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일
余病(여병) 나의 병은
余自知之(여자지지) 내가 잘 안다
勇而無謀(용이무모) 나는 용감하지만 무모하고
樂善而不知擇(락선이부지택) 선을 좋아하지만 잘 가려서 하질 못하며,
任情直行(임정직행) 마음이 끌리는 대로 곧장 나아가
弗疑弗懼(불의불구) 의심할 줄도 두려워할 줄도 모른다.
事可以已(사가이이) 그만둘 수 있는 일이지만
而苟於心有欣動也(이구어유흔동야) 마음에 기쁨을 느끼면
則不已之(즉불이지) 그만두질 않는다
無可欲(무가욕)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而苟於心(이구어심) 마음에
有礙滯不快也(유애체불쾌야) 꺼림칙하고 산뜻하지 않으면
則必不得已之(즉필부득이지) 그만두질 않는다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매사에 머뭇거리듯 조심함을 경계로 삼는 글[여유당기(與猶堂記)]>
긴 연휴 후 어젯밤 교육원에 복귀하였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추석 연휴 보내셨는지요? 후광을 동반한 보름달을 보며 경건한 마음으로 삼라만상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동료 교직원은 월요일 당일 9시까지 출근을 합니다. 저는 집에서 교육원까지 거리가 제일 멀기도 하고 아침 출근길 교통 정체가 달갑지 않아 조용한 시간에 미리 들어옵니다. 그래서 다음날을 여유 있게 보낼 수 있기에 하루 일찍 출근함에 대한 위안과 보상으로 삼습니다. 저희 교육원은 제가 사는 진해와는 불과 40km거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맡은 밤공기는 차원을 달리한 신선하고 맑은 공기가 코와 폐부로 들어오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아 깜짝 놀랐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을 찾는구나’ 생각해 봤습니다. 교육원 들어오기까지 6km 정도는 산길인데 연휴의 끝자락 밤길이라 그런지 오가는 차량을 한 대도 볼 수 없어 적막감이 한층 더하였습니다.
이 글은 다산이 39세 되던 해(1800년)에 집의 이름을 <여유당>으로 정하면서 쓴 글입니다. 이듬해(1801년)에 신유박해(辛酉迫害)로 다산의 기나긴 18년간의 유배 생활이 시작되었으니 다산 또한 정치적 유배 생활을 예감했던 듯합니다.
지금이야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조선 후기에는 왕 이외의 천주(天主:하느님)를 믿었다는 이유로 셋째 형인 약종처럼 순교(殉敎:자기가 믿는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침)를 택하거나 형벌로 머나먼 타지로 가족과 떨어져 생활해야 하는 유배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산 개인으로서는 가슴 아픈 가족사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당과 당의 싸움은 상대방을 죽이거나 정치적으로 다시 일어설 수 없게끔 만드는 인간으로서는 차마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자주 벌이곤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보면 인간의 권력욕은 참 고약하고 끝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잘되려면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는 생각,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자만과 잘못된 고집 등이 주변 사람과 생명을 얼마나 힘들게 해왔는지요.
다산 또한 이런 점에 대해 반성하는 마음으로 글의 첫머리를 시작합니다. 젊은 시절 “용감하였지만 무모하였고 선한 일을 좋아하였지만 잘 가려서 하질 못했고 마음이 끌리는 대로 곧장 나아가 의심할 줄도 두려워할 줄도 몰랐다”는 자기 고백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이어지는 글에서 이러한 어리석음과 무모함에 대한 성찰과 태도 변화를 보여줍니다.
《노자(老子)》에는 “머뭇머뭇하노라[여(與)], 겨울 시내 건너듯 조심조심하노라[유(猶), 사방을 두려워하듯”이라는 말이 있다. 아, 이 구절은 내 병을 치료하는 약이 아니겠는가? 대개 겨울 시내를 건너려는 자는 추위가 뼈를 에므로 그야말로 부득이하지 않으면 건너지 않는다. 사방을 두려워하는 자는 엿보는 사람을 의식해 그야말로 부득이한 일일지라도 하지 않는다. 마음과 생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중에 그야말로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그만둔다. 그야말로 부득이한 일일지라도 남모르게 하려는 일은 그만둔다. 만약 이처럼 한다면 하늘 아래 무슨 일이 있겠는가?
다산의 자기 고백과 성찰의 글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는지요? 왜 세상살이를 머뭇머뭇하며 겨울 시내 건너듯 조심해야 할까요? 젊은 혈기에 앞뒤 가리지 않고 무모하게 행동하였던 적은 없었는지요? 나는 좋은 의도로 선한 행동을 했으나 상대방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은 적은 없는지요? 잘못된 믿음과 행동으로 인해 나 자신과 주변을 힘들게 하지는 않았는지요? 다산의 글을 함께 읽으면서 저 또한 이러한 마음과 생각,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이로 인해 주변에 크나큰 상처와 생명의 큰 손상을 가하지는 않았는지 무겁고 두렵게 반성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