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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65일

by 은은


簷虛足延望(첨허족연망) 처마 끝이 툭 틔어 경치가 시원하니

床窄劣容眠(상착열용면) 침상이 좁아 잠자리는 불편할지언정

箇裏生涯足(고리생애족) 예서 살아가면 만족이 있으니

那須問計然(나수문계연) 부자 되는 방법 알아 무엇 하겠소

- 장유(張維, 1587~1638), <또 5언 절구 두 수에 화답하며[우화이절(又和二絶)]> 중 제1수


늘 그렇듯 어제 저녁에 교육원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아내의 해외 파견 문제, 저의 이곳에서의 거취 문제, 자녀 교육 등 여러 가지 일로 얘기를 나누다가 복귀하였는데 마음이 심란하였습니다. 아내가 해외로 자녀와 파견을 함께 가게 된다면 저는 이곳에서 기러기 생활을 4년 정도 해야 하고 지금 사는 곳의 방도 빼야 하기에 이곳에서 파견을 연장하면 어떻겠냐는 아내의 의견과 저는 한사코 돌아가서 뜻을 펼치고 싶다는 주장이 상충하였습니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아내와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는 두 사람이 해외에 나가서 견문을 넓히는 것이 좋을 듯하여 저도 반대는 하지 않지만 홀로 남아서 견뎌야 하는 시간들, 승진과 경제적 문제로 인해 파견 복귀에 대한 아내의 반대 의견, 자녀 교육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아내의 비난 등으로 인해 내심 서운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람은 내 다리가 아파봐야 남의 그것의 아픔도 잘 이해하듯 아이를 돌보고 데리고 다녀야 하는 아내의 고충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저 또한 이곳에서의 생활이 저와 잘 맞지 않고 몸고 마음이 힘들기는 매한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어려운 점만을 얘기하다 보니 결국 의견의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게 되었습니다. 삶에 있어서 정답은 없겠지만 자신이 비록 힘들더라도 ‘더 큰 나’의 내면을 따라가고 서로를 지지해주는 것이 크게 보면 우주 대자연에 순응하는 삶이자 서로의 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조선 중기 문장가인 계곡 장유의 <시골집>과 관련된 한시로 함께 얘기 나눠볼까 합니다. 여러분은 시골집 하면 어떤 풍경이 떠오르는지요? 저는 온돌방, 밤하늘을 새하얗게 수놓은 별들, 마을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 넓은 마당, 온돌방, 시냇물, 부뚜막, 외양간, 강아지, 닭, 경운기, 들판을 파랗게 또는 누렇게 수놓은 보리와 벼, 감나무 등이 떠오릅니다. 무엇보다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따스한 품과 정이 그리워집니다.


이 시를 읽고 있노라면 법정 스님께서 불임암에서 집을 짓고 둘레에 후박나무와 파초, 텃밭을 가꾸며 홀로 십 수년간 수행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는 평소 ‘최소한의 욕심’, ‘간소한 삶’, ‘텅 빈 충만’, ‘침묵의 뜰’, ‘무소유의 삶’을 생전에 몸소 실천하였습니다.


이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추분이 지나면 밤이 점점 길어집니다. 밤이 길어지는 만큼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되고 하릴없이 시간만 때우며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저 자신을 다른 계절에 비해 자주 돌아보게 됩니다.


‘세월이 참 빠르구나’, ‘올해는 계획한 일들을 제대로 이루었나’, ‘다른 사람과 생명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았나’, ‘가족과 직장 동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등등의 일을 반성하곤 합니다.


장유는 시골집에서 비록 방이 좁아 잠자리가 불편한 것보다 집에다 자연을 끌어들일 수 있는 일에 더 큰 만족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넓은 아파트가 나은지요? 아님 너른 마당에서 텃밭을 가꾸며 반려견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주택에 살고 싶은지요?


우리가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활동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사람마다 취향과 선호도과 다르긴 하지만 저는 평소 독서와 명상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서는 저 자신을 바로 세워줍니다. 선현들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온기가 돋아남을 느끼곤 합니다. 최근에는 저명한 동양철학자이자 교수, 한의사이기도 한 도올 김용옥의 《도올주역강해》를 긴 분량이긴 하지만 읽고 있습니다. 제가 그의 저서를 읽는 이유는 동서양을 넘나드는 박식함과 고전을 바라보는 그의 독특한 사유 방식이 저의 취향에 맞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배울 점과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드는 한 작가의 여러 글을 꾸준히 읽는 것 또한 독서의 여려가지 재미를 선사합니다. 그의 사유의 폭과 독특한 관심사를 엿볼 수 있고 글쓰기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명상은 주로 걷기 명상을 평일에는 저녁 시간을 활용하여 주말에는 아침과 저녁 등 틈나는 대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이 낳은 세계적인 평화운동가이자 영적 스승인 틱낫한 스님의 글을 많이 접했었고 요즘의 화두(話頭)는 ‘깨어있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뇌의 휴식인 ‘멍때리기’를 가끔 하곤 하는데요. 산책을 통한 걷기 명상도 이와 비슷한 효과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저는 걷거나 운전할 때 등 틈만 나면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계획을 세워 어떤 일을 추진하면 좋을지’, 우주 삼라만상의 안녕과 행복, 조화와 균형을 빌어보기도 하고 가족과 이웃, 사회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해 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자신만의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취미와 활동 등을 찾아보고 실천해나가며 삶의 재미를 알아가는 날들이 될 수 있도록 기원해 봅니다.


속셈 없는 삶, 자연에 폐 끼치지 않고 살아 있는 생명을 존중하며 그것과 늘 가까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공간과 여유를 가진 삶이야말로 돈 많은 부자의 바쁜 삶보다 훨씬 낫다고 장유는 말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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