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59일

by 은은


下田多水常苦雨(하전다수상고우) 낮은 논 물 넘쳐 비 항상 괴롭고

高田高燥旱更苦(고전고조한갱고) 높은 논 메말라 가뭄이 괴로운데

西湖浮田兩無憂(서호부전양무우) 서호의 부전은 두 걱정 모두 없이

歲歲金穰積高庾(세세금양적고유) 해마다 풍년 들어 창고 가득 쌓인 곡식

縛木爲筏竹爲艌(부목위부죽위념) 나무 엮어 떼 만들고 대오리고 끈을 묶어

上載叟叟尺許土(상재수수척허토) 그 위에 두 세자 흙을 실으니

不用犁耙撥春泥(불용려파발춘니) 쟁기질 보습질로 땅 고를 필요 없고

但將耬斗播早稌(단장누두파조도) 누두만 가지고서 찰벼 씨 뿌리누나

水高則昻低則低(수고즉앙저즉저) 물 차면 떠오르고 물 빠지면 갈앉으니

苗根常與水面齊(묘근상여수면제) 모 뿌리는 언제나 수면에 잠겨 있네

暴尫無聞桔槹響(폭왕무문길고향) 아무리 가물어도 두레박소리 들리잖고

祭禜不煩黿鼉隄(제영불번원타제) 자라 악어 들끓어도 영(禜)제사 필요없네

芙蕖菱芡錯雜起(부거능검착잡기) 연꽃이랑 마름 뒤섞여 자라나

朱華綠穗行相迷(주화녹수행상미) 붉은 꽃 푸른 이삭 서로 얽혀 있는데

耘婦朝乘畫船入(운부조승획선입) 김매는 아낙네들 아침 배로 들어가서

秧歌晩踏紅橋躋(앙가만도홍교제) 저물녘엔 모내기 노래, 붉은 다르 오르네

豈唯民殷嫌地窄(기유민은혐지착) 어찌 사람 많고 땅 좁다 걱정하랴

遂將人智違天厄(수장인지위천액) 드디어 사람 지혜 천액(天厄)을 벗어났네

我向野農披丹靑(아향야농피단청) 내가 이 그림을 농부에게 펴보이니

冷齒不肯虛心聽(냉치불긍허심청) 마음 비워 듣지 않고 냉소만 하네그려

赭山何處著斤斧(자산하처착근부) 민둥산 어디에다 도끼를 댈 것이며

白澱無地覓泓渟(백전무지멱홍정) 수렁일 뿐 깊고 맑게 고인 물도 없다 하네

有田則耕無則已(유전즉경무즉이) 땅 있으면 갈아 먹고 없으면 그만이지

智力由來安絜甁(지력유래안혜병) 예로부터 만사가 지력으로 다 됐던가

萬人束手仰冥佑(만인속수앙명우) 만인이 속수무책 귀신 도움만 바라면서

鞭龍疈牲祈山靈(편용벽생기산령) 짐승 잡아 산신령께 빌기만 하네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서호의 부전을 그린 그림을 보고서[題西湖浮田圖(제서호부전도)]>

* 耬斗(누두)는 씨를 뿌리는 농기구의 일종입니다.

* 禜(영)은 산천의 신에게 수재(水災: 홍수나 장마 따위로 인한 재해), 한재(旱災: 가뭄으로 생기는 재난과 피해) 등을 물리쳐 달라고 비는 제사를 말합니다.


처음 매일 쓰리라 마음 먹었던 글이 예상과 다르게 더디 감을 보며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되는 요즈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게 될 때 용기를 내는 첫 마음을 늘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목표나 목적이 잠시 흔들리게 될 때 중심을 잡아주는 무게추와 내적 동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지난주 울릉도 독도 국토 순례를 끝낸 다음날이 아이들 수료식이었습니다. 이번 3기의 아이들은 함께 하는데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한 번에 많은 아이들을 받은 것도 문제였지만 남자 아이들, 특히 중학생들은 자기들끼리 투닥대고 기싸움을 하며 서열 정리를 하려고 합니다.


