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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구의식 Nov 18. 2021

느. 린. 인. 간.

엄마도 아빠도 친구들도 가까운 애완동물도 이해못하는, 너의 리듬

요즘 자신만의 속도에 대한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각자 나만의 리듬이 있다. 


좋아하는 노래 중 이랑의 <너의 리듬>이란 곡이 있다. 

내 속도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입에 떠오르는 가사. 




아마 그게 너의 리듬
엄마도 이해 못 하고 친구들도 가까운 애완동물도
이해 못 하는 아마 그게 너의 리듬 



난 속도가 차아아아암 느린 사람이다. 

많은 순간 그걸 느낀다. 준비 시간은 언제나 길고, 마음의 준비도 한참 걸린다. 뭘 배워도 늘 늦다. 


어제 한라산에 올라가면서도 느꼈고, 마감을 해내면서도 늘 느꼈다. 

늘 남들보다 먼저 끝내본 적이 없는 인생을 살았다. 

늘 마감을 훌쩍 넘기지 않을 정도, 제일 늦지 않을 정도,를 유지했는데, 그 정도로 살아내는 것도 힘에 부쳤다. 발리에서도 혼자 밖을 누비기까지 참 오래 걸렸는데, 오늘 제주로 이주해서도 혼자 나가 활동해 본 적이 손에 꼽힌다. 

서울에서의 나는 혼자 카페에 가는 것도 좋아하고, 영화관도 혼자 잘 가던 사람이었다. 심지어 여행 갈 사람이 없으면 혼자서도 훌쩍 떠났었다. 그런 내가 혼자 카페에 앉아 있어 본지가 언제이던가. 

요즘에서야 혼자 가고 싶은 데로 다녀도 된다는 걸. 생각보다 차 없이도 다닐 수 있다는 걸. 그런 자유로움이 나를 완충(완전 충전)시켜준다는 걸, 그런 걸,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걸 알기까지 2년이 걸렸다.


어렸을 때도 그랬고, 쭈욱 그랬었기에 스스로 "느.린.인.간."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 번도 내 속도가 "정상"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 거다. 


일단, "느리다"라는 정의부터가 일반적인 속도에 비교한 것이고, 

대체로 일반적인 속도로 사는 것이 "정상"이다, 라는 관념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관념은 내 몸 마음 생각 곳곳에 깊게 박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정상적이지 않는, 남들보다 느린, 그것이 모자란, 이라는 생각으로 자연스레 연결되었던 것 같다. 그리곤 내가 잘하는 자책을 했다. 왜 미리 하지 않은 거야, 왜 또 늦는 거야, 남들보다 늦으면 더 일찍 시작했어야지. 그게 내 어깨를 자꾸 움츠러들게 하고, 스스로를 작게 접어버리는 걸 몰랐다. 


나도 호탕하게 살고 싶다. 

다시 잘 살고 싶다. 하지만 이제 "잘 사는" 것의 기준을 바꿔야지. 


어쩔 수 없어, 내 속도대로 사는 수밖에. 인정해버리고 

내 속도에 내가 맞추는 거다. 

아무도 나에게 완벽히 맞춰 줄 수 없다.

내가 나에게 맞추기도 이렇게 오래 걸렸는 걸. 

맞춰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저 내가 내 속도를 잘 알아내고, 나에게 알맞은 속도로 살면 되는 거다. 


나는 늦지만 시작한 무언갈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물론 버릴 땐 버릴 줄도 안다. 

한라산에 헉헉대며 오르지만 중간에 돌아 내려온 적은 없다. 포기하고 싶을 때는, 남들 속도를 따라 가보려고 아둥거리다 방전돼버릴 때다. 내 속도를 리드미컬하게 -잔잔하게, 느리게, 빠르게, 잔잔하게- 유지하다 보면 나는 내 인생을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거다. 


남에게, 일반적에게, 평균에게, 정상 속도,라고 여겨지는 것에, 

맞춰 사느라 그동안 애썼다,라고 생각하자 눈물이 핑 돌고 마음이 찡하다. 


요새 마음이 찡할 때가 많은데, 마음이 찡할 때, 왜 그런가 살펴보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대신 진심으로 이해하고 괜찮다, 고 여겨줄 때더라. 


나름대로 엄청 노력하고 있어, 이게 안 그래 보여도 내 딴엔 무지 애쓰는 거야, 라는 걸 말은 못 하지만, 증명하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가족에게도 남편에게도 그냥 막연한 누구에게도 애쓰고 살았다. 

그런데 가장 힘이 센 사람에게 인정받을 생각을 못해본 거다. 

나란 사람이다. 

식상할지 모르지만, 내가 나를 지지하고 인정해주는 것,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구는 것, 그게 해보면 생각보다 진짜 좋은 방법이다.  

나도 자꾸 까먹지만, 

나의 리듬으로 살아도 아아아무 문제가 없다. 





느려야 보이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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