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55일

by 은은


人農則童(인농즉동) 사람이 농사를 지으면 천진해지고

童則少私義(동즉소사의) 천진하면 사심(私心:나만을 위하는 마음)이 없고

少私義(소사의) 사심이 적으면

則公法立(즉공법립) 법을 공평하게 바로 세우게 된다

爲之者人也(위지자인야) 농사 짓기는 사람이 하고

生之者天也(생지자천야) 싹틔우기는 하늘의 때에 따르며

養之者地也(양지자지야) 곡식 키우기는 땅이 한다

農工食(농공식) 농사는 먹거리를 만드는 일이고

工攻器(공공기) 공사(工事)는 물건을 만드는 일이며

賈攻貨(고공화) 장사는 재화를 만드는 일이니

時事不龔(시사불공) 이 같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敓之以土功(탈지이토공) 땅의 이로움을 얻지 못하게 되면

是謂大凶(시위대흉) 이야말로 크게 흉함이 된다

- 박지원(朴趾源, 1737~1805), <農道論(농도론)>


오후에 무심히 교육원 기숙사 베란다에서 바깥 들판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왠일인지 여태껏 볼 수 없었던 대여섯 무리의 새들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참깨를 추수한 들판에서 열심히 모이를 주워 먹기도 하고 맥문동 보랏빛 꽃에 앉기도 하면서 한때를 만끽하는 것 같아 보기에 흐뭇하였습니다. 머리는 까만색 캡모자를 쓴 듯 하고 꼬리는 일반 새들에 비해 길었으며 몸의 색깔은 비취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오십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이런 류의 새들은 처음 보는 것이라 뭔가 길운을 암시하는 건 아닌가 하고 혼자서 즐거운 상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1798년(정조 22) 농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농업기술에 관한 저술을 구한다는 정조의 윤음(綸音, 임금이 신하나 백성에게 내리는 말)이 있자 당시 충청도 면천(眄川) 군수로 있던 박지원이 1799년 3월 10일에 정조 임금께 지어 올린 《과농소초(課農小抄)》의 일부분입니다. 과농소초는 우리나라의 농학(農學)과 중국의 농학을 비교 연구하여 편찬한 농업 서적입니다.


조선 후기 대문장가이자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은 농업 일반에 관한 총론인 〈諸家總論(제가총론)〉에서 역대 농학자들의 학설로부터 농업의 기본정책에 관한 이론을 인용하여 그것이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학문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농사짓기는 사람이 하고 싹 틔우기는 하늘의 때에 따르며 곡식 키우기는 땅이 한다.”는 문장에서 농사는 하늘과 땅과 사람이 서로 협력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겸손하고 공경하며 조화롭게 이뤄질 때만이 제대로 된 낟알 한 알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공자 또한 농사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孔子之言(공자지언)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穀者人之天(곡자인지천) 곡식은 모든 백성의 하늘이다.

是以興王(시이흥왕무농) 나라를 세우는 일은

務農(무농) 농사에 힘쓰는 것과 같다.

王不務農(왕불무농) 왕이 농사를 짓지 않는 것은

是棄人也(시기인야) 백성을 버리는 바와 같은 짓이니

將何國焉(장하국언) 장차 어찌 나랏일을 하겠는가!

- 구자옥, 『농사, 고전으로 읽다』, 98쪽


곡식과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자 나라를 지키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즘 기후 위기로 인한 식량안보가 각국의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으며 통치자는 백성의 먹을거리부터 챙겨야 함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왕과 왕비가 솔선수범하여 농사와 누에를 치지 않으면 백성을 버리는 것과 같으니 정치하는 사람들부터 먼저 농사짓고 옷을 만드는 일에 본보기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박지원은 “사람이 농사를 지으면 천진해지고 천진하면 사심(私心)이 없고 사심이 적으면 공법(公法)을 바로 세우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 문장을 함께 공부한 처음의 의도는 가정에서 텃밭 가꾸기를 하면서 농부의 천진함과 돌봄의 소중함을 배워 보라는 의도였습니다. 비록 의도한 바와는 달랐으나 10대들은 ‘곡식이 모든 백성의 하늘’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고 농사는 곧, 생명 존중과 나라와 국토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소감을 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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