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일
시냇물을 10리 밖에서 끌어오는데
물은 적고 물 댈 지역은 넓어서
먼 곳은 가물어서 적셔줄 수가 없어
해를 거푸 수확을 못했네
퇴계가 “이것은 우리 논이 그 위에 있기 때문이네
나는 비록 마른 밭이라도
먹고 살 수 있지만
저들은 논을 적셔 주지 않으면
거둘 수가 없네”라
하고는 곧바로 그 논을
밭으로 바꾸었네
-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퇴계선생언행록》, <고향마을에서의 생활>
꽉 채워진 보름달도 보기 좋지만 보름을 하루 이틀 남겨둔 달도 정이 갑니다. 채워지면 성취감이 있지만 완성을 향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응원하고픈 마음이 크기 때문입니다. 아침 영하의 기온과는 달리 초저녁 보름을 이틀 앞둔 달이 자기 왼발치에 자식 같은 별을 달고 있습니다. 별과 달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연의 섭리를 따르듯 부모 자식, 직장 선후배, 친구, 부부 사이에도 격려와 조언을 가장한 한 두 마디의 잔소리보다 띄어진 거리 만큼의 깊은 칭묵이 더 큰 가르침과 사랑의 베풂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위 글은 “나의 욕심을 줄이면 남을 살릴 수 있다”는 퇴계 이황의 말씀입니다. 요즘 시속(時俗) 같으면 남이야 잘 먹든 잘 먹지 못하든 나 몰라라 했을 것입니다. 퇴계는 자신의 논으로 인해 일반 백성들이 논에 물을 대어 수확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큰 걱정을 하며 과감히 자신의 논을 상대적으로 물이 적게 드는 밭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논은 답(沓) 또는 수전(水田)이라고도 하며 우리가 먹는 주식인 벼의 생산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앎을 실천으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퇴계의 이러한 일화는 나만 생각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세태에 경종(警鐘)을 울리는 일이며 백성을 사랑함[애민(愛民)]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다음의 글에서도 퇴계의 공의(公義)의 실천이 잘 드러납니다.
내 형편이 넉넉하거든
먼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
도울 것을 생각하고
내 형편이 부유하거든 또한
사람의 목숨 살릴 것을 생각하라
재물이란 뜬구름 같은 것
아침에 모였다가도
저녁에 흩어지기 마련이네
사람을 돕고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데 써야 하네.
-《퇴계가훈》, 최재목(2009), 60쪽 참조.
앞서 ‘나의 욕심을 줄이면 남을 살릴 수 있다.’는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 부모가 재산이 많으면 자식들은 서로 물려받기 위해 법정 다툼까지 종종 가는 것을 언론매체에서 심심치 않게 보게 됩니다. 퇴계는 재물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닌 사회에 환원하여 처지가 어려운 사람과 생명을 살리는 데 소용이 되도록 쓰라고 말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되새겨 보아야 할 가르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