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즐거움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특히 탄탄한 스토리텔링에 작가 개인의 (이런저런 사소한 것부터 인생 전반에 걸친 크고 자잘한) 철학들이 녹아있는 소설이 좋다.
자라면서 읽은 대부분의 책은 소설이었는데, 한때 이게 부끄러워 '교양서적'으로 눈을 돌렸지만,
여전히 소설만큼 재미있는 책은 없단 생각이 든다.
명상이나 심리 관련 서적을 주로 읽은 요즘, 오랜만에 만난 이 소설 덕에 한장한장 읽는 내내 즐거웠다.
이 책의 배경은 모스크바, 1922년 시작돼 32년의 시간 흐름을 담고 있다.
주인공 로스토프 백작이 자신이 지내던 모스크바 메트로폴 호텔 밖으로 평생 나갈 수 없는 종신 연금형을 선고받는다는 상황 설정에서 시작된다. 작가가 백작의 입을 빌려 발휘해내는 유머 감각과 철학적 통찰 TMI가 인상적이었다.
책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못하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
'가장 현명한 지혜는
늘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 것.'
어느 정도 식상한 메시지다. 하지만 마지막에 약간의 반전이 있다.
러시아의 역사를 알아보는 데에도
흥미로운 시간이 됐다.
또 하나,
사람들, 관계, 소중한 사람들, 혹은 자기 주변을 이루고 있는 주변인,에 대한
백작의 태도와 사고가
현재 나의 개인적인 상황들과 버무려져
꽤 깊은 인상을 남겼다.
관계에 대한 시각에 긍정적인 변화를 제시해줬다. 나이가 더 많은 이들이 어린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직위가 높은 자들이 그 아랫사람들을 대하는 방식, 그런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백작의 철학적 내용 위주로 모아두었다.
읽을 때마다 그날의 상황에 맞는, 각기 다른 문구들이 마음을 건드린다.
- 견디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도-예컨대 바다에서 길을 잃거나 감옥에 갇힌 사람들조차도-한 해가 지나가는 것을 꼼꼼히 기록할 수단을 찾고자 한다. 아름답고 근사한 계절의 변화와 평범한 삶 속에서 반복해서 일어나는 온갖 경사스러운 일들이 하루하루를 구별할 수 없는 암울한 나날로 대체된다는 사실에도, 그러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365개의 눈금을 나뭇조각에 새기거나 감옥 벽을 긁어서 표시해둘 것이다.
왜 그들은 지나가는 시간을 표시하려고 그토록 애쓰는 걸까? 겉으로 보기엔 그렇게 시간을 표시해두는 게 그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때에 말이다. 음, 한 가지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이 두고 온 세상의 시간이 필연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아, 지금쯤은 알료샤가 마당에 있는 나무에 오를 수 있을 거야, 바냐는 틀림없이 학교에 입학했겠지, 그리고 나댜, 사랑스러운 나댜는 곧 결혼할 나이가 되겠구나.......
이것만큼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을 꼼꼼히 기록하는 것이 고립된 그들에게는 힘든 한 해를 또 한 번 참고 견뎌내고 이겨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지칠 줄 모르는 투지, 혹은 무모해 보일 정도로 철저한 낙관주의를 통해 그들이 끝까지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찾았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그 365개의 눈금은 불굴의 정신의 증거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주의력은 분 단위로 측정해야 하고 절제력은 시간 단위로 측정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불굴의 정신은 연 단위로 측정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같은 철학적 고찰이 여러분의 취향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냥 현명한 사람은 기념할 수 있는 것은 뭐든 다 기념한다는 것에 동의하기로 하자.
