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57일

by 은은


苦葉由來不可嘗(고엽유래불가상)

쓴 잎새야 예부터 먹을 수 없었지만

甛葫也勝太官羊(첨호로야승태관양)

단 호박은 궁중에서 만든 양요리보다 낫다오

爛蒸莫折天然頂(란증막절천연정)

푹 무르게 쪄도 달려 있는 꼭지 자르지 마소

飫我清齋糠籺腸(요아청재강흘창)

내 맑은 재실에서 겨 먹던 창자 실컷 불리리라

- 김시습(金時習, 1435~1493), 〈단호박[첨호로(甛葫蘆)]>

요즘 아이들은 덩치가 큰 데 비해 몸과 마음은 연약합니다. 숨 제대로 쉴 틈 없ㄷ이 바쁜 현대 사회에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조금만 돌아보면 주로 식습관과 운동 부족에 기인함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저희 교육원의 남자 아이들의 경우 밥을 많이 그리고 빨리 먹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기 반찬을 위주로 먹고 야채는 손을 잘 대질 않는 편식이 심합니다. 밥을 먹는 중간중간에 물을 자주 마시기도 하니 소화가 잘될리 만무합니다. 밥과 반찬을 꼭꼭 씹어서 음미하며 먹으면 좋으련만 마음만 벌써 식후의 놀이에 먼저 가 있습니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나의 몸과 마음, 영혼을 구성합니다. 정신은 늘 깨어 있으며 먹기, 천천히 먹기, 식사 중 스마트폰 사용하지 않기, 식탁 위 밥과 반찬이 올라오기까지 노력한 천지 대자연, 인간을 비롯한 생산자에게 감사하며 먹기 등을 어른인 저부터 행동으로 보이고 함께 실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위 시에서 우리는 먹거리에 대한 김시습 사유의 일면을 잘 엿볼 수 있습니다. 한동안 쌀겨로 끼니를 때웠는데 마침 단 호박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산해진미(山海珍味)가 아닌 단 호박을 실컷 먹겠다고 한 언명에서 잘 드러나듯 작은 것에서도 만족할 줄 아는 그의 검소하고 소박한 삶의 양식과 성품을 잘 엿볼 수 있습니다. 필요한 만큼의 음식을 취하고 그것을 낭비하지 않는 일은 간소하고 절제된 삶의 추구이자 생명 사랑의 실천입니다.


계속해서 먹을거리와 관련된 <반찬(盤饌)> 3수 가운데 둘째 수와 셋째 수를 살펴보겠습니다.

爛蒸蘿蔔又燔苽(난증나복우번과) 무를 푹 삶고 또 오이를 구워서

山飯隨宜旋煮茶(산반수의선자차) 형편 따라 먹는 산중 밥, 차도 끓이네

不飽不飢閑偃臥(불포불기한언와) 배부르지도 고프지도 않아 한가로이 누웠으니

方知身世似浮槎(방지신세사부사) 문득 알겠네, 뜬 뗏목과 같은 신세인 줄을!

- <반찬(盤饌)> 2수


반찬은 ' 무와 오이'입니다. 산에서 먹는 밥은 절로 밥맛이 납니다. "배부르지도 고프지도 않"다는 것은 김시습 자신이 소식(素食: 간소하게 먹음)을 생활화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무한한 바다의 한갓 ‘뗏목’ 같은 인생임을 늘 자각하고 있음을 이 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각은 곧, 자신 또한 우주 대자연의 일부분이며 먹고 마시는 일의 중요성과 함께 이생에 단 한 번뿐인 삶을 소홀히 다루지 않겠다는 의지를 굳건히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끝으로 셋<반찬(盤饌)> 셋째 수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井冽寒泉盎有糧(정렬한천앙유량) 우물에 찬 샘물 맑고 독에는 먹을 양식 있는데

胡爲乎自欲遑遑(호위호자욕황황) 어찌하여 제 스스로 허둥대려 하는가?

碧山終日無伎倆(벽산종일무지량) 푸른 산에서 종일토록 특별히 할 일 없어

半映詩脾牛映牀(반영시비우영상) 절반은 시 속에서, 나머지 반은 평상에서 지내네

- <반찬(盤饌)> 3수


김시습은 가난한 살림에 소박한 밥상으로 충분히 인생과 자연을 즐길 수 있는데 '어찌해서 세상 사람들은 출세와 영달(榮達:지위가 높고 고귀하게 됨)에 골몰해 현재의 삶을 즐기지 못하는가?'하고 일침을 가합니다. 그는 대자연의 조화와 사랑, 아름다움을 읊을 수 있는 ‘시심(詩心)'과 쉴 수 있는 조그마한 ‘휴식처' 하나면 족하다고 말합니다.


오늘부터라도 우리에게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뭇 생명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품고 단호박, 무와 오이 반찬, 산중 밥과 차, 맑은 물, 쌀과 보리 등의 밥과 반찬을 절제하며 음미해 보는 여유와 사랑을 실천해 보면 어떨까요? 하루 이틀 실천해 나가다 보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사랑과 평화, 조화와 균형, 절제와 겸손, 연민과 자비로 넘쳐흐르게 되지 않을까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