하며 진짜 발리의 모습은 놓칠 수 있었을 거다. 열흘가까이 지내니 발리 한달살기의 매력은 오토바이로 현지인처럼 다녀보기, 저렴한 가격으로 현지 식당에서 한끼 때우기, 자주 가는 식당 만들기 같은 거였다. 우린 이곳에서 3일 정도 묵을 수 있는 가격으로 한달짜리 숙소를 얻어 또 다른 경험을 하는 거다. 



12월 25일 아침, 아니 새벽부터 우린 분주하게 움직였다. 얼마 남지 않은 오늘의 이곳에서의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해. (:-) 잘 꾸며진 넓은 정원을 산책도 하고,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는 남편을 기다리다 요가하는 곳을 안내받아 아침 명상도 할 수 있었다. 퀄리티 좋은 조식도 느긋하게 오래동안 챙겨먹고 해변에 마련된 선배드에서 태닝을 하다 너무 더워 참을 수 없으면 수영장에 들어가 몸을 식혔다. 행복하고 느긋했지만 치열한 하루 호텔 투숙을 마치고 우마 신두 사누르 숙소로 돌아간 우리는 하루 종일 피곤했다는! (;-) 


하얏트 리젠시 발리 호텔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귤, 땅콩, 초콜릿이 들어있었다. 사진은 파자마보이(instagram@pajama.boy55)



하얏트 리젠시 발리 호텔에서의 하루.  사진은 파자마보이(instagram@pajama.boy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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