-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는 어떤 생활 방식이 쇠퇴하기까지는 수 세대가 걸린다는 생각에서 위로를 찾기 마련이다. 어쨌든 우리는 조부모들이 좋아했던 노래들에 익숙하다. 비록 우리 자신들은 그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지는 않는다 해도 말이다. 명절 때 우리가 서랍에서 꺼내 살펴보는 요리법은 변함없이 수십 년을 이어온 것들이고, 심지어 오래전에 사망한 친척의 손으로 써서 남기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우리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은? 동양식 커피 탁자나 고풍스럽게 낡은 책상들은 대대로 물려주고 물려받는 것들이 아니던가? 그런 것들은 '유행에 뒤떨어진 것'임에도 우리네 일상에 아름다움을 더해줄 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은 빙하의 움직임처럼 더딜 것이라는 우리의 추측에 물질적 신뢰성을 부여한다.
- 우리 인간은 결국에는 철학을 선택해야 한다. (중략)
책에 의해 형성된 신중한 고찰을 통해서든, 새벽 2시에 커피를 마시며 벌이는 열띤 토론을 통해서든, 또는 타고난 성향에 의해서든 우리는 모두 결국엔 근본적인 틀을 채택해야 한다. 즉, 중대한 사건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온갖 조그마한 행동과 상호 작용도 조리가 서도록 이끌어주는 합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어떤 인과관계의 체계-의도적인 것이든 자연 발생적인 것이든, 납득이 가는 것이든 뜻밖의 것이든 간에-를 택해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수 세기 동안 철학적 위안을 교회의 처마 밑에서 찾아왔다. (중략)
그러나 백작의 경우, 그의 철학적 성향은 근본적으로 늘 기상학적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온화하거나 궂은 날씨가 초래하는 필연적인 영향을 믿었다. (중략) 무엇보다도 그는 온도계의 미세한 변화에 의해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믿었다.
- 그렇다, 늘 그래 왔듯이 인생은 굴러간다.
백작은 자신의 연금형이 시작된 첫날밤을 떠올려보았다. 그때 그는 자신의 대부가 오래전에 해준 말씀대로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었다.
- 커피 그라인더에서 작은 서랍을 조심스럽게 꺼낸 백작은 내용물을 주전자에 부었다(물은 어젯밤에 미리 준비해놓은 터였다). 그는 버너에 불을 붙이고 성냥을 그었다. 커피가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쪼그려 앉기 서른 번, 스트레칭 서른 번에 이어 심호흡을 서른 번 했다. 그런 다음 구석의 작은 찬장에서 조그만 크림 주전자와 영국제 비스킷 두 조각, 그리고 과일 하나(오늘은 사과였다)를 꺼냈다. 백작은 커피를 따른 다음 아침의 감각이 온전히 살아나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중략)
그것은 너무나 완벽한 조합이어서 백작은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다시 커피 그라인더의 손잡이를 돌리고, 사과를 네 조각으로 자르고, 비스킷을 덜어 식사를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하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 그 상실감은 우리가 마땅히 예상하고 대비하고 생의 마지막 날가지 소중히 간직해야 하는 것이다. 하루살이 같은 사랑을 하루살이 신세에서 면하게 해주는 것은 결국 우리의 애끓는 슬픔뿐이니까.
- "농담이 아니라 난 정말 심각해요. 니나의 결심이 너무 확고해서 나는 그 애의 강한 확신이 젊음의 기쁨을 누리는 데 방해될까 봐 두려워요."
(중략)
"그렇다면 그 애(니나)를 믿으셔야 해요. 설혹 그 애가 외골수라서 어떤 잘못을 저지른다 해도 때가 되면 깨닫게 될 거라고 믿어주셔야만 해요. 결국 우리 모두 다 그렇잖아요."
