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일기

60일

by 은은

一夜新涼生(일야신량생) 서늘한 바람 새로 이는 밤

寒蛩入戶鳴(한공입호명) 귀뚜라미 문에 들어와 우네

野泉穿竹響(야천천죽향) 들녘의 샘물 소린 대숲 너머 들리고

村火隔林明(촌화격림명) 마을의 불빛은 숲 너머 밝네

山月三更吐(산월삼경토) 한밤중에 산봉우리 달 뱉어내고

江風十里淸(강풍십리청) 십리 길 강바람 맑기도 하지

玉宇雁群橫(옥우안군횡) 하늘가엔 기러기 떼 비껴 나누나

-이덕무(1741~1793, <가을밤을 노래하다[추야음(秋夜吟)]>


오늘은 서리가 내린다는 절기상 상강(霜降)일입니다. 내 마음에 서리가 내릴 때와 밝은 햇살이 비칠 때를 잘 살필 수 있다면 우리를 둘러싼 우주와의 질서와 조화, 나 자신과 타자에 대한 겸손과 친절, 연민과 자비라는 덕목의 균형을 잘 이뤄갈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요며칠 낮에도 떠 있고 밤에도 떠 있는 상현(上弦)달을 바라보며 낮에 떠 있는 달은 해와 함께 있어 생뚱맞은 느낌이 드는 반면, 구름에 빼꼼 숨어 있으면서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거나 홀로 밤을 밝히는 달이 당당해보여 좋습니다. 이곳은 아침 물안개와 함께 해가 반사되는 모습을 내보임으로써 장관을 연출해내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 베란다에 서서 주위를 살펴보니 수령이 백년은 넘어보이는 은행나무가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은행잎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저 또한 그 의연함을 닮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게 됩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니 보랏빛, 선홍빛 나팔꽃이 작지만 자신의 색깔을 내며 자리 한 켠을 빛내고 있었습니다. 보랏빛은 어둠과 차분함을, 선홍빛은 밝음과 어린아이의 해맑은 웃음을 연상하게 합니다, 삼라만상은 늘 제자리를 지키며 자신이 할 일을 묵묵히 해 나가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여러분은 ‘가을’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요? 저는 제일 ‘추석’, ‘보름달’, ‘추분’, ‘추수’ 등의 단어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새벽과 저녁에 우는 풀벌레 소리가 정겹고 한편으로는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다)의 계절이라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사람과 자연이 한 해 동안의 일을 성찰하고 자신을 비워나갈 준비를 하는 계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을이 되면 여태껏 살아온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선선해지고 추분 이후 밤이 길어지다 보니 따뜻한 봄, 무더운 여름과 다르게 생각이 참 많아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선현들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겠지요. 위 시 또한 ‘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고요한 저녁 문 앞의 귀뚜라미 소리, ‘들녘의 샘물 소리’가 밤을 배경으로 하여 더욱 선명하게 들려오며 제 마음 또한 더욱 차분해집니다.


시인의 시선이 집에서 들녘으로 숲에서 마을로 그리고 산과 하늘로 향하고 있습니다. 한방 중에 뜬 달은 또 얼마나 맑고 아름다운지요. 십 리 먼 길에서 불어오는 강바람 맞으며 저 멀리 기러기 떼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신비와 질서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까요? 우주 대자연의 극히 일부인 인간으로서의 역할과 할 일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가을밤입니다.


우리는 학업과 직장 일에 진을 다 뺀 나머지 일부러 주말에 자연을 찾거나 땅을 돌보고 일구지 않는 이상 자연의 소리를 너무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나의 목소리가 아닌 자연의 소리와 생명에의 공경과 존중,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경외, 경탄할 시간을 핸드폰과 TV를 쳐다보고 우리는 학업과 직장 일에 진을 다 뺀 나머지 일부러 주말에 자연을 찾거나 땅을 돌보고 일구지 않는 이상서로 잡담하느라 귀뚜라미 소리, 가을이 다가오는 소리,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나의 말을 멈추고 주변의 풍경과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일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을 때 우리 삶은 좀 더 풍성해지고 우리 내면은 가을 밤처럼 고요히 성숙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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