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일
靜居觀物理(정거관물리) 고요히 사물의 이치를 살피면
煩心自滌浣(번심자척완) 머릿속 복잡한 생각 절로 씻겨 나가네
群生共宇內(군생공우내) 우주 속에 함께 살아가는 뭇 생명
萬品歸一算(만품귀일산) 만물은 하나의 지혜로 모이나니
登高與居下(등고여거하) 높은 곳에 오르든 낮은 곳으로 내려오든
未可較長短(미가교장단) 잘나고 못나고는 따질 수가 없네
瓦礫各有適(와력각유적) 기왓장도 조약돌도 각기 쓸모가 있으니
- 장유(張維, 1587-1638), <비내리는 가운데 벗인 기암자를 떠올리며 보냅니다[우중기기암자(雨中奇畸庵子)]>
현대인들은 물질적 풍요와 편리한 생활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무언가에 쫓기듯 바삐 살아갑니다. 10대들은 학교 및 학원에 부모님은 직장에 얽매여 정작 고요히 자신과 사물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찾는 시간을 내기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글은 장유가 절친한 벗인 기암(畸庵) 정홍명(鄭弘溟, 1582~1650)에게 보낸 시입니다. 새벽 시간, 하루 일과 중이나 일과 후에 잠시 시간을 내어 명상을 통해 복잡다단한 생각들은 과감히 흘려보내고 우주 대자연 속에 본래 빛나고 있는 나 자신과 사물의 참모습을 호흡하고 성찰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깊은 우주적 사유와 생태적 삶을 돌아봄을 일상화하게 되면 나와 타인을 비교하는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지게 되고 사물 각자의 쓰임새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깨달아가게 됩니다.
호흡하고 성찰하며 우주 대자연의 일원으로서 욕심내지 말고 자신과 만물에 부끄럽지 않은 자연 친화적, 생태적, 자족적인 삶을 함께 살아가자고 벗에게 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와 지구별에 살아가는 여러 생명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요? 장유는 “우주 속에 함께 살아가는 뭇 생명/만물은 하나의 지혜로 모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만물은 왜 하나의 지혜로 모인다고 말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친절(親切)의 의미에 대해서 되짚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친절은 사전적 의미는 ‘친하고 정성스럽다’입니다. 누구에게 친하고 정성스러워야 할까요? 나와 가까운 사람, 나의 반려동물과 반려식물에게만 그래야 할까요? 친절은 나 아닌 타자(무생물, 자연, 동식물, 인간, 지구공동체, 우주 등)에 대해 너와 내가 둘이 아니며 같은 감각과 감정, 인식을 느끼고 공유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크게 말하면 우주 대자연과 나는 같은 부류라는 동류(同類) 의식을 말합니다.
인도 출신의 녹색 환경운동가이며 평화운동가인 사티시 쿠마르는 그의 저서 《그대가 있어 내가 있다(You Are Therefore I am)》에서 자연과 나는 하나이며 서로가 생태계의 그물망 중의 하나라는 만물 동류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연기설(緣起說)이라고 하여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다는 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연을 훼손하면 곧 나를 훼손하는 것이기에 그 대가를 우리가 지금 몸소 체험하고 있지 않는가요? 기왓장과 조약돌도 각기 쓸모가 있듯 우리가 지구 생명체를 존중하며 공존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며 살아가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