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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50일

by 은은


山居無事(산거무사) 산에 살며 일이 없어

靜觀物理(정관물리) 사물의 이치를 고요히 살펴보니

顧世之營營逐逐(고세지영영축축) 이익을 좇아 바삐 오가고

勞神瘁思者(노신췌사자) 정신과 생각을 수고롭게 하는 것은

皆閒漫爾(개한만이) 모두 한심하고 부질없는 일이다.

蠶之破殼(잠지파각) 누에가 나올 때면

桑葉先吐(상엽선토) 뽕잎이 먼저 돋고

燕子出卵(연자출란) 제비 새끼가 알에서 나오면

飛蟲滿野(비충만야) 날벌레들이 들판에 가득하다.

嬰兒落地一聲(영아낙지일성) 아기가 갓 태어나 울음을 터뜨리면

乳汁泌然(유즙비연) 엄마 젖이 나온다.

天之生物(천지생물) 하늘이 만물을 낳을 때

竝賜其糧(병사기량) 그 먹을 것도 함께 주는 법이다.

奚爲深憂過慮(해위심우과려) 어째서 깊이 근심하고 지나치게 염려하면서

遑遑汲汲(황황급급) 정신없이 바삐 돌아다니며

唯恐拏攫之(유공나확지) 혹 기회를 놓치지나 않을까

失機哉(실기재) 근심한단 말인가?

使吾人得飽喫(사오인득포) 설사 우리가 배불리 먹고

喫煖著(끽난착) 따뜻이 입으며

終身無憂以死(종신무우이사) 평생 걱정 없이 살다가 죽는다 할지라도

死之日(사지일) 죽고 나서

人與骨俱朽(인여골구후) 사람과 뼈가 모두 썩어 버리고

一簏之書無所傳(일록지서무소전) 후세에 남길 글 하나 없다면,

猶之無生(유지무생) 그 사람의 삶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謂之有生(위지유생) 삶이 있었다 한들

則與禽獸(즉여금수) 날짐승, 들짐승과

無擇焉爾(무택언이) 다를 게 없을 터이다.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정수칠에게 당부하는 말[又爲丁修七贈言(우위정수칠증언)]>


어젯밤 교육원에 복귀하였습니다. 달님이 어둑한 구름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보였다 반복하며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무렵은 일기가 더워지기 시작하는데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은 몸과 마음에 서늘함을 안겨주어 더욱 우리를 사색의 강과 산으로 떠미는 것 같습니다. 요즘 걷기와 관련된 글을 읽고 있는데 그것에 관한 다양한 관점을 풀어내고 있어 글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걷기와 관련된 글은 기회가 닿을 때 고견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정수칠(丁修七,1768~?)은 다산보다 여섯 살 아래이며 그의 먼 친척이자 다산초당 제자 18명 가운데 가장 연장자이기도 합니다. 다산은 한 집안사람인 그에게 〈어린이를 가르치는 방법[교치설(敎穉說)]〉,〈반산 정수칠을 위해 드리는 글[(爲盤山丁修七贈言〉, 위의 글 등 총 3편의 증언첩을 써주기도 하였습니다.

(푸르메, 정약용 어록(109) - 문제는 과거공부다> 네이버 블로그 참조)


첫 번째 이야기는 옛 어른들이 “사람이든 생물이든 다 자기 먹을 복을 타고난다”는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내가 과연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나는 내 밥벌이를 잘 할 수 있을까?’등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부모, 친구, 형제자매, 친척 등)이 나를 못살게 굽니다. 과연 나는 못난 사람일까요?


두 번째 이야기는 “밥벌이가 해결되면 그것으로 우리는 만족할 만한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하는 의문을 던져줍니다. 정약용 선생님은 ‘후세에 남길 글 하나 없다면, 그 사람의 삶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정신이 번쩍들 정도로 강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생을 마치고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갈 때쯤 나의 자식에게, 벗에게 그리고 이웃에게 무언가 의미 있는 말과 글 하나쯤 남길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보는 건 어떨까요? 하늘과 땅이 주변 친구가, 동료가,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이웃이 우리가 굶어 죽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보장해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후세에 남긴 글, 음악과 미술, 공예, 건축 작품 등을 꼭 남겨야만 이생을 살다가며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평을 받게 되는 걸까요? 우리 선현들 중에도 글을 남기진 않았지만 평소의 말과 행실로써 사표(師表:스승으로서의 본보기)가 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었던 남명 조식 선생을 들 수 있습니다. 그의 후학들은 임진왜란 때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국난에 적극적으로 맞서 싸웠던 오늘날의 영웅들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의 살아 있을 때 우리가 함께 겪어 본 선한 영향력과 행동과 말, 그 사람의 사람 됨됨이, 그가 교류한 사람들을 통해 입에서 입으로, 행동에서 행동으로 전해 오며 우리의 귀감(龜鑑)이 되고 있습니다.


생태주의 사상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정신적 스승이자 시인인 랄프 왈도 애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은 성공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습니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 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여러분은 자신의 생을 마무리할 때쯤 삶과 자연, 우주에 대해 어떠한 정의를 내리고 싶은지요?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이란 구절이 저의 큰 꿈이자 이루고 싶은 서원(誓願)입니다. 그리고 작은 꿈이자 소박한 소망은 ‘내가 한때 이곳에서 살았음으로해서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는’일을 오늘부터라도 반려자, 아이와 함께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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