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이 없어 슬퍼하던 할머니였다. 자신과는 다르게 그럭저럭 괜찮게 사는 동생들, 어디서 전해 들은 누구누구네 집 이야기에 빗대며 힘들게 사는 자식들 앞으로 크게 한몫 물려주고 가는 부모가 되지 못해 한없이 미안해했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자식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안타까운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조금은 짐작하는바 이지만, 할머니가 자식과 손주들을 위해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은 가족 여행 한번 못해보고 어디 좋은 호텔에 한번 묵어본 적도 없으면서, 80세가 넘어서까지도 일을 놓은 적이 없으면서,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살아본 적이 없으면서! 자신이 떠난 뒤 가슴 아파할 자식들의 모습보다, 남기고 가는 것이 없어 자식들이 원망하지 않을지를 걱정한다니. 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인생이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걸까 한탄해 봤자 이미 지나가버린 90년의 세월이었다. 잠들기 전에는 '아, 이제 잠들면 깨지 않고 곤히 자다가 그렇게 잠자듯 편하게 가게 해 주세요' 생각하고, 아침에 잠에서 깨 눈을 뜨면 '아, 또 살았구나. 살았네' 하는 90살 말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어 이제는 정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할머니를 보며 나는 마음이 급하다. 물려받을 재산은 개뿔, 그런 건 하나도 필요 없고 남은 시간 내가 빨리 할머니한테 뭐라도 해줘야 하는데. 빌딩이고 집 한 채고 그거 내가 할머니 해주고 싶은데! 돈다발 한 뭉치 턱 드리면서 용돈 쓰셔! 하고 싶은데. 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나야말로 정말 능력이 없네... 아무것도 없네... 하다가 또 귀중한 하루가 간다. 못해줘서 미안한 마음이 이거구나. 나도 할머니 마음이랑 똑같네 하고 피식 웃다가 이내 눈물을 떨군다.
지금 내가 할머니에게 줄 수 있는 건 일주일에 두 번 할머니를 보러 가서 함께 식사하는 거, 매일 전화로 안부를 묻는 거, 일주일에 한번쯤 같이 발가벗고 들어가 목욕시켜 드리는 거... 고작 그런 거다. 할머니에게 이 글들을 헌정하면 좋으련만 눈물이 많아도 너무 많은 할머니라 글을 읽다 우느라 쓰러져 제명에 못 살 거 같아 차마 엄두가 안 난다.
그래도 계속 할머니 이야기를 쓴다. 내가 할머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한 많은 이 세상 잘 견디며 살아온 한 여자의 일생이, 우리의 사랑과 추억들이 쉽게 잊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