- 하지만 예술이란 가장 부자연스러운 국가의 앞잡이다. 그것은 무엇을 하라는 지시에 지치는 것보다 반복되는 일에 훨씬 더 빨리 지치는,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사람들에게 의해 창조될 뿐만 아니라 짜증 날 정도로 모호하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직조된 대화가 명명백백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할 경우에도 약간의 냉소나 눈썹을 치키는 행동 하나만으로도 전체 효과를 망쳐버릴 수 있다. 사실, 애초에 의도했던 것과 정반대 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도 충분히 수긍이 간다. 따라서 관리 당국자들이 별다른 이유가 아닌 건전성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선호하는 예술 작품들을 수시로 점검하고자 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 타인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삶을 살던 사람이 엄청난 좌절을 경험할 때, 그 사람에게는 여러 대안이 주어진다. 수치심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자신의 처지에 닥친 모든 변화의 증거들을 감추려 할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모은 돈을 도박으로 몽땅 날려버린 상인이라면 고급스러운 양복을 닳아 해질 때까지 입으면서 이미 오래전에 회원권이 말소된 전용 클럽에서의 무용담을 줄줄이 늘어놓을 것이다.
만약 자기 연민에 빠진 자라면 자신이 축복을 누리면 살았던 세상으로부터 물러날 것이다. 아내 때문에 사회적 수모를 당하고 오랜 세월 고통을 겪은 남편이라면 집을 떠나 도시 반대편의 작고 음침한 아파트로 이사할 것이다.
아니면 백작과 안나처럼 그저 간단히 '초라한 자 연맹'에 가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략) 초라한 자 연맹 회원들은 우아한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몰락했기 때문에 어떤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아름다움, 영향력, 명성, 그리고 남한테 받기보다는 베푸는 특권에 대해 알고 있으므로 쉽사리 감동하지 않는다. 성마르게 누구를 시기하거나 공격하지도 않는다. 혹시라도 자기 이름이 언급되었는지 확인하려고 신문을 샅샅이 훑는 법도 없다. 그들은 여전히 동료들 사이에서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들이 나누는 인사에는 경계심이 깃든 찬사, 연민이 담긴 야심, 그리고 속으로는 웃는 겸양이 배어 있다.
- 분명 여러분의 인생에도 어느 정도 도약했던 순간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분명 여러분은 자시 확신과 자부심을 가지고 그 순간을 되돌아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도약하는 데 약간이나마 기여했다고 인정할 만함 제삼자가 정말로 없었을까? 시의적절하게 조언해주고 소개해주고 칭찬의 말을 해주었던 멘토나 가족의 친구나 학교 친구가 정말 없었을까?
- "역사학도로서, 그리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상황이 달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진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 내몰리는 것과 상황을 잘 감수해내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려 합니다."
- (중략) 더군다나 재즈는 어디에 있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으며, 얼마간 장인의 자신감과 수습생의 미숙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것 같았다. 이런 예술이 유럽에서 유래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워할 사람이 있을까?
-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이 시작된 이래로 죽음은 늘 부지불식간에 찾아왔지. 이런저런 이야기 속에서 죽음은 소리 없이 마을에 도착한 다음 여관에 방을 하나 잡고, 골목길에 잠복해 있거나 혹은 슬그머니 시장을 어슬렁거리지. 그러다가 주인공이 복잡한 일상으로부터 한숨 돌리려는 그 순간에 죽음은 그를 찾아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백작은 인정했다. 하지만 삶 역시 어느 모로 보나 죽음만큼이나 기만적이라는 사실을 얘기하는 스토리텔링은 거의 없지. 삶 역시 빨간 모자가 달린 외투를 입고 있을 수 있어. 삶 역시 마을로 숨어 들어와 골목길에 잠복해 있거나 혹은 선술집 뒤쪽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 있어.
삶이 미사카를 찾아간 게 그런 경우잖아. 삶은 책 뒤에 숨어 있는 그를 찾아내서, 도서관 밖으로 데리고 나가,, 네바강이 내려다보이는 호젓한 곳에서 그의 손을 잡아주었잖아.
삶은 리옹에서 안드레이를 찾아내, 그에게 손짓하여 서커스단으로 불러냈잖아.