저희 원의 교육목표가 돌봄, 치유, 회복, 성장이지만 막말을 일상적으로 하는 아이, 침을 아무렇지 않게 뱉는 아이, 성과 관련된 얘기들을 여성 상담 선생님들이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하는 아이, 선생님께 눈을 부릅뜨며 대드는 아이, 자기보다 못한 아이를 무안주고 무시하는 아이들에게 교육이 아닌 돌봄과 지켜봄, 기다림을 실천하는 일은 난제 중의 난제로 돌봄과 교육의 경계선에 직면하게 되고 교사의 정체성을 뒤흔들고 사기를 꺾는 심란한 경험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무작정 안아주고 기다리는 것이 답일까요? 아니면 선을 넘어서는 아이들은 과감하게 원적교로 돌려보내는 것이 해결책일까요? 두 물음 사이를 저희 교원들은 늘 줄타기를 하고 있으며 저는 후자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도 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중국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 서호(西湖)에 뜬 밭[부전(浮田)]을 그린 그림을 보고 다산 정약용 선생이 지은 시를 함께 살펴볼까 합니다. 이 시를 통해 평소 다산의 농(農)에 관한 실리적이고 실제적인 사유를 잘 엿볼 수 있습니다. 시의 길이와 폭이 길긴 하지만 여러분과 차분히 그의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다산은 뛰어난 학자이자 문장가이며 과학자이기도 합니다. 정조 임금 때 수원 화성 축조 시 거중기를 발명해 국가 예산을 절약하기도 했으며 강을 건너기 위해 배와 배를 연결한 배다리인 ‘주교(舟橋)’를 만들어 실생활의 편의를 도모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농업과 관련된 사유는 삼농(三農)을 중시한 데서 엿볼 수 있습니다.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농업국가인데도 사·농·공·상의 네 가지 직업 가운데 농업의 처지는 열악했다. 높기로는 선비만 못하고, 이익으로는 상업만 못하고, 편안하기로는 공업만 못하다. 이 세 가지를 개선하지 않으면 농사짓기를 권할 수 없다는 게 정약용의 생각이었다. 그는 대안으로 3농 정책(편농, 후농, 상농)을 피력했다(1796). “첫째는 편농(便農)이니 편하게 농사짓게 하려는 것이고, 둘째는 후농(厚農)이니 농업이 이익이 나게 하려는 것이며, 셋째는 상농(上農)이니 농민의 지위를 높이려는 것입니다.”(<응지론농정소(應旨論農政疏>) 그리고 첫째 ‘편농’을 위해서는 농기구를 개량하고, 농업 기술을 개선하고, 수리 사업을 일으켜야 한다. 둘째 ‘후농’을 위해서는 환상법(還上法)의 폐해를 제거하고, 부업과 작물 다각화를 장려하고, 도량형을 통일해야 한다. 셋째 ‘상농’을 위해서는 과거제도를 개선하고, 벼슬에 나아가지 않는 사람은 농사를 짓도록 해서 놀고먹는 사람이 없게 해야 하며, 양역법(良役法)을 개선해야 한다 등의 방책을 제시했다.

(남양주넷 > 인물 > 정약용 > 정약용 선생의 업적/사상 > 정약용 선생 50문답에서 참조)


“농업국가인데도 사·농·공·상의 신분제 사회에서 농업의 처지는 열악했다.”고 다산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백여 년 후인 오늘날에도 그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 땅의 정권을 잡고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주로 변호사나 검사 출신, 혹은 행정고시를 통과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간혹 군인이나 기업인 출신들도 눈에 보이곤 합니다. 지위의 높기로는 국가고시를 통과한 사람, 기업인들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오늘날 농업, 농촌, 농민의 실정이기도 합니다. 이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지 않는 한 앞으로 이땅에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이에 대한 개선책으로 다산은 삼농을 제시하였습니다..


농사짓는 기술을 발전시켜 농사를 편하게 짓자는 것이 그 첫 번째요, 환상제(還上制: 농민 생활의 안정을 위해 곡식을 빌려준 후 이자를 받는 제도) 폐지 및 농업 생산의 다각화를 통해 농민의 생활을 두텁게 보장해 주자는 것이 그 두 번째요, 비록 양인(良人)이지만 과거를 보지 않는 사람도 농사를 짓게 해서 놀고먹게 하는 사람이 없게 하자는 양역법(良役法)을 개선하자는 것이 그 마지막 개선책인 농업의 가치를 윗자리에 놓은 상농(上農)입니다. 지금도 실 생활권은 서울이나 타지에 있으면서 농지만 따로 구입해서 농업 장려금인 직불금을 타서 쓴다든지 하는 얌체 짓을 하는 일부 부유층 사람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농사 기술의 개선책의 하나로 요즘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알아서 농사를 지어 주는 스마트 농법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드론을 이용해서 물과 비료를 주고 인공지능 로봇이 씨앗 파종부터 곡식과 과일을 재배·수확할 수 있다면 참 편리하고 편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농사가 돈이 된다면 기업에서 먼저 뛰어들어 대량생산에 대량 수확을 해서 그 이익을 먼저 보려고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 및 인공지능 시대에 기계의 힘을 빌려 농사를 짓는 일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옛날 양반들이 농민의 힘을 빌려 자신들은 글공부나 하며 기생하였듯 작물을 생산하는 방식과 주체가 사람에서 기계로 바뀐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의 병폐는 지식이 부족한 것이 아닌 지혜와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과 혜안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인공지능과 기계의 편의만 믿고 땅과 자연에서 손수 수확하며 기르는 즐거움, 겸손과 절제의 미덕에서 멀어지게 될 때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 이상과 전염병의 일상화 그 이상으로 인류가 힘들어질 것임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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