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etter to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구의식 Jan 30. 2023

L. 에게

2022년이다. 

내 친구 L, 잘 지내니? 

너의 아기는 이제 뛰어다닌다고 했지. 

너의 안부에 덧붙여 너의 아가의 안부를 묻게 되는 게 아직은 어색해.  

너가 그토록 원하던, 사랑하던 존재가 생겼으니 나는 잊지 않고 그 아이의 안부를 물어. 

그 아이가 아프진 않은지, 그 사이 얼마나 성장해 너를 놀라게 하고 있는지, 

하지만 내가 궁금한 건, 

항상 너란다. 

육아에 지치진 않았는지, 여전히 어떤 일이든 가볍고 호탕하게 만드는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L! 우리가 진짜 마흔이 됐어.

믿기니! 


내가, 그리고 너가, 39으로 살았던 2021년은 어땠니? 

아홉수,라는 게 난 무서웠다. 

스물아홉에 말이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세히 기억나지 않는데 

아홉수라는 게 무서운 거구나, 하고 

힘들었던 기억이 남아있어. 서른아홉이 무서워졌었지. 

많이 아팠던 것 같아. 

일에 치여 몸도 아프고, 돌보지 못한 마음도 아팠어, 갉아먹히는 정신도 건강치가 못했다. 

그때, 곁에 네가 없었다면 

나는 더 많이 닳아 없어졌을 것 같단 생각이 들곤 해.

나는 항상 모래시계 안의 모래알처럼, 중력의 힘을 어쩌지 못하고 작은 구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갔어, 점점 좁아지는 세상을 벗어나기가 어려웠어. 모래시계를 거꾸로 탁, 뒤집어 주는 건 너였지.


서른아홉에는 어른이 되려고 발버둥 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 

책을 읽고, 명상을 하고, 철학 수업을 찾아들었어. 

나이를 먹는 것과 '자란다'는 것이 같은 말일 때는 언제까지일까? 

언제부터인가 

해를 지나 내 나이의 숫자는 하나씩 늘어나는데, 나는 늘 그대 로이더라. 

어린아이에서 별로 자라지 않은 그 마음 그대로 좁은 세상에서 살고 있더라. 


스무 살에서 별로 자라지 않은 어린 내가 어른으로 살면서, 여러 번 놀랄 일들을 겪었어.

아주 어린아이 같은 나를 봤지,

어른도 마음을 먹어야 될 수 있구나, 저절로 되는 건 없구나, 

나는 이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참 많아.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여 살아가는 너에게는 또 얼마나 많은 새로운 생각들이 생겨났을까, 

그 얘기들을 나누고 싶은데, 

오랜만에 만나도 웃고 놀리고 깔깔거리고 과거를 아련히 회상하다 보면, 

시간이 너무 빨라, 막상 그 얘기를 못했네! 


쉽지 않을 걸 알지만, 곧 그런 날을 만들어보자. 약속만 해도 난 마음이 좋아지기도 하더라. 


너의 구가. 



매거진의 이전글 선생님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