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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47일

by 은은


時迎曾宿客(시영증숙객) 예전에 묵고 간 손 때로 반기고

能識夜歸人(능식야귀인) 밤에 가는 사람 잘도 안 다네

攫獸才多捷(확수재다첩) 짐승 잡는 재주는 매우 빠르고

伺偸聽有神(사투청유신) 염탐할 때 청력은 귀신같다오

- 이응희(李應禧, 1579~1651), <강아지 두 마리를 얻고서[득이구자(得二狗子)]>


어제는 고향에 벌초를 다녀왔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걱정 또한 컸는데 다행히 고향 가는 길이 무탈한 것이 할아버지, 할머님께서 안전하게 오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벌초는 조상님의 웃자란 머리를 깎여드리고 마당을 씉듯 주변을 정리정돈 해드리는 일 같습니다. 그러면서 고향의 산천을 돌아보며 지금까지의 제 삶을 조상님들께 보여드리고 걸러내고 덜어내야 할 부분은 비우고 오게 됩니다.


사촌 형은 부모님 두 분이 고향에 나란히 누워계셔서 그런지 생활근거지가 서울임에도 천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자주 부모님을 뵈러 내려옵니다. 험난한 세상살이에서 마음을 안식을 구하기 위해서겠지요.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내 마음의 안식처는 과연 어디일까 하구요.


벌초를 끝내고 사촌형과 잠시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저의 빠진 살과 낯빛을 보고는 자못 심각한 투로 이렇게 말힌더군요 "안색이 예전에 비해 어둡고 많이 억눌려 있는 것 같다."고... 예전같으면 "저 아주 건강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주변 지인들게 부인하며 안심을 시켜드렸을텐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사실 지난주부터 배가 사륵사륵 아프기도 하고 최근에 관계에서 오는 말 못하는 스트레스로 인해 마음에 어두운 부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형의 얘기를 듣고 저의 문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숙사리는 한정된 공간에서 아이들, 교직원들과 부대까며 할 말을 다하지 못하고 배려와 용기부족이라는 가면 아래 저 자신의 본모습을 잃어가며 스스로를 많이 억누르고 있었다는 것을 형이라는 거울을 통해 비춰보게 되어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옥담(玉潭) 이응희는 조선 중기의 시인이자 재야의 처사로 고향에서 농사와 시쓰기, 자기 수양을 하며 일생을 마치신 분입니다. 그의 시는 앞서 <거미줄[주망(蛛網)]>에서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강아지를 소재로 하여 쓴 시가 흥미롭습니다. 그는 일상의 사물을 통해 해학과 지혜를 보여주고, 소통의 맛을 전해주는 시인인 것 같습니다.


오늘날 1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이 시기에 반려동물은 영혼의 친구, 외로움을 달래 줄 식구로서 그 어느 시기보다 대접을 잘 받고 있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늘어나고 있는 펫용품점, 펫샵, 펫 미용실, 펫 호텔 등과 조금만 걸어다니다 보면 심심치 않게 반려동물과 산책하는 모습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됩니다.

품격 있는 사회란 나 아닌 타자를 얼마나 잘 배려하고 존중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보신탕이니 해서 개를 식용으로 먹는 문화가 있었으나 지금은 예전에 비해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늘 우리 곁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반겨주는 반려동물을 나 자신처럼 아끼고 사랑해줄 때 나 또한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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