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일
人生若艸木(인생약초목) 사람은 풀이나 나무처럼
水土延其支(수토연기지) 물과 흙이 사지(四肢)를 지탱해 주네
俛焉食地毛(면언식지모) 힘껏 일하여 땅의 풀 먹고 사나니
菽粟乃其宜(숙속내기의) 콩과 조가 바로 식량이라네
菽粟如珠玉(숙속여주옥) 콩과 조 귀하기 보배 같으니
榮衛何由滋(영위하유자) 몸의 근력이 어디서 나오랴 (중략...)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굶주리는 백성의 노래[飢民詩(기민시)]>
농부이자 철학자, 시인, 현대 문명비평가인 웬델 배리는 “최선의 농사를 지으려면 농부가 필요하다. 검약 정신이 살아 있고 양육자로서의 자세를 갖고 있는 농부가 필요하다. 기술자나 기업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농부의 덕성과 문화가 필요한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선현들은 ‘농부는 하늘의 근본이다[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하여 농부를 세상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곧, 하늘의 뜻을 대신하여 자연과 더불어 뭇 생명을 길러내는 농부야말로 삶의 진정한 예술가이자 덕성을 갖춘 인격자입니다. 우리 선현들은 농(農)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졌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시는 다산이 암행어사의 임무를 마친 다음 해인 1795년에 지은 것으로 암행어사 시절에 목격한 농촌의 실상을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사람이 ‘풀이나 나무처럼’ 땅을 딛고 서며 생명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과 흙은 기본이며 땅에서 자라는 풀, 콩, 조 등의 곡식을 먹어야만 근력을 발휘할 수가 있습니다. 다산은 당시 이런 기본적인 농업 활동조차 보장해주지 못하는 관리들의 무능함을 비판하고 농촌과 농민의 피폐한 삶에 대해 마음 아파하였습니다. 그가 살던 시대로부터 250년이 지난 지금도 농민의 생활이 별반 나아진 것이 없어 답답하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매월당 김시습은 이상적인 전원(田園)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렸습니다.
西崦人家社酒香(서암인가사주향) 서쪽 언덕 사람들 집에 제사 술이 향기롭다
村童來報老先嘗(촌동래보노선상) 시골 아이 와서 노인어른 먼저 맛보라 알린다
妻挑野菜和根白(처도야채화근백) 아내가 뜯어온 들나물 뿌리마저 희고
兒摘山梨帶葉黃(아적산리대엽황) 아이가 따온 산배는 누런 잎이 달려있다
不識干戈事征戰(불식간과사정전) 방패와 창으로 전쟁하는 일 모르고
唯知耕耨足稻粱(유지경누족도량) 밭갈고 김매어 벼와 기장 풍족함을 알 뿐이라.
田家所樂將何事(전가소락장하사) 농가의 즐거워 할 일 무엇이 있겠는가
寒背蓬廬曝大陽(한배봉려폭대양) 추운 날 초가집에 등 붙이고 햇볕 쬐는 것이라
-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시골의 일을 노래하다[田家卽事(전가즉사]>
그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지구 생명공동체의 대행자인 농민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방패와 창으로 전쟁하는 일’이 없게 하고 ‘밭갈고 김매는’ 생산활동을 보장하여 곡식의 풍족함을 알게 해주며 ‘등 붙이고 햇볕 쬐는’ 최소한의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쯤 농민들을 대우하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하루 빨리 그 날이 앞당겨지기를 고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