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일
夫春(부춘) 봄은
造化迹也(조화적야) 조화의 자취네
造化無心(조화무심) 조화는 무심히
付與萬物(부여만물) 만물에 모든 걸 맡기고
而不爲私焉(이불위사언) 사사로이 무언가를 하려 하지 않네
然猶不可得(연유불가득) 그리하여 봄을 붙잡아
而藏也(이장야) 간직해둘 수 없네
春則春之生也(춘즉춘지생야) 봄은 봄이 생기며
夏則春之長也(하즉춘지장야) 여름은 봄이 성장하며
秋則春之成也(추즉춘지성야) 가을은 봄을 완성하고
冬則春之藏也(동즉춘지장야) 겨울은 봄을 간직해두네
- 기대승(奇大升,1527~1572) <봄을 간직해 두고자 하는 바람을 담아 정자를 지어 읊다[장춘정기(藏春亭記)]>
이황의 제자이기도 한 기대승은 32세에 스승과 사제지간을 맺고 12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그중 8년간을 편지로 스승과 인간의 성품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인 학구파였습니다. 46세라는 짧은 생을 살다갔지만 그의 학문에 대한 성실성, 배움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과 태도는 후세에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여러분은 봄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요? 저는 봄하면 새로운 시작, 설레임, 깨어남이 생각납니다. 대자연의 따뜻한 입김에 만물은 개화하고 생명력을 드러내 보입니다. 여름이 되면 봄은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변신을 시작합니다. 화려한 꽃잎은 떨구고 싱그런 잎을 선보이며 무럭무럭 성장해 나갑니다. 가을이 되면 봄부터 다져온 생장을 열매라는 결실로 화답합니다. 인간이 열매라는 달콤한 성취에 취해 있는 동안 봄의 결실인 가을은 후손을 위한 안배를 시작합니다. 미련없이 대지 위로 잎과 열매를 사뿐히 떨구며 봄의 기운을 거둬들이고 명상하듯 안으로 침잠합니다.
봄의 시작과 성장, 열매 맺음을 통한 완성, 열매와 잎 떨구기, 다음 생명을 예비한 침잠(沈潛)의 시계는 한치의 어긋남이 없습니다. 만물은 억지로 함이 없이 우주 대자연의 순환과 질서를 철저히 지켜 나갑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사사로움이나 인정(人情)이 개입되는 일이 없습니다.
여기 기대승보다 한 세기를 먼저 살다간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조물주의 조화를 기리는 글[조원찬(調元讚)]> 에서도 천지의 살아있는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뜻[생의(生意)]를 엿볼 수 있습니다.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春光駘蕩(춘광이탕) 봄빛이 화창하니
風雷激盪(풍뢰격탕) 바람과 천둥이 일어 만물이 살아나네
夏月方享(하월방형) 여름철이 되니
雨露滋榮(우로자영) 비와 이슬이 내려 만물이 자라네
秋冬利貞(추동리정) 가을과 겨울이 되니
霜雪歛精(상설렴정) 서리와 눈이 내려 만물이 근원으로 돌아가네
元元生意(원원생의) 이처럼 천지의 생의는
無時不停(무시부정) 한시도 그친 적이 없네
一陰一陽(일음일양) 하나의 음과 하나의 양이
迭助流形(질조류형) 서로 도와가며 온갖 형체를 이루네
造化橐篇(조화탁편) 천지조화가 풀무가 되어
承順其令(승순기령) 그 명을 따르네
凡厥有生(범궐유생)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
各正性命(각정성명) 저마다 자신의 바른 성을 좇네
우주 만물이 대리인이자 대행자이며 하늘과 땅의 중간자인 인류가 걸어가고 받들어야 할 소명은 나 아닌 타자를 살리고 또 살리며 무심하고 겸허히 하늘 길, 땅의 길을 되밟아 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밤하늘에 별과 달이 빛나듯 온 누리에 진리의 '빛도장'을 찍으며 걸림 없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