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마지막 통화

사과하고 싶다.

by 지금


아빠와 헤어지면서 나와도 헤어진 엄마. 내가 몇 살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 나를 두고 가버린 엄마. 초등학교까지는 가끔 연락을 주고받거나 잠깐씩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항상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두절됐다. 또다시 하염없이 기다리는 신세.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억지로 잊어보려 지워보려 노력하는 나를 괴롭히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몇 년에 한 번 잊을만하면 나타나 마음을 흔들어놓고 안개처럼 홀연히 사라지기 일쑤였다.


대체 왜 그랬을까? 무슨 이유에서?

사실은 이유가 있었겠지 하고 이해할 필요도 없었으며 떠올리는 것조차 고통이었다.


기다리는 것은 다 부질없는 것이었다. 나를 반복해서 떠나버리는 엄마에 대한 원망이 깊어져만 갔다.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아빠도 마찬가지였으나 엄마가 더 미웠다. 아무런 능력 없어도, 가끔 아주 무섭게 변해도 그래도 아빠는 아주 나를 떠나진 않는구나 생각했기 때문에.


엄마가 없다는 이유로 학교 폭력과 왕따를 당하던 시절에도 나는 슬픔을 들키지 않기 위해 눈물을 닦고 할머니를 마주하는 ‘빨리 철든 아이’였다. 할머니가 가여워 보였고, 지독한 생활고와 아픔 속에서도 나를 키워주는 것에 그저 감사했기 때문이었다. 빨리 철든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었다. 내 마음보다 중요한 다른 무언가가 있었기에.


엉망진창인 삶의 모습이었지만 어찌어찌 살아가던 스물두 살의 어느 날. 내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엄마야…”

“엄마랑 만나줄 수 있겠니?”

“엄마는 한 번도 너를 잊은 적이 없어…“

그리움, 반가움 같은 그런 감정은 들지 않았다.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나를 만나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애써 살아가고 있는 나를 또 흔드는지 격양된 목소리로 쉴 새 없이 따져 물었다.


몰아세우는 나의 말에 엄마가 흐느끼며 말했다.


“왜 엄마만 원망하는 거니, 엄마도 힘들었어”

“엄마한테 너는 첫사랑이었어. 네가 아무리 엄마한테 모질게 대해도 엄마와 너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아 “


엄마의 말들이 사실일 수도 있다.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 거였다. 나를 두고 계속 떠나야만 했던 중대한 사정. 하지만 듣고 싶지 않았다. 내 슬픔이 너무 커서. 엄마의 하소연 같은건 들리지 않았다.


사실일 수도 있다. 나를 사랑한다는 말.

하지만 참으로 폭력적인 말이었다. 오히려 말없이 나를 떠날 때보다 나를 더 아프게 하는 말이었다.


오랜만에 나눈 대화였지만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 달라는 나의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서로의 마음의 생채기만 가득 남긴 전화를 끊고 나는 무너졌다.

전화가 걸려오기 이전에는 막연히 다시 ’ 엄마와 연락이 닿으면 무슨 말을 하지?‘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어쩌면 나는 다시 연락이 오기를, 묻지 않아도 이유를 말해주기를, 화내는 나를 달래주기를 바랐었나 보다.


서로에 대한 일말의 기대 같은 게 사라진 그날 이후 십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다시 연락이 닿은 적은 없다. 나는 가끔 엄마가 생각나진 않냐고 묻는 신랑과 딸의 말에 옅은 미소를 짓거나 농담할 수 있을 만큼 어른이 됐다.


엄마가 되고 난 후 짐작해 보았다. 내게 첫사랑이라던 그 말.

사과하고 싶다. 피치 못할 사정을 끝까지 들어주지 못한 마지막 통화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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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아픈 기억은 다 잊을게요. 그저 행복하게 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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