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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64일

by 은은

懲忿摧山(징분최산) 산을 꺾을 기세로 분노를 다스리고

窒慾塡壑(질욕전학) 구덩이를 메울 기세로 욕망을 막으라

忿慾消盡(분욕소진) 분노와 욕망이 모두 사라지면

披雲睹日(피운도일) 구름을 열치고 해가 나오리라

克與不克(극여불극) 나를 이기느냐 이기지 못하느냐

小人君子(소인군자) 쪼잔한 꼰대가 되느냐 인간다운 성숙한 인간이 되느냐의 관건

-장흥효(1564~1633), <신세잠(新歲箴)>


교육원 4기의 첫 주 마무리하기 전날 저녁입니다. 교육원 위탁 학생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을 겪는 아이이거나 뇌인지 장애로 인해 충동조절, 분노조절, 주의력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로 분류됩니다.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겪는 아이는 에너지가 안으로 고이게 되고 충동과 분노조절이 잘 되지 않는 아이들은 에너지가 밖으로 발산이 됩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게 되어 학교에서 징계를 받고 이곳을 찾습니다. 우울감, 자살 충돌 등을 겪는 아이들은 자신만을 해치게 되지만 충동, 분노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자신과 이웃, 사회에 더욱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게 되기에 더 문제시되는 것 같습니다. 육체적 질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도 함께 다스릴 수 있는 의사 혹은 전문가들을 제도적으로 육성해야 하는 당위이기도 합니다.


분노는 폭풍우와 같습니다. 폭풍우를 피하듯 잠시 기다리다 보면 후회할 일이 없게 되는데 이마저도 아이들은 잘 되지 않습니다. 에너지가 지나치게 넘쳐 흐르기 때문입니다. 분노를 바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가정이나 학교, 우리 사회에서도 잘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이런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 순간의 실수나 방심으로 우리 아이들이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 강제로 책임을 짊어지게 되는 일들이 줄어들 수 있게끔 성숙한 어른들이 잘 가르쳐주고 이끌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이번 시간에는 일찍이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학문과 제자 양성에 전념한 조선 중기의 학자인 장흥효의 <새해의 다짐[신세잠(新歲箴)>을 가지고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신세잠을 쓸 당시 장흥효 선생님의 나이는 68세 노인이였습니다. 여러분은 노익장(老益壯 :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기력이 왕성해짐)]이란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그의 새해의 다짐을 보고 있노라면 어디서 이런 기운과 당당함이 나오는 건지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여러분의 새해의 다짐은 무엇인가요? ‘공부를 잘하게 해달라’, ‘좀 더 예뻐지게 해 달라’ ‘부모님과 오래오래 함께 살 수 있도록 해달라’, ‘남자(여자) 친구를 사귈 수 있게 해달라’, ‘원하는 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도와달라’, ‘신상 핸드폰을 얻게 해달라’ 등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새해 다짐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장흥효는 임종 두 해전 새해 소망으로 ‘분노와 욕망’을 잘 다스릴 수 있게 해달라고 기원하였습니다. 젊은이도 아닌 노인의 새해 소망이 분노와 욕망 조절이라니 좀 의아한 생각이 드는데요.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새해 소망이 아닌 하필이면 분노와 욕망 조절을 언급했을까요?


그것은 곧, 이어서 나오는 구절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극기(克己 : 자기 자신을 이기다)’를 위해서입니다. 칠십 평생을 살아도 어려운 일이 바로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공자 또한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하여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눌러 예를 회복하는 일을 강조하였습니다.


<신세잠>을 쓴 장흥효의 호는 경당(敬堂)입니다. 요즘 주택이나 아파트에 이름을 짓듯이 옛 사람들 또한 집의 이름을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담아 짓곤 했습니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의 이름에 ‘경(敬)’자를 쓴 것으로 보아 그는 매사에 있어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를 공경의 삶을 실천하려고 노력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경’은 곧 나와 타인, 생명과 무생명을 공경하는 일이자 침묵을 통해 내면을 기르는 일이기도 합니다.


불가에서는 인간이 경계해야 할 세 가지 경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탐욕을 뜻하는 ‘탐(貪)’입니다. 그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상대방이 가지고 있으면 배가 아프고 시기, 질투하게 되는 마음입니다. 둘째로는 성냄과 분노를 뜻하는 ‘진(瞋)’입니다. 우리가 흔히 눈이 뒤집어진다는 표현을 쓰지요. 분노가 치밀어오르면 마지 눈 먼 봉사처럼 앞뒤 가리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화가 나거나 화를 내게 되는 것일까요? 추측해보자면 상대가 나의 기준에 맞지 않거나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내가 정한 기준이나 목표에 나 스스로가 도달하지 못했을 때, 상대가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며 나의 고유 영역을 침범했을 때 화가 나거나 화를 내게 됩니다. 화를 낼지 말지는 자신이 정할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차려야 합니다. 끝으로 어릭석음을 뜻하는 ‘치(痴)’입니다. 생각과 행동이 밝게 깨어 있지 못하고 당장의 일과 이익에만 매달리게 될 때 우리는 종종 어리석을 범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의 조급함과 자기 수양의 부족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조절할 줄 알면 구름을 해치고 해가 나오듯 자신의 밝은 본성 또한 회복하게 되고 우리 사회와 지구공동체가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자신이 해야 할 일 또한 잘 보이게 될 것이란 진실을 <신세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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