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
我身在山裡(아신재산리) 산속에 있으니
幽興湧如山(유흥용여산) 산처럼 그윽한 흥이 솟구쳐 오르네
木葉仍風落(목엽잉풍락) 바람에 나뭇잎 지고
江亭過雨寒(강정과우한) 비 지나가 강가 정자가 차네
詩情勝對月(시정승대월) 달이 뜨자 시적 정취 일어나고
秋色共依欄(추색공의란) 난간에 기대니 모두가 가을빛
役役紅塵客(역역홍진객) 벼슬길에 분주한 나그네라면
不煩來此間(불번래차간) 여기에 굳이 올 것 없겠지
- 이덕무(1741~1793, <비 온 뒤에[우후(雨後)]>
이곳 교육원은 내일 대설(大雪)을 앞두고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기후가 거꾸로 가는 건지 비바람이 마치 봄바람처럼 느껴지는 밤이기도 합니다. 은행나무가 노란 나비를 떨구듯 저희 교원들은 아이들 시험에 인사이동 준비까지 몸과 마음이 분주한 철이기도 합니다.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람은 겨울이면 옷을 겹겹이 입는데 나무는 왜 거꾸로 옷을 벗어던지며 겨울을 준비하는 것일까요? 추우면 사람처럼 보온을 위해 가지와 잎사귀를 더 풍성하게 하고 여름 더위에는 반대로 잎을 떨구는 게 더 자연스러울텐데 말입니다.
이덕무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서 어려서 병약하고 집안이 가난하여 책을 살 형편이 못되었고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 박지원(朴趾源)·박제가·홍대용(洪大容)·서이수(徐理修) 등 북학파 실학자들과 교유하면서 많은 영향을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정조 임금 때는 규장각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많은 서적을 정리하고 조사하여 교정하였고, 많은 저서 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가을날 비 온 뒤에 산속 정자나 사찰을 찾았을 때 이덕무 시인처럼 그윽한 흥이 솟아오르는지요? 아직은 초가을이라 단풍이 들기 전이지요. 시심(詩心 : 시적 흥취나 시를 짓고자 하는 마음)은 고요한 풍경 속에서 더 잘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삶과 우주 자연의 이치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나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마음을 잘 열어 놓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10대 때는 학교와 학원, 이성 문제로 20대에는 취업과 장래에 대한 고민으로 3~50대에는 가정을 이루고 돌보는 일과 직업적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내달립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자연스러운 일상이기도 합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이뤄갈수록 우리 내면은 그에 비례해서 점점 쪼그라들고 불안해지는 것은 왜일까요?
비 온 뒤 안개가 끼는 산속 풍경,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들, 가을밤 달을 바라보며 느끼는 그윽한 정취들, 풍경들을 TV와 스마트폰에 반납해버린 결과가 아닐까요? 아니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적당한 소음과 즐길 거리, 볼거리, 살 거리에 너무 취해 버린 나머지 자연은 심심하고 즐길 것이 없다고 지레 짐작해버린 건 아닐는지요?
비 온 뒤의 풍경을 감상하고 소외된 내면을 살찌우려면 심심함을 견뎌내고 다룰 줄 아는 시적 정취와 악기 하나는 다룰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모두 우주 대자연의 한 부분일 뿐이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듯 자연의 품을 늘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삭막함, 경쟁적인 인간관계, 매연, 소음, 빛 공해 등을 뒤로하고 태초의 우리가 태어난 곳, 고요를 즐기기 위해서 또는 참 나를 찾기 위해 고향의 엄마 같은 자연의 품에 오늘부터 안겨보는 건 어떨는지요?