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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48일

by 은은


薄田苗長麇豝吃(부전묘장균파흘) 마른 땅에 싹 자라면 노루, 산돼지 훔쳐 먹고

莠粟登場鳥鼠偸(유속등장조서투) 조라도 조금 나올라치면 새, 들쥐 훔쳐 먹네

官稅盡輸無剩費(관세진수무잉비) 세금 겨우 바치고 나면 남은 곡식 하나 없건만

可堪私債奪耕牛(가감사채탈경우) 사채 빚 받겠다고 소마저 빼앗아 가네

- 김시습, <산중생활의 괴로움[詠山家苦(영산가고)]>


물안개가 짙은 아침입니다. 생명을 일깨우는 몸 깨우기를 아침 기상과 함께 실시한 후 주변 동네 산보를 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5일간 왕복 40분 정도 실시합니다. 산보길 옆에는 비온뒤 시원한 냇물이 저희를 맞아주고 돌아오는 길에는 물안개가 얼굴을 마사지해줍니다. 숙소에 돌아와서 무심코 뒷뜰을 올려다보니 은행나무, 단풍나무에 방패연 모양, 꼬깔콘 모양 등 다양한 모양과 크기로 가지 끝에 거미줄을 쳐놓은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 우리네 인생 또한 거미가 거미줄을 기도하듯 정성을 들여 쳐놓고 먹이를 구하는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여러분과 함께 조선 전기 오세 신동으로 불리던 길 위의 시인인 김시습의 <산골 농부의 괴로움>이란 시를 가지고 농사짓는 어려움에 대해 얘기 나눠볼까 합니다. 그는 백성의 처지를 마음 아파하며 지은 시들이 많은데요. 이 시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도시를 벗어나 교외나 농촌에 가보면 멧돼지나 두더쥐, 참새, 들쥐, 다람쥐 등이 농민이 애써 가꿔 놓은 땅콩, 고구마, 감자 등 농작물을 파먹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허수아비입니다. 농촌을 대표하는 풍경이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쇠꼬챙이를 세우고 플라스틱 빈 병을 반으로 잘라 붙이거나 총소리나 호루라기 소리, 대포 소리가 나는 신호 장치를 설치해서 들짐승이나 날짐승을 쫓아내기도 합니다. 일정 간격을 두고 들리는 소리가 고용한 농촌의 풍경을 일그러뜨리는 면도 없지 않지만 작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농민들의 고육지책임을 감안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멧돼지가 시가지를 내려와 편의점을 급습한다든지 먹을거리를 찾아 가족 단위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 생명 가진 짐승들이 오죽 먹을 것이 없으면 사람 사는 곳까지 내려와서 때로는 농작물을 망치기도 하고 때로는 사살되기도 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 인간이 다른 생명들에게 참 못할 짓을 많이 하고 있구나 하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앞섭니다. 산길이나 시골길, 혹은 고속도로에 보면 노루나 고양이, 개, 삵 등 야생동물들이 심심치 않게 자동차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원치 않게 보게 되기도 합니다.


가족이 먹을 만큼만 생산하는 텃밭 가꾸기나 대대로 내려오는 자신의 땅으로 농사짓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농민들은 남의 땅을 빌어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 대부분입니다. 이상 기후로 인해 비가 많이 오거나 혹은 너무 더워서 냉해나 가뭄을 겪게 되면 농작물의 피해로 인한 타는 마음을 그 누가 알아주고 헤아려 줄 수 있을까요?


비싼 비료값과 사료값으로 인해 빚을 낸 농민들이 대부분이며 농촌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 또한 대부분이 고령의 노인들입니다. 빚을 갚아 나갈 여력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땅을 빌린 임차금과 비료, 사료값, 기계 대여료, 기름값 등 각종 비용을 제하고 나면 농민들은 도시 급여 생활자에 비해 손에 쥘 수 있게 되는 돈이 얼마나 될까요?


풍년이 들었다고 한들 많이 생산되면 생산되는 대로 제값을 값지 못해 논밭을 갈아엎는 일이 흔하며 값싼 수입 농산물의 공세로 인해 희망을 읽고 농약을 마시는 등 자살하는 농민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농업과, 농촌, 농민의 위기는 인류 문명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는 수출을 통해 해외에서 식량을 수입하고 있지만 자국에서 기후 위기, 식량난 등이 생길 경우 우리나라에 식량을 수출하려고 할까요? 식량은 경제적 가치를 따져서는 안 될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가 반드시 지키고 후대에 물러줘야 할 유산이자 의무이기도 합니다.


지금이라도 소농을 지원하고 식량자급률을 높일 방안을 온 힘을 다해 찾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태껏 쌓아올린 ‘농(農)’이라는 정신적 가치와 자산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며 농부라는 하늘이 내린 ‘천직(天職)’ 또한 농사짓는 노인이 돌아가시고 나면 사라질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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