(중략)
"불가피한 게 뭔지 내가 말해주지. 불가피한 것은 말이야, 삶이 니나에게도 찾아갈 거라는 거야. 니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만큼이나 진지하긴 하지만, 아주 초롱초롱하고 생기 넘치는 아이라서 삶이 그 애로 하여금 악수를 하고 혼자 떠나도록 내버려 두진 않을 거야, 삶은 택시를 타고 니나를 뒤따라갈 거라고. 그러다 우연히 그 애와 마주치겠지. 삶은 결국 그 애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할 거야. 그러기 위해서 삶은 구걸하고, 맞바꾸고, 공모에 가담하겠지. 필요하다면 교묘한 속임수에 의존하기도 할 거야."
"세상이란 참....."
(모든 인간 각 개인의 스토리텔링, 드라마)
-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서성거리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미사카)에 대해-원인과 결과, 영향과 파급 효과를 고려하는 데 그가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는 점을 감안하여-사려 깊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백작의 경험에 의하면, 서성거리는 경향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왜냐하면 서성거리는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생각을 몰아가려 하지만, 논리라는 것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을 분명한 이해나 확신의 상태로 데려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논리는 그들을 갈팡질팡하게 만들고, 결국 그들은-마치 문제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처럼-가장 사소한 변덕의 영향에, 그리고 성급하고 무모한 행동의 유혹에 노출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 "(중략) 모름지기 칵테일은 깔끔하고 우아하고 진지해야 합니다. 재료는 두 가지로 한정되어야 하고요."
"겨우 두 가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두 가지는 서로 보완해주는 재료여야 해요. 각자의 농담에 웃어줄 수 있고 각자의 실수를 눈감아줄 수 있는, 그리고 대화 중에 서로에게 소리 지르지 않는 그런 두 재료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진과 토닉 같은."
"아니면 버번과 물이거나...... 또는 위스키와 소다수거나......"
- 니나는 세상의 사소한 불완전함에 대해서도 자신의 조바심을 솔직히 표현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소피야는 지구가 가끔씩 엇나가면서 자전하기는 해도 대체로 큰 문제없이 돌아가는 행성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니나는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중간에 망설임 없이 말을 끊으며 반대 주장을 펼치고는 그것으로 문제가 완전히 종결되었다고 거침없이 선언하곤 했지만, 소피야는 상대의 얘기를 공감의 미소를 지으며 아주 진지하게 들어주기 때문에 보통 자신의 얘기를 꽤나 길게 거리낌 없이 표출한 상대방은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면서 자신의 주장에 문득 의문을 품기 시작하곤 했다......
- "시간은 우리 곁을 흐릿한 상태로 달려가기 시작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가장 큰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이지. 사람이 열일곱 살이 되어 진정한 독립의 첫 시기를 경험하게 되면 감각이 아주 예민해지고 감성이 섬세해져서 모든 대화, 모든 표정, 모든 웃음이 영원히 기억 속에 새겨지지. 그리고 민감한 시절에 사귀게 된 친구들이라면? 끊임없이 샘솟는 애정을 가지고 이후로도 평생 동안 만나게 되는 거지."
(중략)
"아이들이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우린 잊어야 하는 거지.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불쾌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순간에 대한 아이들의 경험이 우리의 경험보다 풍부하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가 뭔가 손해를 본다고 느껴야 할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네. 이렇게 늙은 나이에 변치 않는 기억들의 새로운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하는 건 우리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지. 우리는 오히여 그들이 경험을 자유롭게 맛볼 수 있게 하는 데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해. 두려워하지 말고 그렇게 해야 해. 담요를 푹 덮어주고 단추를 꼭꼭 채워주는 대신, 그들에게 믿음을 갖고 그들 스스로 덮고 채우도록 해야 해. 그리고 그들이 새롭게 발견한 자유 앞에서 실수한다 해도 우리는 느긋하고 관대해야 하며, 신중한 태도를 잃으면 안 돼. 우린 그들이 우리의 감시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독려해야 해.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인생의 회전문을 통과할 때 우린 뿌듯하게 숨을 내쉬는 거지...."
- "젊었을 때 나도 내 누이에 대한 기억이 점점 빠져나가는 것 같았지. 그리고 언젠가는 누이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워하게 되었어. 하지만 사실은 말이야,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결코 우리에게서 완전히 사라지진 않아."
