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45일

by 은은


夫養雛(부양추) 어린 새끼를 기를 때에는

若烹小鮮(부양추약팽소선) 작은 생선 삶듯이 조심스럽게 해야 하며

惟忌攪亂(유기교란) 절대로 들쑤셔서는 안 되네

彼非智(피비지) 저 애꾸눈 닭은 이러한 지혜가 없는데도

有以及之(유이급지) 새끼 기르는 방법을

而適中方便(이적중방편) 방편에 맞게 하여

畢竟萬全(필경만전) 결국 병아리들을 온전하게 길러냈네

在此不在(재차부재) 기름은 여기에 있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네

始知物之養成(시지물지양성) 사물을 잘 기르는 방도가

不但在於哺鷇之(부단재어포곡지) 먹이를 먹여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卽帥之有術(즉수지유술) 적당히 보살피며 살아가는 방법을

而各遂其生(이각수기생) 터득하게 해주는 데 있다네

이익(李瀷,1681~1763), <애꾸는 닭의 병아리 키우는 법[할계전(瞎鷄傳)]>


성호 이익은 잘 아시다시피 조선 후기 문인, 사상가, 철학자, 실학자, 역사가이자 교육가로 실학을 집대성한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평소 학문적 목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싶다’이며 뜨거운 열정으로 다방면에 걸쳐 다양한 저술을 남겼습니다. 숙종 31년(1705년) 증광과에 합격하였으나 그의 형 이잠(李潛)이 당쟁으로 희생된 후 관직을 사양하고 학문연구와 후학 교육에 전념하였습니다.


그의 글 가운데 오늘은 자녀교육과 관련된 <애꾸눈 닭의 병아리 키우는 법[할계전(瞎鷄傳)]>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옛 선인들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벌레, 들짐승, 날짐승 등 미물들에게도 관심과 정을 쏟았습니다. 관물(觀物)은 곧 심성 수양의 방법이자 자신의 현재 상태를 바라보고 관찰하는 내면 공부의 수단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전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용이 재미있으면서도 참 교훈적입니다. 애꾸눈이 된 닭은 주위를 제대로 잘 살필 수가 없기에 자신과 새끼들을 제대로 돌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늘 경계의 마음과 두려운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병아리들을 자주 감싸주기만 할 뿐, 특별히 애를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호는 ‘닭’이라는 미물이 새끼를 기르는 과정을 세심히 관찰한 뒤에 문득 자식 교육에 관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자식 교육의 요체는 거리를 두고 적당히 보살피면서 스스로 살아가는 힘과 방법을 터득하게 해주는 데 있다는 것을 새삼 자각하게 됩니다. 애꾸눈 닭이 일부러 그렇게 한 건 아니지만 자신의 장애로 인해 결과적으로는 자식을 훌륭히 키워내게 된 셈입니다. 이는 곧 장애로 인해 새끼와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경계심을 늘 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 생활 지도를 하게 되면 이 적당한 ‘거리두기’가 잘되지 않습니다. 잔소리 한 번 할 걸 두 번 세 번 하는 경우가 있고 정상의 어미 닭처럼 졸졸 따라다니며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면 안 된다고 자주 입을 대곤 하게 됩니다. 10대들이 충분히 잘 할 수 있는데 지도 교사의 급한 마음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병아리들은 삐약삐약하며 졸졸따라 다니느라 힘은 다 빠지고 몸은 병들어진다”는 구절을 읽고 부모의 강권에 못 이겨 학원을 다니고 과외를 받느라 몸과 마음이 공부에 찌든 오늘날의 우리 10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는 생각이 참 참신했습니다. 이들의 생각처럼 어른들이 과도한 입시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좀 더 일찍 제도적으로 공교육과 사교육에서의 학습 시간을 줄여주고 자연과의 교감을 늘릴 수 있는 체험활동(텃밭가꾸기, 여행 등), 독서 및 사색할 시간은 보장해주며 부모와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교육활동을 고민했더라면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 게임중독, 학교폭력이 심각한 현실에서 일찌감치 벗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자연을 체험하며 여가 시간이 보장되는 교육활동으로 차츰차츰 교육 현실이 개선되어나간다면 입시 경쟁에서 벗어난 10대들은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공부 및 활동을 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과 미소는 자연스레 따라오게 될 것이며 부모 또한 여유를 가지고 자식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생명을 기르는 일은 입대고 손대고 싶은 마음은 묵혀두고 적절한 거리에서 무심히 지켜봐주며 꼭 필요할 때만 손을 건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