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일
誦讀古人書(송독고인서) 옛사람의 글을 읽을 적에는
莫道世遠曠(막도세원광) 먼 옛날 일이라 생각지 마라
講言吾取師(강언오취사) 이치를 따지는 말 내 스승 같고
論世我取尙(논세아취상) 세상 보는 법을 옳게 배울 일
相去雖千載(상거수천재) 천 년이나 떨어져 있다 하지만
宛如對相狀(완여대상상) 눈앞에 마주 앉아 얼굴 맞댄 듯
凡有詰辨處(범유힐변처) 캐묻고 따질 일 생각나거든
卽是親酬唱(즉시친수창) 그때마다 문답 벌여 의심 풀게나
雖記一半句(수기일반구) 한 구절 반 구절 기억한다면
力行且依樣(역행차의양) 있는 힘껏 실천하며 길 좇아야지
精究爲可畏(정구위가외) 꼼꼼한 공부가 가장 좋으니
明道不汝迋(명도불여광) 밝은 길은 너를 속이지 않네
-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선현의 좋은 글귀를 몸과 마음 속에 새겨가며 읽다[송독(誦讀)]>
보름달의 후광이 주변의 구름들을 밝게 비치며 함께 상서로운 기운을 온누리에 전하는 밤입니다. 길 위의 시인 김시습은 호가 여러 개이지만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매월당(梅月堂)과 청한자(淸寒子)입니다. 매화와 달을 사랑하고 정신과 기상의 맑고 서늘함을 꿈꿨습니다.
그가 선현의 글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천년 전의 사람이지만 세상 만물의 이치를 따지는 말씀과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와 경륜을 스승과 벗으로 삼으며 배우라고 말합니다.
《서양이 동양에게 삶을 묻다》에서 웨인 다이어는 서양인의 관점으로 노자 사상을 재해석하였습니다. 그가 글을 쓸 때 노자의 초상을 걸어놓고 명상을 하며 자신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노자가 그에게 전한 도덕경의 정수를 단지 옮겨 적었을 뿐이다’는 표현을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공경하고 사모하면 자연스레 그의 말과 행동을 닮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참된 벗이 없다고 주눅들거나 힘들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책 속의 선인들을 흠모하고 그가 남긴 글과 발자취를 따라가며 실천하고 또 실천해 본다면 삶이 힘들 때 그의 한 구절, 한 문장이 나를 바로 세우는 영혼의 양식과 거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마치 그분이 내 곁에 있는 것처럼, 내 어깨를 토닥여주고 나를 안아주며 괜찮다며 이 또한 지나갈 것이며 이 일은 겪는 이유는 너의 영적 성장을 위해 지금 이 시기에 필요한 공부와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라고 위로해주지 않을까요?
맑음, 밝음, 따뜻함, 서늘함, 깨어 있음, 친절함과 미소, 상호 연결되어 함께 존재함,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을 늘 간직하며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