- "방이라는 건 그 안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의 총체라는 말씀이군요."
"예, 바로 그거라고 생각해요." 백작이 말했다. "이 특별한 방에서 이루어진 교류의 결과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그 교류 덕분에 세상이 나아졌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우정의 지속 기간은 결코 시간의 흐름에 좌우되는 게 아니다. 두 사람(백작과 리처드)은 불과 몇 시간 전에 만났다 하더라도 서로 오래 사귄 친구처럼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어느 정도는 두 사람의 마음이 무심히 나누는 대화 속에서도 충분한 공통분모와 웃음의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잘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성장 배경 또한 명백히 큰 역할을 담당했다 (중략)."
(중략)
"피아차의 오케스트라에서 지휘하는 것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랍니다."
"사람은 생계를 유지해야 하지요." 아우드리우스가 사무적으로 건조하게 말했다. "그러지 않으면 죽으니까요."
리처드가 잠시 바텐더(아우드리우스)를 살펴보았다.
"흠, 그게 바로 인생의 본질이지. 안 그래요?"
- 사실이야, 아버지는 얘기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환경에서는 진화의 속도가 감소하는 게 맞아. 각각의 종들이 새롭게 적응해야 할 게 별로 없거든. 하지만 환경이란 결코 오래도록 정적일 수가 없어. 자연의 힘이 불가피하게 움직이게 됨에 따라 적응의 필요성이 생겨나는 거지. 오랫동안 이어지는 가뭄, 혹독하게 추운 겨울, 화산 폭발, 이런 것들이 어떤 종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는 속성들과 그 가능성을 낮추려는 속성들 간의 균형을 일그러뜨리는 거야.
(중략)
수년 뒤, 백작은 자신이 그 문제를 거꾸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화의 속도라는 것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자연은 회색가지나방의 날개가 희든 검든 전혀 개의치 않는 반면에 회색가지나방이 계속해서 존재하기를 진정으로 바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자연이 진화를 설계할 때, 진화의 힘이 영겁이 아닌 수 세대의 기간 동안 발휘되도록 설계한 이유였다. 나방이나 인간 모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하려고 말이다.
빅토르 스테파노비치처럼 말이지, 백작은 생각했다.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그는 피아차에서 지휘봉을 휘두른다. 겉으로는 클래식 연주가 과거의 일이 된 것처럼 행동하면서 말이다. 그런던 어느 날 오후, 가능성이 보이는 젊은 피아니스트와 맞닥뜨리자 그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빌린 피아노로 그녀에게 쇼팽의 야상곡을 가르친다. 미사카가 그만의 '연구 과제를 갖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건물을 짓지 못하게 된 이 젊은 건축가가 스케치북에 호텔의 인테리어를 세세히 묘사하면서 자부심과 기쁨을 느끼는 것도 매한가지이다.
- 음식을 주문하고 애피타이저가 나올 때까지의 이 시간은 분명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장 위험한 시간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너무 갑작스럽고 감당하기 힘들 만큼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탓에 자신들이 커플로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이 시간, 젊은 여인들이 전에는 미처 몰랐으나 새로이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남편과 아내의 경우, 서로에게 들려줄 긴박하고 간절하며 놀라운 일이 이제는 더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불현듯 불안해하면서 새로이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므로 우리 대부분이 이 위험한 틈새 시간을 불길한 느낌으로 맞이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훔쳐보고 싶은 것은, 혹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다른 사람들의 방식과 비교해보고 싶은 것은, 너무나 근본적인 인간의 욕구죠. 그래서 후자(이 도시의 문이 쾅 닫혀서 안에 빗장이 걸릴 수도 있는)의 힘이 이 도시의 문을 걸어 잠갔을 때조차도 전자(세계를 향해 활짝 열릴 수도 있고)의 힘은 갈라진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방법을 찾아낼 거예요.”
