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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 Dec 11. 2023

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81일


 不須歎無友(불수탄무우)        친구가 없다고 한탄할 까닭이 어디 있을까

 書帙堪輿遊(서질감흥유)        책과 함께 노닐면 되는 것을

 無書帙(무서질)                      혹여 책이 없다면 

 雲霞吾友也(운하오우야)       저 구름이나 노을을 벗으로 삼고

 無雲霞(무운하)                      혹여 구름이나 노을이 없다면 

 空外飛鷗(공외비구)               하늘을 나는 기러기에 

 可托吾心(가탁오심)               내 마음을 의탁할 것이다

 無飛鷗(무비구)                      만약 기러기도 없다면 

 南里槐樹(남리회수)               남쪽 마을의 회화나무를 

 可望而親也(가망이친야)        벗 삼고

 萱葉間促織(훤엽간촉직)        그게 아니라면 원추리 잎에 앉은 귀뚜라미를

 可玩而悅也(가완이열야)        관찰하며 즐길 것이다

 凡吾所愛之(범오소애지)        요컨대 내가 사랑해도 

 而渠不猜疑者(이거불시의자시기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皆吾佳朋也(개오가붕야)        모든 것이 나의 좋은 친구인 것이다.

이덕무(1741~1793, <매미와 귤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의 농익은 미소[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겨울나기에 한참인 벚나무 줄기에 담쟁이가 벗이 추울까 염려되어 초록빛 이불을 덮어줍니다. 목련은 벌써 누비이불 같은 도톰한 꽃망울 준비에 한창입니다. 진해 경화역 인도에는 어느 연인이 봄같은 겨울 날씨에 떨어진 낙엽으로 하트를 만들어 놓고는 영원한 사랑을 속삭입니다. 머리를 드니 아파트 기둥 위에 까치 대가족이 모처럼의 따뜻한 날씨에 신이 났는지 노래하는 소리가 가볍고 정겹습니다. 겨울철 스산한 풍경에 동백은 선명한 자줏빛 얼굴을 내밀며 다가올 봄소식을 두런두런 얘기하는 요즘입니다

.     

  여러분은 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없다고 여겨질 때 누구랑 벗하는지요? 옛사람들은 자기 그림자를 친구로 삼으면 된다고 얘기하기도 하고 책을 통해 옛 선현들을 벗 삼거나 새소리, 벌레 소리, 폭포 소리, 사군자(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귀뚜라미, 나무, 인동초, 바람, 구름, 바위, 노을, 산, 별, 우주 등 실로 벗으로 삼을 수 있는 대상이 다양하고 방대하였습니다.     


  회화나무의 다른 이름은 괴목(槐木)입니다. 가지가 사방으로 자유로이 뻗어나간다고 해서 학자가 사랑하는 나무[학자수(學者樹)]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 나비 모양의 연노랑 꽃을 나무 가득히 피웁니다. 일제히 피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시간차를 두고 한쪽은 꽃이 피어나고 있고, 일부는 살랑바람에도 후드득후드득 떨어져 나무 아래에 두툼한 꽃덮개를 만들어놓기도 합니다. 중국이 고향인 회화나무는 상서로운 나무로 생각하여 중국인들도 매우 귀하게 여겼으며 회화나무를 문 앞에 심어두면 잡귀신의 접근을 막아 그 집안이 내내 평안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다음 백과사전 참조)


  나의 친구들은 구름, 달, 폭포가 쏟아지는 장면, 한밤에 귀뚜라미 소리, 요즘처럼 맑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혹은 맑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다니는 풍경, 따스한 햇살, 시원스레 뻗은 소나무와 메타세콰이어, 산책하며 보는 이름 모를 풀들과 각양각색의 꽃들, 시원하게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 매미 소리 등입니다. 이들은 이덕무 시인의 표현대로 내가 사랑해도 나를 시기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우리에게 공짜로 자신의 것을 제공해 주는 벗들입니다.     


 또 하나의 벗은 대학 편입 동기로 만나 20년 가까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격려해주는 사이이자 저와 피가 섞이지 않은 형님이자 멘토이며 목회 일과 고등학교 교육 현장에서 솔선수범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른 지면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저는 이분의 영향으로 생태 관련 글들을 많이 소개받고 추천받아 읽게 되었고 서로가 추구하는 학문적 방향도 비슷해서 격의 없이 저의 집안일과 진로와 관련된 고민, 앞으로 글을 쓸 방향에 대해 서로 의견을 자주 나누고 있어 내심 든든함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요즘은 ’무둥이‘라고 아들이 이름 지어준 반려견과 함께 다니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 친구는 귀가 밝고 예민하며 겁이 많은 친구입니다. 견종은 ‘토이푸들’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저희 가족을 자주 깨물어서 안기도 힘이 들었는데 지난 겨울방학 때 아이와 아내가 어학연수를 간 사이에 서로 벗삼아 의지하며 지냈더니 요즘은 저를 잘 물지 않고 저녁 산책 때 아이와 아내 대신 저의 길동무가 되어 줍니다. 비록 반려동물이긴 하지만 함께 숨 쉬고 걸어 다니며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고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여러분이 지루하다고 느낄 때 무엇을 친구로 삼아 관심과 애정을 쏟고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요? 옛 선현들이 지루함을 달래는 방법과 오늘날 여러분의 그것과 같은 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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