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에 맺힌 풀잎 위 이슬을 보며 귀로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싱그러운 아침입니다. 교육원에서의 생활은 한 주 한 주가 새롭습니다. 아이들의 성향이 극과 극을 달리고 어떤 돌발 행동을 하게 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외향성이 강한 남자 아이는 주변 친구들에게 자신의 센 성향을 과시하려는 면이 있고 내향성이 도드라진 남자 아이들은 그 공격성이나 분노가 내면을 향하게 되어 우울증과 자해, 심하면 자살 충동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일당백인 아이들의 말과 행동거지에 맞추어 교육활동을 진행하는 일이 여의치가 않습니다.
규율을 강조하면 튕겨 나가려고 하는 아이, 지나침을 절제시키려고 말 한마디를 던지면 분노를 표출하며 튕겨 나와버리는 아이, 교육 거부, 무기력 등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일차적 요인으로는 불우한 가정 환경과 가정 문화의 영향을 들 수 있습니다. 이혼 가정, 부모 중 한 분이 외국인인 다문화 가정, 부모 중 한 분이 사고로 인해 경제적 부담과 생업의 고통이 자녀에게 전가되어 자녀가 정서적,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됩니다. 두 번째 요인으로는 유전적 영향인데 뇌인지 오류로 인한 과잉 행동장애, 주의력 결핍, 분노조절 장애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물론, 위 두 가지 요인외에도 다양한 원인들이 작용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불굴의 노력과 의지,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꾸준한 치유와 재활을 통해 회복탄력성을 키워나갈 수 있다면 저희 원의 소기의 목표를 최소한도나마 달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사람이 가진 근기(根器: 뿌리와 그릇)에 따라 아이들을 지도해야 한다고 일찍이 설파하셨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도 잘 다스리지 못하는데 아이들의 결에 따라 교육을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자 모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교육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보내는 아이들에 대해 마음 한켠에서는 안타까운 연민의 마음이 들기도 하고 다른 한켠에서는 ‘애를 먹이는 아이가 잘 나갔다’는 야누스적인 양면의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이나 주변 동료 선생님에게서 저의 각진 부분을 발견하게 될 때 저 자신도 가끔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고 ‘아직도 깎여야 될 부분이 많구나’, ‘수양이 많이 부족하구나’ 하고 겸손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신흠의 이 글을 읽으니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요? 마음과 몸을 속되게 하지 않고 바르고 올곧게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지요? 일이나 공부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끙끙대며 억지로 바로잡으려 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상태’로 두다 보면 언젠가는 깨달음이 생기지 않을까요?
나를 이롭게 하는 길에는 네 가지가 있다고 지은이는 말합니다. 나의 거친 행동과 말을 바로잡을 수 있는 ‘독서’가 그 첫 번째입니다. ‘산과 계곡을 사랑하는 일’이 두 번째, 꽃과 대나무, 바람과 달을 깊이 음미하는 일이 세 번째, 끝으로 단정히 앉아 명상하는 일이 네 번째입니다.
우리는 책을 왜 읽을까요? 책을 읽는 행위 자체는 겉으로 보았을 때는 침묵이 뒤따릅니다만 머릿속은 글을 쓰신 분의 생각과 체험을 부지런히 따라가게 됩니다. 글을 읽다가 내 마음에 꼭 맞는 구절이 있게 되면 ‘아’하고 감탄사가 나도 모르게 나오게 되지요. 혹은 본래 알고 있었던 생각들을 작가의 표현을 통해 다시 깨우치게 되는 일들도 생기곤 합니다. 책을 읽는 행위는 내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작가의 모범적인 삶을 내 마음에 되새기고 실천하기 위한 준비과정이자 나의 선한 의지를 다시 깨우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산과 계곡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말이면 산과 계곡을 찾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떠들썩하고 분잡한 도시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내 몸을 힘들게 하면서까지 묵묵히 산을 오르며 주변의 경치, 새소리, 물소리를 경청하고 나무 그늘에서 쉬기도 하며 나무 냄새, 흙냄새를 맡다 보면 잠자고 있던 우리 내면의 순수함과 맑은 정신을 일깨워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기는 봄입니다. 꽃과 대나무, 봄바람과 달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쁜 학교생활과 학원 생활에 쫓기다 보면 꽃이나 나무, 바람과 달을 눈여겨봐야지 하는 마음조차 없어지곤 합니다. 우리가 왜 이런 자연물을 마음에 두고 천천히 감상해야 하는 걸까요? 왜 우리는 평소 자연을 곁에 두고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주변이 밝아지기 시작하는 새벽, 별과 달이 뜨는 한밤중에 이들을 쳐다보고 있는 나의 마음은 어떤지요? 이름 모를 풀과 꽃, 나무들을 쳐다보고 있으면 나의 내면은 어떻게 달라지겠는지요?
책을 읽고 자연물을 사랑하며 감상하는 일의 가장 밑바탕에는 ‘지금 이 순간 내 삶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나는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에 대한 물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것이 명상이 되었든 가벼운 산책이나 산행이든 존재의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 묻고 답하며 길을 찾는 행위가 나를 이롭게 하며 주위 생명과 대자연을 아름답게 하는 길이자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신흠도 이런 점들을 고민하고 실천하고자 산중 생활을 기쁜 마음으로 자처한 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