- "편리함이라는 게 뭔지 얘기해줄게요." 잠시 후 그가 입을 뗐다.
"정오까지 잠을 잔 다음에 누군가를 시켜 쟁반에 받친 아침 식사를 가져오도록 하는 것. 약속 시산 직전에 약속을 취소해버리는 것. 한 파티장의 문 앞에 마차를 대기시킴으로써 얘기만 하면 즉시 다른 파티장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 젊었을 때 결혼을 피하고 아이 갖기를 미루는 것. 이런 것들이야말로 최고의 편리함이에요, 안나. 한때 난 그 모든 걸 누렸었죠. 그런데 결국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불편함이었어요."
- 전 러시아를 통틀어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만큼 문자 언어의 위대함을 찬미하는 사람은 없었다. 젊었을 때 그는 푸시킨의 대구 형식의 2행시가 어떤 우유부단한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것을 보았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한 구절이 어떤 사람의 열정을 자극하여 행동하도록 만들고, 동시에 다른 어떤 사람은 무관심하게 만드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아고라에서 자기 생각을 설파하고 예수가 산상에서 말씀을 전했을 때, 군중 속의 누군가가 후대를 위해 그 말들을 받아 적을 생각을 했다는 것이 그야말로 천우신조라고 여겼다. 그러니 이 새로운 주문 방식에 대한 백작의 우려가 단순히 쓰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해두도록 하자.
- 인간이라는 존재는 우연과 망설임과 성급함에 좌지우지되도록 설계된 것으로 악명이 높다.
- 침착함이 성숙의 징표여야 한다면, 무모함은 젊음의 징표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 "...(중략) 하지만 네 엄마(니나) 말이 정확하게 맞았어. 사람은 금박으로 장식된 홀에서 <셰에라자드>를 들음으로써, 혹은 자기만의 동굴에 갇혀 <오디세이>를 읽음으로써 자신이 지닌 가능성을 실현하는 게 아냐. 사람은 거대한 미지의 세계를 향해 발을 내디딤으로써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거야. 중국 땅을 여행한 마르코 폴로나 아메리카 대륙을 찾아 항해에 나섰던 콜럼버스처럼 말이야."
"...(중략)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박수갈채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니야. 중요한 건 우리가 환호를 받게 될 것인지의 여부가 불확실함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이란다."
- 알렉산드르 로스토프는 과학자도 아니고 현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예순넷이라는 나이를 먹은 그는, 인생이란 것은 성큼성큼 나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만큼은 현명했다. 인생은 서서히 펼쳐지는 것이다. 주어진 하나하나의 순간마다 천 번에 걸친 변화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우리의 능력은 흥하다가 이울고, 우리의 경험은 축적되며, 우리의 의견은-빙하가 녹듯 매우 느리지는 않다 해도 적어도 천천히 점진적으로-진화한다. 소량의 후추가 스튜를 변화시키듯, 매일매일 벌어지는 사건들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 백작은 의도적으로 서두르지 않는 삶을 택했다. (중략) 어쨌든 와인은 세월이 흐를수록 맛이 좋아지지 않던가? 가구에 고색창연한 멋을 부여하는 것은 세월의 흐름이 아니던가? 결국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시급하다고 여기는 일들(가령 은행가와의 약속이나 기차 출발 시각에 늦지 않는 것 등)은 기다려도 되는 것들이며, 반면 그들이 가장 사소하다고 여기는 것들(가령 차 한 잔이나 다정한 대화 등)은 즉각적인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
- "돌이켜보면 역사의 모든 전기마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하지만 그 말이 역사의 흐름을 뒤바꿔놓은 나폴레옹 같은 사람들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야. 여기서 내가 말하는 사람은 예술이나 상업, 또는 사고의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갈림길마다 매번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들이야. 마치 '삶'이란 것이 그 자체의 목적을 수행하는 데 도움을 받을 요량으로 때때로 그들을 불러낸 것처럼 말이지. 소피야, 내가 세상에 태어난 후 이제까지 인생이 나로 하여금 특별한 시간에 특별한 장소에 있게 한 것은 딱 한 번뿐이었어. 바로 네 엄마가 너를 이 호텔 로비로 데려온 날이란다. (중략)"
-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긴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는다. 공평한 마음의 소유자인 여신은 대체로 성공의 가능성과 모든 노력에도 실패할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쪽을 택한다.
