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
一夜新涼生(일야신량생) 서늘한 바람 새로 이는 밤
寒蛩入戶鳴(한공입호명) 귀뚜라미 문에 들어와 우네
野泉穿竹響(야천천죽향) 들녘의 샘물 소린 대숲 너머 들리고
村火隔林明(촌화격림명) 마을의 불빛은 숲 너머 밝네
山月三更吐(산월삼경토) 한밤중에 산봉우리 달 뱉어내고
江風十里淸(강풍십리청) 십리 길 강바람 맑기도 하지
玉宇雁群橫(옥우안군횡) 하늘가엔 기러기 떼 비껴 나누나
여러분은 ‘가을’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요? 저는 제일 ‘추석’, ‘보름달’, ‘추분’, ‘추수’ 등의 단어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새벽과 저녁에 우는 풀벌레 소리가 정겹고 한편으로는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다)의 계절이라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사람과 자연이 한 해 동안의 일을 성찰하고 자신을 비워나갈 준비를 하는 계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을이 되면 여태껏 살아온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선선해지고 추분 이후 밤이 길어지다 보니 따뜻한 봄, 무더운 여름과 다르게 생각이 참 많아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선현들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겠지요. 위 시 또한 ‘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고요한 저녁 문 앞의 귀뚜라미 소리, ‘들녘의 샘물 소리’가 밤을 배경으로 하여 더욱 선명하게 들려오며 제 마음 또한 더욱 차분해집니다.
시인의 시선이 집에서 들녘으로 숲에서 마을로 그리고 산과 하늘로 향하고 있습니다. 한방 중에 뜬 달은 또 얼마나 맑고 아름다운지요. 십 리 먼 길에서 불어오는 강바람 맞으며 저 멀리 기러기 떼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신비와 질서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까요? 우주 대자연의 극히 일부인 인간으로서의 역할과 할 일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가을밤입니다.
우리는 학업과 직장 일에 진을 다 뺀 나머지 일부러 주말에 자연을 찾거나 땅을 돌보고 일구지 않는 이상 자연의 소리를 너무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나의 목소리가 아닌 자연의 소리와 생명에의 공경과 존중,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경외, 경탄할 시간을 핸드폰과 TV를 쳐다보고 우리는 학업과 직장 일에 진을 다 뺀 나머지 일부러 주말에 자연을 찾거나 땅을 돌보고 일구지 않는 이상서로 잡담하느라 귀뚜라미 소리, 가을이 다가오는 소리,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나의 말을 멈추고 주변의 풍경과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일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을 때 우리 삶은 좀 더 풍성해지고 우리 내면은 가을 밤처럼 고요히 성숙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