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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49일

by 은은


寧言之不顧(영언지불고) 말을 번복할지언정

不規規於(불규규어) 옳지 못한 약속은

非義之信(비의지신) 지키려 하지 않고

寧身被困辱(영신피곤욕) 몸이 고통을 당할지언정

不徇人以(불순인이) 예의를 벗어나 굽실거림으로

非禮之恭(비례지공) 다른 사람에게 아부하지 않고

寧孤立無助(영고립무조) 홀로 서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을지언정

不失親於(불실비어) 비천한 사람에게도

可賤之人(가천지인) 애정을 잃지 않았으니

古之儒者(고지유자) 옛날의 선비는

處心如此(허심여차) 마음가짐이 이와 같았다.

-신흠, (申欽, 1566∼1628), <휘언(彙言)>


어제 개인적인 일로 서울을 당일로 다녀온 후 일찍 잠자리에 든 것도 아닌데 새벽 5시에 절로 눈이 떠졌습니다. 어제 종일 비가 내려서 그런지 까만 하늘 바탕에 빛나는 별이 여명과 함께 새로운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 같아 오늘을 여는 마음이 설레는 아침입니다.


저희 교육원은 남중, 남고 학생을 대상으로 무학년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학교폭력 가해, 교권 침해 등으로 인한 특별교육학생과 몸과 마음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해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각 단위 학교에서 추천을 받아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학교에서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아이들을 받아서 감사, 회복 교육(체험학습), 몸 깨우기, 표현공유, 교과 융합, 예술교육, 상담 활동 등을 통해 아이의 몸과 마음의 상처를 회복시키고 학교 적응력을 높여서 원적교로 보내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매년 9월이 되면 교육원 소속 파견 교사는 내년에 원적교로 복귀할지 아니면 유예신청을 해서 잔류를 할지 의사 표시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두 달 뒤인 11월에 교육청에서 파견교사 모집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올해 같이 발령을 받은 파견교사 네 분 중에 세 분은 각자의 계획에 따라서 원적교로 복귀한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까지 결정을 내리질 못했는데 혼자 잔류하게 된다면 함께 마음을 맞춰 온만큼 아쉬움도 큽니다. 이분들이 각자의 계획에 따라 일이 잘 풀리기를 기원합니다.


상촌 신흠은 조선 중기 문장가이자 오늘날로 치면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맑고 가난한 삶을 살다 가신 분입니다. 미물, 풀과 나무, 자연에 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진 시를 많이 지으신 분이기도 합니다.


위 시는 선비의 마음가짐에 관한 글입니다. 여러분은 가슴 속에 내가 닮고자 하는 사람이 하나둘쯤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직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한 10대들은 이번 글을 통해 닮고 싶은 사람을 찾게 되고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신흠은 중간에 말을 바꿀지언정 “옳지 못한 약속은 지키려 하지 않고” 자신의 출세를 위해 예의에 어긋난 아부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렇게 행동해서 설령 자신의 주변에 그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된다 하더라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애정과 도움의 손길을 놓지 않겠다고도 말합니다.


저는 닮고 싶은 사람이 많습니다.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한 없는 자식 사랑을 닮고 싶습니다. 내 아이와 마찬가지로 학교의 학생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쏟으며 이들의 건강과 발전을 위해, 바른 길을 올곧고 당당히 걸어갈 수 있게 기도하며 이 땅의 모든 유·초·중·고 ·대학의 교직원과 그 가족, 학생과 학부모님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사람을 닮고 싶습니다.


사상적으로는 간디, 비노바 바베, 사티시 쿠마르, 반다나 시바, 헨리 데이빗 소로우, 김종철, 법정 스님, 장일순, 권정생, 전우익, 김시습, 신흠, 장유, 이규보, 정약용, 지구상의 모든 농부들 등 이 땅의 모든 영적 스승들을 삶을 닮아가고 싶습니다.


옛날의 선현들의 마음 씀씀이와 삶의 궤적과 그 향기가 이와 같은데 여러분이 닮고 싶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불교의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에는 삶의 수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한 구절이 있습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 없을 때에는 초원을 호령하며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은 당당함을, 진흙 속에서 피어나지만 그 흙탕물에 물들지 않는 연꽃의 청초함과 청정함을 가슴에 품고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무소처럼 살아 나가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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