- 하지만 40세는? 그들은 맘껏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식욕이 왕성하고, 술도 절제하며 마실 줄 알고, 아이들에게서 해방된 큼을 타 마음 놓고 잘 수 있는 기회를 누릴 줄 아는 지혜도 보유하고 있었다.
- 아버지는 우리 인생은 불확실성에 의해 움직여 나아가는데, 그러한 불확실성은 우리의 인생행로에 지장을 주거나 나아가 위협적인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관대한 마음을 잃지 않고 보존한다면 우리에게 극히 명료한 순간이 찾아들 거라고 했다.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갑자기 하나의 필수 과정이었음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찾아든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으로 꿈꿔온 대담하고 새로운 삶의 문턱에 서 있을 때조차도 그렇다는 것이었다.
- 백장의 친구가 얘기했던 대로, 우가 티가 체포당하는 것에 대해 냉정한 반응을 보이고 밴드에게 연주를 계속하라고 지시를 내리는 등의 술집 주인 행위는 타인의 운명에 대한 그의 무관심을 시사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어쩌면 소동의 여파로 쓰러진 칵테일 잔을 똑바로 세움으로써 한 사람의 가장 사소한 행동으로도 세상의 질서를 어느 정도는 회복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믿음을 실천해 보인 것은 아니었을까?
- 그토록 오랜 세월 고향에 돌아가기를 바랐던 여행자들이 귀향하자마자 다시 고향을 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오랫동안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에게는 사무치는 감정이 무자비한 시간의 영향과 합쳐져 실망만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고향의 풍경은 그가 기억하는 풍경만큼 아름답지가 않다. 고향의 사과 주스도 예전만큼 달콤하지가 않다. 예전의 건물들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모했고, 멋진 오랜 전통은 심란한 새로운 오락에 자리를 내주었다. 한때는 자기가 이 작은 우주의 중심에서 살게 되리라고 상상했지만,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전혀 없지는 않다 해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들은 옛집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 있으라고 충고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역사적 근거가 넘친다 하더라도 하나의 충고가 모든 사람에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와인과 마찬가지로 이웃한 동네에서 태어난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두 사람 사이에도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중략) 옛 모습이 거의 재부분 사라졌을 것이라고 예상하고서 과거의 장소를 찾는다면 즐겁게 과거로 되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옮긴이의 말
작가의 메일이 아니었으면 무심히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내용 가운데 하나는 이 작품의 시간적 구성 방식이다. 1922년에서 1954년까지 32년 동안의 세월을 배경으로 삼은 이 작품은 1922년 6월 21일을 시작으로 장이 바뀔 때마다 시간이 2배 정도의 빠르기로 흘러간다. (중략) 16년 뒤인 1938년을 기점으로는 시간의 빠르기가 절반으로 줄어들며 진행된다. (중략)
우리 삶에서도 초기에 일어난 일과 최근의 일들은 선명히, 시시콜콜히 기억나지만 중간에 있었던 일들은 디억에서 뭉텅뭉텅 잘려 나가는 경우가 보통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같은 시간적 구성은 우리의 직관과도 잘 어울린다.
작품을 감상하는 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이 같은 내용을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이 책의 구성이나 기교적인 수법이 상당히 치밀하고 계산적이라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다. 예컨대 시간적 배경이 되는 날의 태반이 6월 21일인 것도 작가 나름의 의도가 작용한 결과이다. 6월 21일은 1년 중 낮이 가장 긴 하지이고, 모스크바의 봄이 끝나고 여름이 시작되는 날이기에 시간의 흐름을 포착하여 보여주기 좋은 날이라고 여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