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등교를 마치고 여느 때처럼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차례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불안한 마음에 콜택시를 불러두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전화를 했다.
마침내 전화를 받은 할머니의 첫마디는 "여보세요?" 같은 말이 아니었다. 격양된 목소리로 혼잣말만 중얼거리다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뒤로 두세 번을 해도 같은 반응이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나는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할머니의 정신을 깨우기 위해서.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는 소리치는 내 목소리에 잠시 정신이 들었는지 "응?" 하고 대답하다가 이내 "뭐야, 뭐야. 몰라 몰라." 하고는 또 전화를 끊었다. 택시를 타고 할머니 집으로 향하는 내내 입이 바짝 마르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일시적 섬망증상인 걸까 아니면 정말 큰 문제라도 생긴 걸까?...
집에 도착해 마주한 할머니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려 덮고 덜덜 떨며 알아듣지 못할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온몸은 불덩이 같았고,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119를 기다리는 동안 쉴 새 없이 몸을 닦으며 열을 내리려고 노력했다. 얼굴은 핏기가 없었고 눈에는 눈곱이 잔뜩 껴 있었으며, 호흡 역시 일반적이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은 할머니에게 계속 말을 걸고 팔다리를 주물렀다. 할머니는 이따금씩 내 얼굴을 한 번씩 쳐다보며 눈을 맞추려 애썼다. 나 누구야? 하고 묻는 질문에도 몰라, 몰라라고만 답하던 할머니가 내 이름을 말하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아 통곡했다. 나는 할머니를 붙잡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하염없이 울었다.
병원에 도착해 진행된 검사를 통해 급성 신우신염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며칠간 입원 치료가 이어졌다. 조금 더 지체했다면 심각한 신장손상과 패혈증이 왔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병원에서도 할머니는 헛것을 보거나 밖으로 나가려는듯한 행동을 했는데 그래서인지 병원에서는 할머니를 빨리 퇴원시키고 싶어 했다.
퇴원 후 당장 집으로 모셔오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내가 할머니집으로 출퇴근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항생제 치료가 끝났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극심한 어지러움으로 한 발짝도 걷지 못하는 할머니를 보며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이 시련은 또 언제 끝이 날까. 나는 할머니를 걱정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나 자신을 걱정하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긴 연휴기간이 겹쳤고 할머니 집에 계속 머무르며 밤새 보초를 설 수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안했지만 할머니에겐 내가 꼭 필요했다.
"차라리 그냥 나를 죽여줘"
어지러움에 고개를 들 수도 없는 그 고통의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던 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그러실까... 이해는 하지만 내게 너무 잔인한 말이었다.
“아무리 아파도 그렇지… 나한테 왜 그래 정말... 너무하잖아."
나의 마음은 언제부턴가 죽음을 기다리는 90세 노인의 마음에 완전히 동기화되어 있었다. 할머니를 너무 사랑하고 깊이 이해하는 만큼 할머니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며 할머니는 점차 호전되었고 내게 모진 말을 했던 것에 대해 미안해했다. 고마우면 고맙다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꼭 표현해 주던 우리 할머니였다. 나는 다 이해한다고 대답했지만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할머니에게 고마웠다. 조금 늦었더라면 할머니를 잃을 수도 있었던 그날의 기억이 내게 큰 충격으로 남았기에 내게도 위로가 필요했다.
희미해져 가는 할머니를 지켜볼 수밖에 없던 그날, 나는 무엇이 그렇게 미안해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한 걸까. 할머니의 상태를 더 일찍 알아차리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였을까, 아니면 이따금씩 할머니의 존재를 버겁다 느낀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나중에... 나중에 우리가 정말 헤어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고마워요, 사랑해요 하고 온전히 사랑을 고백하는 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